메두사 엄마, 키티 크라우더
키티 크라우더 작가 소개
아동문학계의 노벨문학상이라 불리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한국 작가 중에서 백희나 작가가 한국인 최초로 수상했다) 수상 작가이자 현대 그림책의 장인이라 불리는 작가이자 화가인 키티 크라우더. 그녀는 벨기에 브뤼셀 출신으로 청각 장애가 있어 5세가 넘어서야 말을 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새와 꽃, 돌 같은 자연물을 좋아했던 키티 크라우더는 1994년 첫 그림책을 출간한 후 지금까지 수십 권의 그림책을 펴냈다.
메두사 엄마 줄거리
엄마 메두사는 자신의 아이 '이리제'가 너무나 소중하다. 아이를 품어 본 엄마라면 모두 그 소중함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 귀하지 않은 아이는 없으니까.
아마 메두사는 조금 더 각별했을지도 모른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선 그리스 신화 속 메두사 이야기를 알면 좋다.
신화 속에서 메두사는 원래 매우 아름다운 여성이었고, 그녀를 노리던 포세이돈에게 아테나 신전에서 겁탈을 당한다. 이것을 알게 된 아테나 여신은 크게 분노하여 메두사를 머리에 뱀이 달린 괴물로 만들어 버린다. (겁탈을 당한 건 메두사인데 괴물이 된 것도 메두사라니..)
내가 그렇게 세상에 대해 불신과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다면, 과연 내 아이를 어떻게 대할까. 아마 내 아이도 나처럼 세상 밖으로 나가 큰 상처를 받을까 두려워서 더 내 품에 아이를 가두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다른 사람들의 도움 없이 (아마도) 혼자 진통을 겪었을 메두사는 두 여인(산파로 추정되는)의 도움으로 아이를 출산한다.
메두사의 머리카락은 이리제를 감싸는 이불이 되고, 유모차가 되고, 장난감이 된다. 사람들이 이리제에게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그녀는 이리제를 더욱 감싸고 보지 못하게 숨긴다.
너무나 사랑하고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내 목숨이 하찮게 느껴질 만큼 귀한 존재. 나의 아이.
메두사는 필사적으로 이리제를 보호하지만, 이리제가 커갈수록 상황이 여의치 않다. 이리제는 바깥세상에 관심을 가진다. 마치 성에 갇혀있던 라푼젤처럼.
이리제는 또래 아이들과 놀고 싶다. 하지만 무턱대로 메두사 엄마를 떠나 도망가거나 떼를 쓰지 않는다. 자신을 너무 사랑해서 놓아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엄마를 조금은 이해하는 모습이다.
날마다 창문으로 해변에서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던 이리제의 뒷모습. 그리고 그런 이리제를 바라보는 메두사의 모습에서 안녕달/윤여림 작가의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화장실 가는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던 아이가 자라 엄마의 품을 떠나 세상을 누비며 훨훨 날아다니기를, 대신 힘들면 언제든 엄마에게 찾아와도 된다 말하는 그림책이었다.
아마 메두사 엄마도 깨달은 것 같다.
이제 이 아이가 내 품을 떠날 시간이구나
이리제는 원하는 대로 학교에 간다. 엄마가 따라오지 않아도 혼자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어울린다. 지금까지 엄마의 품에만 있던 이리제이지만, 너무나 잘 적응하는 모습이다.
결국 메두사 엄마도 사랑하는 딸 이리제를 위해 용기를 낸다.
육아는 아이만 자라는 것이 아니다
처음 엄마가 되었을 때, 육아는 내가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며 키우는 것이라 생각했다.
육아라는 것은 실로 놀라운 작업이었다. 지금까지 모르고 살아온 나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내가 막연하게 상상해 온 엄마가 된 내 모습과는 큰 간극이 있었다.
몇 해 전, 정서경 작가가 <방구석 1열>에서 영화 '친절한 금자씨' 각본 작업을 설명하며 '엄마가 된 동물은 아름다울 수도 있지만 동시에 매우 사나워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한 적 있다.
내가 그랬다. 엄마인 나는 아름답고 숭고하기보단 거칠고 사나웠다. 오로지 나만이 내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착각 속에서 나는 참 사나웠다. 나의 모든 신경은 내 아이에게만 집중되었다.
엄마와 아이가 헤어지는 시간, 20년
물론 엄마는 평생 엄마긴 하지만, 엄마라는 직책에 책임감이 따르는 시간은 아이가 성인이 되기까지 20년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나의 멘토인 오소희 작가님과 식사를 하다 그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내 몸과 이어져서 태어난 아이랑 헤어지기까지
2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모든 것을 내 품에서 해결하며 내가 아이인지, 아이가 난지 모르던 시기, 엄마로 보낼 20년이 끔찍하게 길다고 생각했었다. 영유아 시기를 지나 아이가 조금씩 세상 밖으로 나가고 있는 지금은 왜 20년이나 엄마 노릇을 해야 하는지 조금 알 것 같다.
탯줄로 이어져 내 몸 안에 품고 낳았던 그 아이와 온전히 분리된 인격체로 떨어져 각자의 인생을 살기까지... 엄마가 아이와 헤어질 준비를 하는 시간이 20년이라는 생각이 든다.
너는 나의 진주야. 내가 너의 조가비가 되어 줄게.
<메두사 엄마>의 작가 키티 크라우더도 한 인터뷰에서 '부모와 자녀의 만남 역시 다른 인간관계와 마찬가지로 서로 다른 두 우주가 만나는 일이다. 한 우주가 다른 한쪽을 잡아먹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이리제가 메두사 엄마의 품을 떠나 학교에 갔을 때, 똘똘하게 친구들 앞에서 책을 읽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메두사 엄마를 꼭 안아주고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이거 봐요. 당신 지금까지 정말 애썼어요. 이제 당신의 인생을 살아요.
비록 메두사 엄마가 이리제를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숨기며 세상 밖으로 아이를 내놓는데 주저했을지는 몰라도, 그런 무한대의 사랑을 받은 이리제는 알아서 잘 자라주었다.
이제 이리제는 알아서 잘 자랄 것이다. 자신을 이렇게나 사랑하는 엄마가 뒤에 있는데 뭐가 두렵겠나.
이제 메두사 엄마가 자신의 인생을 챙겼으면 좋겠다. 엄마로의 메두사도 좋지만, 독립된 인격체로 자신의 인생을 잘 꾸려나가는 여성 메두사의 모습이 궁금하다.
그렇게 각자의 우주를 가꾸어나가는 메두사 엄마와 이리제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