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대는 네가 잡으렴
유치원 학예회에서 나랑 다른 아이들 몇 명이 춤을 추고 있었다. 내가 춤을 추다 말고 무대에 멀뚱멀뚱 서서 노래가 끝날때까지 무슨 짓을 해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고 한다. 선생님이 아무리 달래도 미동도 없이 계속 서 있었고, 그대로 공연이 끝난 뒤 엄마가 나에게 '왜 춤을 안추고 서 있었냐'라고 물었다.
옆에 여자애가 엉덩이를 너무 씰룩거려서 안췄어
오버스럽게 엉덩이를 미친듯이 흔들어대는 그 여자애가 얼마나 꼴뵈기 싫었으면 아예 춤을 안춰버리고 무대를 끝내버리는 나란 사람. 30대 중반인 지금도 나는 그 무대 위에서 내 얼굴을 때리던 조명과 음악 소리, 내가 입을 삐죽 내민 채 선생님이 뭘 어떻게 해도 미동 없이 서 있는 모습을 보며 깔깔대고 웃던 어른들의 웃음소리를 생생히 기억한다. 그만큼 싫었나보다, 그 아이의 역동적인 춤이. 누군가에게 주도권을 빼앗기는 것이 싫고 남에게 끌려다니는 것이 싫었던 나의 사춘기 시절, 주도권을 철저히 박탈하고 본인들이 원하는 길을 가라고 강요했던 부모와 나의 악연은 예정된 것이었다.
아이는 뱃속에서부터 느긋한 아이였다. 예정일이 되어도 진통은 커녕 평온하게 뱃속에서 발길질을 하며 잘 놀았고, 결국 분만 촉진제를 맞고서야 세상 밖으로 나왔다. 보통 일주일 내로 탈락하는 제대도 무려 3주를 채우고 제대 탈락이 되었다. 아이가 첫 돌이 되기 직전부터, 사람들은 모두 나에게 아이가 '이제 좀 걷냐'고 물어봤다. 아직 안 걷는다고 하면 매우 걱정을 한다. 돌이 지났는데도 걷지 않냐고 의아한 표정으로 물어본다. 아직이라고 대답하고 돌아설 때마다 기분이 그리 좋진 않았다. 돌이 지나면 무조건 걸어야 한다는 내가 모르는 법이 있나 보다. 저렇게 주 양육자인 나보다 다들 근심 어린 표정을 짓는 걸 보면 말이다.
통상적으로 소아과에서는 만 16개월 정도 되었음에도 걷지 않고, 걸을 생각조차 없어보인다면 병원으로 와서 발달 검사를 받아보라고 조언한다. '이제 슬슬 걸을 때가 되지 않았나'싶은 생각과 '정녕 검사를 받으러 가게 만드는 것이냐'는 생각이 교차하던 만 15개월 후반부에 드디어 아이가 혼자 걷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혼자 힘으로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나에게 걸어오기 시작했다. 마치 나에게 '엄마, 나만의 속도로 잘 크고 있다고요!'라고 말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27개월인 지금은 내가 언제 기어다녔냐는 듯 온동네를 헤집고 돌아다닌다.
부모와 아이의 관계를 흡사 연애를 하는 남녀간의 밀당 못지 않게 상당한 심리전을 요구한다. 지금 이 순간 아이에게 주도권을 넘기고 기다려야 하는게 맞는지, 엄마인 내가 먼저 끌어주어야 하는지 마치 연애 초반 주도권을 누가 잡느냐의 기싸움처럼 고민하게 된다.
엉덩이를 씰룩거리는 친구가 싫어서 춤을 안추던 나의 아들답게 모빌 하나를 봐도, 책 한권을 보여줘도 다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욕심 부리며 달려드는 우리 아들. 수유텀도, 밤잠텀도, 놀이 하나를 해도 본인이 알아서 하려고 하는 우리 하율이에게 나의 부모님이 했던 실수를 되풀이 하지 말자 늘 다짐한다. 내가 운전대를 잡으려고 하지 말자. 운전석을 박탈 당했을때 느낀 황당함과 절망감을 아이에게 물려주지 말자.
아이의 속도를 지켜주고 싶다. 천천히 본인이 준비가 될 때까지 앞에서 빨리 오라고 채근하는 엄마가 되고 싶지 않다. 언제든지 네가 준비가 되었을 때 시작하면 된다고, 늦지 않았다고 말해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아이가 커갈수록 내가 아이보다 앞서 나아가야 한다고 압박하는 시선들이 많아지겠지만, 지금처럼 스스로 해낸 후 환하게 웃으며 아이가 뒤돌아 봤을 때 뒤에서 함께 웃고 있는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내 본분은 속도 지킴이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