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샤워 후 거울을 보지 않게 되었다.
체중이 불어난 이후부터인듯 하다. 임신 하기 전과 비교해서 족히 15kg는 늘어난 체중 때문에 아이가 곧 4살이 되어가는데도 거울 속 내 모습이 내 눈에는 낯설다. 이렇게 살이 찐 것이 내 인생에서 처음은 아니다. 고3 시절 하기 싫은 공부를 온종일 책상에만 앉아있던 그 시절에도 비슷한 체중이었지만, 단순히 살이 찐 것이 아닌 출산을 겪고 난 나의 몸은 말 그대로 '변신'을 했다.
임신 초기 멍게처럼 뒤집어졌던 피부는 여드름 자국으로 가득하고, 선크림은 커녕 세수도 겨우 하고 외출하는 삶을 3년 째 살다보니 피부의 결과 색은 우중충해졌다. 모유수유를 오래 하지 않았음에도 가슴은 축 늘어지고 유륜은 초코파이가 되었고, 아기가 나오면 원상복구 될 줄 알았던 뱃가죽은 여전히 늘어져있다. 늘어난 체중에 아이까지 안고 업고 하다보니 허리와 무릎, 발목까지 성한 날이 없고, 머리가 깨질만큼 강력한 편두통이 특별한 이유 없이도 한번씩 찾아온다.
2019년 1월 중순, 당시 임신 6개월인 내 오른쪽 가슴에서 뭔가 딱딱한 것이 만져졌다.
멍울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이상한 촉감. 좀 큰 구슬 같은 게 가슴 안에 박혀있는 기분이었다. 본능적으로 등골이 서늘했다. 산부인과에서도 유방외과 진료를 보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근처 유방외과로 진료 예약을 잡았다. 초음파 상으로 보이는 내 가슴의(오른쪽 가슴 아래쪽) 멍울은 생각보다 크기가 거대했다. 의사가 아닌 내가 보기에도 너무 커 보일 정도로.
무려 5센티가 넘었다. 크기가 너무 커서 조직검사를 하는 게 좋겠다는 의사의 말에 대차게 싸대기 한 대 맞은 기분. 얼떨결에 진행해달라고 대답은 했는데 그 이후 의사가 검사 절차며 이것저것 설명을 해줬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숨 막히는 공포가 밀려왔다.
나 어떡하지? 우리 아기 어떡하지?
바로 조직검사를 시행했는데 가슴 부위를 국소마취를 하고 엄청 두꺼운 바늘로 총 네 번 거대한 멍울 곳곳의 조직을 채취했다. 마취를 했지만 두꺼운 바늘이 몸을 찌르니 욱신거리는 아픔이 느껴졌는데, 이미 멘탈 와르르 상태라 아픈 줄도 느끼지 못했다.
그날 이후 일분일초가 피를 말리는 시간의 연속.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나고 이런 엄마 마음을 알아서 더 그런 건지 몰라서 그런 건지 아기는 평소보다 더 강렬한 태동을 쉴 새 없이 선사. 태동만 느껴져도 눈물이 앞을 가렸다. 우리 아기 건강하게 5월에 만나자고 매일매일 말해줬는데. 건강하게 만날 수 있는 건가. 나도 아기도 괜찮을까. 오만 생각이 다 들고 이미 마음은 난 유방암 확진 환자. 피가 마르는 지옥 같은 이틀이 지나고 조직 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행히 암은 아니었다
최악의 케이스는 피했고, 양성인 섬유선종인지 엽상종양(얘는 악성/양성 두 가지 케이스가 있음)인지는 확진이 어렵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후 나는 서울아산병원으로 전원 하여 유방초음파 및 조직검사를 재시행했고, '악성 종양이 아니므로 임신 중 제거할 필요는 없고 다만 크기가 큰 편이기에 출산 이후 적절한 시기에 제거 수술을 진행하자'라는 진단을 받았다.
2019년 5월 무사히 아이를 출산했고, 한 달 정도 모유 수유를 한 뒤 단유를 하며 수술 준비를 했다. 그리고 2019년 8월, 오른쪽 가슴에 있던 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고 최종적으로 진행 된 조직검사(떼어낸 종양으로 한번 더 조직검사를 함) 결과는 '양성 엽상종'이었다. 다행히도 2021년 10월인 지금까지 재발없이 잘 지내고 있다.
얼마 전 우연히 20대 시절의 내 사진을 클라우드에서 보았다. 사진 속의 나는 젊다 못해 어렸고, 밝게 웃고 있었다. 말간 피부에 잘 차려입은 원피스, 하이힐까지. 지금의 내 모습과 교차하는 지점이 전혀 없는 모습. 너무 싱그럽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늘 내 몸에 불만이 많았다. 표준 체형임에도 늘 다이어트를 했고, 깡마른 쇼핑몰 모델처럼 옷태가 안난다며 불평했다. 지금보니 멀쩡한 피부를 광이 안난다며 온갖 화장품을 써보고 버리고를 반복했다. 허리는 이정도 가늘었으면 좋겠고, 피부는 이정도 매끈했으면 소원이 없겠고, 팔뚝살이 덜렁거린다고(지금 다시 보니 덜렁거릴 살도 없는데!)투덜거렸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 몸을 진심으로 예쁘게 바라보며 칭찬을 해주었던 적이 있었던가. 몸에게 미안해졌다. 실제로 아름다웠던 시절에도, 많이 망가진 지금도 나는 내 몸을 미워하고 눈길을 주지 않고 있다. 도파민이 폭발하는 행복의 순간에도, 지옥 끝까지 떨어지는 악몽의 순간에도, 저승사자랑 손깍지 끼려다 돌아온 출산의 순간에도, 말도 안통하는 꼬맹이랑 하루 종일 뭐하는건가 싶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몸은 나의 모든 감정과 경험을 공유한다. 함께 느끼고 견뎌낸다. 이렇게 나와 함께 해주는데 좀 칭찬해주며 살면 좋았을텐데.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것은 원래 어렵다. 인간이란 자고로 옛날의 영광에 취하고, 장미빛(그것이 실제 흙빛일지라도)미래에 내 모든것을 맡기며 사는 존재니까. 자식을, 남편을, 아내를, 부모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는 말을 참 쉽게 하지만, 상당한 수행과 깨달음이 없이는 되는 것이 아니다. 무진장 노력하고 또 노력하고 의식적으로 계속 세뇌하듯이 수행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내 몸에게 말해줘야겠다. 지금도 충분하다고, 정말 괜찮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