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며느리는 집을 나갔나

가을 전어의 계절

by 일상채색가 다림

우연히 횟집에 걸린 현수막을 보았다.


가을전어 판매 시작!


바야흐로 전어의 계절이 왔다는 현수막이었다. 한번 먹어본 것 같기는 한데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내가 전어를 먹어본적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전어에 관심없는 나도 어릴때부터 수도 없이 들은 속담은 있다.


가을 전어는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


비슷한 속담으로는 ‘전어는 며느리 친정 간 사이 문 걸어 잠그고 먹는다’라는 것도 있다. 두번째 버전 같은 속담이랜다. 그만큼 전어가 맛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속담이다. 어린 시절 내가 이 속담을 처음 들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났던 질문은 ‘속담 속 며느리는 왜 집을 나갔을까’였다.


친정 간 사이에 먹는다는 두번째 버전은 치사하기 짝이 없다. 어린 마음에 우리나라 속담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콩 한쪽도 나눠먹으라고 가르칠 땐 언제고 전어는 너무 고소하니까 며느리 없을때 우리끼리 홀라당 먹자니. 며느리 입은 입도 아닌가보다.


일단, 며느리 집 나간 스토리로 다시 돌아가보자. 도대체 그 시절 며느리들은 왜 집을 나가야만 했으며, 또 아무리 전어가 맛있다고 한들 한번 나간 집을 왜 돌아왔을까?




1) 며느리 A는 시댁과 편도 3시간 거리에 살고 있고, 연년생 영유아 아이들을 혼자 육아 중이다. 남편은 새벽에 나가 아이들이 다 잠든 후에야 들어오니, 집안일도 육아에도 남편의 서포트는 언감생심이다. A의 시부모님들은 가족 대소사를 소소하게 다 챙기시는 엄청 꼼꼼한 분들이다. 명절은 물론이고 틈만 나면 출가한 모든 자식들과 그들의 배우자와 손주들이 당신 집에 모이길 원하신다. 거의 매 주말, 그녀의 가족은 왕복 6시간 거리의 시댁을 간다. 남편이 바쁘면 그녀가 아이 둘을 데리고 고속 버스를 타고 시댁에 간다. 그리고 쉴틈 없이 부엌에서 일을 하다 또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끈끈한 가족애를 뽐내며 25년째 살고 있다.


2) 며느리 B는 오늘도 시부모님 때문에 남몰래 속앓이를 한다. 맞벌이를 해도 빠듯한 살림에 남편과 아이는 한명만 낳아서 잘 키우자고 했건만, 아이가 조금 자라자 둘째는 언제 가질건지 물어보신다. 터울이 더 벌어지면 안된다고, 동생이 없으면 애가 영 숫기가 없어서 안된다고 성화다. 아이가 수줍음이 많고 말이 없는건 동생이 없어서가 아니라 당신 아들 닮아서 그런 것 같은데. 자기가 중간에서 알아서 한다는 남의 편은 오늘도 엄마 앞에서 헤벌쭉 웃고만 있다. 본가에만 오면 벙어리가 되는 듯 하다.


3) 며느리 C는 어제 산부인과에서 뱃속 아이의 성별을 들었다. 의사가 분홍색 옷을 많이 사라고 한다. 성별 언제 알 수 있냐며 시댁에서 하도 닥달을 해서 병원을 나서자마자 전화를 했다. 아기가 딸이라고 하자 대뜸 돌아오는 시어머니의 대답은 “넌 재산 물려 받을 생각마라” 였다.


4) 며느리 D는 오늘도 이걸 말을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인다. 다함께 차례를 지내고 둘러앉아 먹는 식사시간. 남편과 시부모님 밥 그릇에선 윤기 흐르는 따끈한 밥이 담기는데 D가 먹는 밥은 아무리 봐도 밥솥에서 하루 묵힌 밥이다. 매번 나만 새로 지은 밥을 안 떠주시는 것 같아 꼭 물증을 잡고 싶었는데 오늘도 정신없이 반찬 나르다 보질 못했다. 그리고 남편이 남긴 국을 왜 자꾸 며느리한테 다 먹으라고 하는건지 모르겠다.




여기까지만 하자. 다 쓸라치면 알파벳이 부족하다. 참고로 위에 적은 4가지의 이야기 모두 내 주변의 며느리들이 겪은 실화다. 그녀들의 시부모님 혹은 남편의 반론까지 취재해보지는 않았지만, 명백히 대한민국에서 예전부터 지금까지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공교롭게도 전어가 가장 살이 오르는 가을 시기는 민족대명절인 추석이 있다. 아직 농경사회였던 그 시절, 며느리들이 전어 냄새를 맡고 고소해서 돌아왔다기 보단 봄에 심어 놓은 농사 걱정에 돌아왔을 확률이 높다는 말도 있다. 뭐 때문에 돌아온 것이든 씁쓸하다. 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속담 연구자로 손꼽히는 조남호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에게 이 속담의 유래를 물었는데 “여러 속담의 유래에 대해 조사해 알고 있지만, 이 속담의 유래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는 답을 받았다고 한다. 뚜렷한 유래도 알 수 없는 속담에서마저 며느리의 존재는 참 낮고 늘 테두리 밖의 사람이다. 노동이 필요할 때는 철저히 내 사람이지만, 가족애를 느낄 수 있는 자리에서는 철저한 아웃사이더의 삶.


수십년을 남으로 살다 결혼이라는 제도하에 얽히게 된 내 남자의 가족들. 딸 같은 며느리라는 소름돋는 말을 할때는 언제고 맛있는 가을 전어 앞에서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 그리고, 애초에 도대체 왜! 며느리들이 집을 뛰쳐나가고 싶게 만드냐고. 사위는 백년 손님이라면서 며느리는 언제까지 우리집 일손이자 애 낳는 자판기이자, 좀 더 젊고 빠릿빠릿한 내 아들의 엄마로 살아야 하는 것일까.


올해부터는 가을 전어는 같이 먹자. 아니, 일단 며느리들 집 좀 안 나가고 싶게 하자. 올 추석은 다같이 앉아서 쓸데 없는 자녀계획 취조 하지 말고 따뜻한 새 밥에 전어 먹자. 남녀 구별 말고 손주들 한번 으스러지게 안아주고, 지체말고 친정으로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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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 참조한 기사 링크:

‘가을 전어는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말의 유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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