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 정세랑
오랜만에 여행 에세이를 읽었다. 이십 대 중반에 접어든 이후(직장인이 된 이후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독서 편식이 심해졌고, 나의 독서는 비문학 작품에 90% 이상 편중되어 버렸다. 심지어 아이를 출산한 직후 만 2년간 내 독서의 대부분은 육아 서적이었다. 아이의 반찬 편식만으로도 머리가 아팠던 나는, 당장 아이의 입맛은 못 바꿀지언정 책 편식이라도 고쳐보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래.. 나나 잘 살면 그만이지 정도의 심경이라고 보면 되겠다. 그렇게 아이의 책장 위 내가 읽는 책들을 얹어두는 자리는 시대를 넘나드는 소설 작가 선배님들의(출간 작가가 10년째 꿈 입니다만..) 책들로 채워졌다.
그날도 사실 정세랑 작가의 '보건교사 안은영'이나 '시선으로부터'를 빌리려고 도서관에 간 건데 인기 작가의 대표작과 신작인지라 모두 대출이 된 상태였다. (도서관 어플로 대출 여부를 미리 체크할 수 있음에도 나는 늘 도서관에 도착해서야 어플을 켠다....) 다급히 핸드폰 메모장을 켜서 '도서 리스트'를 살펴보았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그녀의 여행 에세이인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였다.
나는 그녀와 당연히 개인적인 친분도 없거니와 그녀의 작품 또한 읽어보지 않았다. 그녀에 대한 사전 정보가 거의 없는 상태로 접한 그녀의 에세이를 읽고 나서 제일 먼저 든 느낌은 '아, 이 언니 참 따뜻한 사람이네'라는 생각이었다. 방금 언급했듯이 나는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지만, 적어도 이 책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따뜻함과 귀여움이었다. 엄청 야무지고 단단한, 동시에 너무 귀엽고 따뜻한 언니의 책을 읽는 느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제대로 하면서도 부정적 감정의 발산으로 그치지 않도록 적정 수준을 찾는 것... 고민은 하는데 매번 실패하는 느낌이다. 언어를 다루는 사람으로서 정교함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다 보면 깎아낸 부분이 남긴 부분보다 많아 심지 없는 완곡어법을 쓰게 되고, 세게 밀어붙이는 글을 쓰다 보면 꼭 엉뚱한 사람이 다치게 되어 후회스럽다.
세계가 이렇게 망가지고 무너져가는 것은, 이 세계를 복원하고 개선할 가능성을 가진 여성들이 교육과 사회 활동의 기회를 얻지 못해서가 아닐까 두려워하며 추측하기도 한다. 그 여성들이 잃은 가능성은 결국 인류가 잃은 가능성이 될 확률이 높아 조급 해지지만, 여성이 극도로 억압받는 지역에서도 의미 있는 움직임들이 보이고 먼 곳에서도 지지를 보내기 예전보다 쉬워진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은 희망이다. 모여서 강해지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인권 단체에 기부를 하고 오지은의 '작은 자유'를 들으며 마음을 다진다.
내 소설 속 좋은 어른들은 할아버지를 닮았다. 누군가를 동등하게 대해주는 것, 북돋아주는 것, 가능성을 알아봐 주는 것은 교육자의 자질이기도 하고 어른의 자질이기도 한 것 같다. 내가 받은 응원과 지지를 이야기로 감싸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싶다.
이 책은 다른 여행 에세이처럼 화려하고 멋진 사진이 담겨있거나(사진이 별로라 미안하다고 에필로그에서 사과를 해서 더 귀여웠다), 다양한 도시에 대해 쓰여 있지는 않다. 하지만 정세랑이라는 사람, 그녀 마음의 온도가 내 마음도 뭉근하게 데워주는 느낌이라 읽는 내내 흐뭇하게 웃을 수 있었다. 독자 입장에서 작가가 너무 뜨겁거나 차가우면 내 마음이 그들의 온도를 따라가지 못해 아쉽거나 버거울 때가 있다. 그녀의 에세이는 적당히 따뜻해서 마침 차가워진 요즘 날씨에 생각나는 적당히 따뜻한 자몽차 같은 느낌이었다. 오래오래 내 옆에 두고 마실 수 있을 것 같은 책이다.
"나는 나의 최대 가능성을 원해."
최대 가능성이라는 압축적인 다섯 글자로 머릿속이 정리되었다. 이 불완전하고 가혹한 세계에서, 그래도 할 수 있는 데까지 성장해 보고 싶다고 스스로의 욕망에 이름을 붙였다. 외부로부터, 사회로부터 주입되지 않은 종류의 욕망을 가진다는 것은 사람에게 힘찬 엔진이 되기 마련이기에 우리는 욕망에 대해 더 이야기해야 한다.
이 대목을 읽을 때 2018년 5월, 10년간의 회사 생활을 정리하고 '내가 굶어 뒤지더라도 직장인은 절대 다시 안 한다'며 악에 받친 상태로 쓴 나의 글이 생각났다.
30대 중반을 향해 가고 있는 2018년의 나는, 더 이상 이렇게 살지 않기로 결심했다.
내가 남들보다 더 뒤처질 수도 있고 직장인만 한 인생이 없다며 다시 회사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고
여러 가지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를 뒤엎고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더 이상 이렇게 하루하루를 아닌 것 같은 길을 가면서 소모적으로 살지 않을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 빼어난 성과가 아니더라도, 거슬리는 것 없이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이 되지 않더라도,
더 이상 내가 최선을 다해 나의 모든 것을 바치는 것에 소극적인 삶을 살지 않을 것이다.
가혹한 세상이지만 나의 열정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성장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저 나의 열정과 굳센 책임감을 악용하려는 사람들의 밑에 들어가서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 2018. 05. 내가 퇴사 직후 블로그에 썼던 글 중 일부 -
'와.. 2018년의 나는 단단히 빡쳐있었구나'하는 안쓰러움에 쓴웃음이 나왔다. 이후의 내가 선택의 순간에 섰을 때 나의 '최대 가능성'에 집중을 했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매 순간은 아닐지라도 직장인이라는 타이틀을 집어던진 이후의 삶은 할 수 있는 데까지 성장해보고 노력하는 방향으로 얼추 맞춰지고 있는 듯하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나는 저 글을 쓸때보다 더 절박해졌고, 이대로 살다 간 내가 죽을 것 같아 저절로 진정한 나의 성장에 대한 욕망, '최대 가능성'에 집중할 수 밖에 없게 만들어주었다. 그녀의 말대로 우리는 우리의 욕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주저하면 안 된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것을 할 때 우리의 열정이 최대치로 끌어올려지는지, 지금 내가 하는 이 일이 나의 최대 가능성을 해치는 일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멋진 글을 쓰는 그녀는 참 사랑스럽기까지 하고... 다 가졌네, 다 가졌어.
언니, 멋져요. 이 세상엔 참 멋진 언니들이 많아!
진짜로 저보다 언니인지는 모릅니다. 그냥 저보다 멋지면 다 언니에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