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와이
2019년 겨울, 엄마는 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었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네가 많이 아파서, 정신없이 보낸 연말이 아쉬웠거든. 2020년에는 따뜻한 곳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었지. 그렇게 선택한 곳이 괌이었단다. 괌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어. 한국에서 멀지 않고, 아이를 데리고 다니기 편한 곳이라고 해서 선택했지. 엄마도 가보지 못한 곳이라 한 번 가보고 싶기도 했어.
너도 알겠지만 결과적으로 우린 괌에 가지 못했어. 코로나19라는 초대형 변수가 생길 줄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으니까. XXXL 사이즈의 변수가 미련조차 앗아간 것도 있었지만, 생각보다 여행이 취소된 것이 아쉽지 않았어. 엄마의 마음속에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여행지는 아니라 그랬던 것 같아.
엄마가 너와 더 가보고 싶었던 곳은 엄마가 아빠와 신혼여행으로 갔던 하와이란다.
하와이에서 있었던 10일의 시간은 엄마가 평생 살면서 가장 마음 편하게 여행을 했던 시간이야. 그전에 떠났던 여행은 늘 아쉬움이 있었어. 학생 시절엔 돈이 아쉬웠고, 직장인이 돼서 돈이 좀 생기니 이제 시간이 없었지. 이제 조금 몸과 마음이 여행지에 적응될 법하면 다시 출근을 위해 짐을 싸야 했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이것이 정답일까? 정답이라는 게 존재는 하는 걸까?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면 어디로 가야 할까?
이렇게 늘 무언가 부족하고 채워지지 않는 상태로 사는 게 맞는 걸까?
엄마의 마음은 늘 물음표로 가득했단다. 뭘 해도 그 물음표는 느낌표나 마침표로 바뀌지 않았어. 엄마의 마음을 가득 채운 물음표는 거대한 피로 덩어리로 변해 엄마의 온몸을 짓누르기 시작했어. 뭔가 바꾸고 싶은데, 이대로 살아가고 싶지 않은데 어디서부터 뭐를 바꿔야 할지 알 수 없는 혼돈의 상태. 그 상태가 유지되던 30대 초반의 어느 날 엄마는 아빠와 하와이에 있었어.
신혼여행이 주는 달콤함은 생각보다 강력했어. '휴가 쓰는 것에 눈치 봐야 하는 직장인 기준'으로 10일이면 꽤나 긴 시간의 여행이었고, 신혼여행이었기에 돈도 두둑했지. 그렇게 돈과 시간에서 자유로워지니 엄마의 마음도 덩달아 풍요로워지더라. 하지만 거기까지였어. 꽤나 긴 시간이었지만 여행지를 온전히 즐기기엔 여전히 10일은 부족한 시간이었고, 그렇게 펑펑 돈을 쓰고 다녔음에도 엄마의 마음에 수많은 물음표가 남겨둔 구멍들은 채워지지 않더라. 그리고 그 구멍은 점차 커지고 커져서 이제 구멍이 난지, 내가 구멍인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지.
엄마는 더 이상 구멍이 숭숭 뚫린 채로 살고 싶지 않아. 그 구멍을 단단히 채워서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으로 꾹꾹 눌러서 빈틈없이 채워 나갈 거야. 비록 구멍이 뚫렸던 자국은 남아 있겠지만, 그 또한 나의 일부니 그건 담담히 받아들여야겠지. 그렇게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지금보다 조금 더 좋은 엄마로 성장할 수 있겠지.
너와 함께 있고 싶은 만큼 실컷 하와이에 머물며 하와이의 골목골목을 너와 함께 걷고 싶어. 가벼운 옷차림에 발이 아프지 않은 운동화를 신고, 커다란 텀블러 두 개에 각자 마실 물을 담고 허기질 때 먹을 간식거리도 조금 챙기면 좋겠지. 뜨거운 하와이의 태양을 견딜 선글라스와 모자도 챙기고 말이야. 너의 몰랑거리는 손을 잡고 끝없이 펼쳐진 하와이의 황홀한 해변을 걷다 보면 엄마의 마음속 구멍이 빈틈없이 메워질 것 같아.
그렇게 걷다 잠시 쉬고 싶으면, 아무 데나 철퍼덕 앉아 챙겨 온 물과 간식을 먹을 거야.
그리고 이 노래를 함께 듣고 싶어. 엄마는 이 노래를 골랐으니, 너도 한 곡 골라주렴.
반짝이던 Summertime
그 여름밤 순수했던 너와 나
태양처럼 타오르던 넌 어디에
눈부시던 Summertime
그 여름밤 찬란히 빛나던 밤
영원할 것 같던 우린 어디에
돌아와 줘 Summertime
- Summertime, 핫펠트
'Keiki'는 하와이 어로 아기, 아들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2021. 12. 08
너와 가보고 싶은 곳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