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가 엄마의 세계를 무너뜨릴 수 있다.
나의 아이는 절대 키우기 쉬운 아이가 아니다.
정말 그냥 육아가 힘들어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유난히 충동적이고 넘치는 에너지를 소유하고 있다. 누구나 봐도 어떤 부모가 봐도 내게 힘들겠다고 한다.
나는 그저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라서 그러겠거니 했었는데, 작년에 어린이집에서 먼저 아이에게 상담/검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었다. 부모 상담 때에 익히 들어서 아이의 상태를 알고 있었지만(수업시간에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고 교우관계에서도 트러블이 있는 등....) 속으로는 어린이집 선생님이 한번 권유했을 때는 그냥 염두만 하고 있었다. 그러나 두 번째 받은 선생님의 상담 권유는 거의 해야만 한다는 식의 뉘앙스를 풍겼다. 결국 나의 염두는 염려로 바뀌었고 바로 관련 기관에 의뢰를 하였다.
아이가 너무 어려서 어떤 테스트를 받을만한 나이는 아니었지만 어린이집과 연계돼있는 내 거주구의 가족지원 센터에서 선생님이 나와서 아이의 행동을 모니터링했고, 그 결과 성급할 수는 있지만 약간의 ADHD성향이 보인다고 피드백을 받았다. 결국 전문적인 소견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대충 아이를 양육했다가는 아이에게도 좋지 않은 미래가 펼쳐질 수 있고 나에게도 힘든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게 예상되었다. 그래서 결국은 PCIT상담기관에서 주 1회씩 아이와 함께 상담하는 과정을 밟고 있다.
현재까지는 정말 많은 개선을 보여서 대단히 만족하고 있다. 정말 골든타임에 적절한 기관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다소 딱딱한 어조이지만 정말 이렇게 표현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이곳의 상담은 상담을 통해 아이를 치료하거나 바꾸는 게 아니라 나의 아이와 같은 성향의 아이들에게 맞는 행동 기술을 부모가 습득하여 아이에게 좋은 방향으로 걸을 수 있는 길을 마련하고 장점을 끌어내주며, 그로 인해 엄마에게도 육아의 고충을 덜어주고 육아를 좀 더 수월하게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과정이다.
그러나 솔직하게는 이런 기술이 체득화, 자동화, 습관화가 아직 안되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아이가 뜻대로 따라주지 않고 충동적이거나 자체력 없이 행동할 때에는 아이에게 화를 낼 때도 있다. 그럴 때면 화낸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갖고 자괴감에 가끔 빠질 때도 있지만 내가 주양육자이다 보니 하루하루 아이와 살아가야 해서 그럭저럭 그런 충돌의 상황들과 내면의 위기도 잘 넘기고는 했다.
그러나 며칠 전에 아이에게 엄청나게 화를 낸 날이 있었다. 아이가 말을 듣지 않고 계속 유사 행동을 했다. 보통의 날이었으면 단호하게 말하고 지시에 따르도록 했을 텐데 이날은 내가 컨디션이 정말 좋지 않았고(몸이 정말 아팠다) 아이에게 필요 이상으로 화를 냈다. 내가 이성을 잃고 행동한다는 걸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아이에게 계속 화를 내고, 아이는 울고... 정말 그날의 나는 의심의 여지없이 최악의 엄마였다.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너무 미안해서 아침 간식을 챙겨주며 아이에게 너무 심하게 화를 내서 미안했다고 사과를 했다.
아이는 괜찮다고 대답했지만 나는 걱정이 되었다. 경쟁도 아닌데 왠지 나만 못하는 게 아닌 걸 증명받고 싶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단 1일에서 1.5일을 같이 보내는 아빠는 본인이 말을 안들을 때 어떻게 하는지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아이는
"아빠는 화를 내지만 나중에는 화를 그만 내." 그리고 이어지는 말... "근데 엄마는 나한테 괴물처럼 화를 내, 그리고 엄마는 나한테 집중을 잘 안 해. 아빠는 나한테 집중을 잘해."라고 했다.
정말로 충격적이었다. '내가 그렇게 많이 아이에게 무섭게 화를 내는구나, 그리고 나는 5.5일에서 6일을 돌보지만 아이와 질적인 시간을 못 보내고 있구나.' 하는 아이의 냉철한 평가였다.
나는 그동안 나에게 권위가 없어서 아이가 말을 잘 듣지 않는구나 생각을 했었다. 물론 그렇긴 했다. 권위 있는 엄마이고 싶었다면 긴 설명이나 잔소리가 필요 없이 그저 말을 듣지 않을 시 아이에게 예고했던 일들을 실행해 옮기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나는 더 오래 돌보는 주 양육자라는 역할을 핑계로 너무 아이의 양육에 소홀했나 보다. 물론 나는 늘 그렇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사람인지라 내 시간이나 나의 욕구들이 있고 그런 것들을 해소하지 않으면 엄마로서만 사는 삶에 너무 회의감이 느껴질 것 같아 아이와 있는 시간에 60% 정도만 집중했던 것 같다. (핸드폰을 볼 때도 있고 아이가 티브이를 보면 일을 할 때도 있고 집안일이나 청소등을 할 때가 대부분이었다... 진짜 반성해야 돼 나 자신...) 질적으로 충분치 않은데 아이에게 잔소리까지 해대니 아이도 참 힘이 들었을 것 같다.
그나마 아이들은 금방 잊어버리거나 회복탄력성이 강해서 이 정도지, 나중에 아이가 더 자라나면 자아도 생기고 생각하는 머리가 커질 테니 계속 내가 이대로 행동했다가는 엄마의 권위는 바닥을 치고 아이와의 관계가 좋지 않을 것은 너무 뻔하게 예측되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주 양육자가 되는 것에 대해 너무 스스로를 과대평가했나?', '아이를 위해서라도 아빠랑 더 많을 날을 보내게 하는 게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래서 그날 유치원으로 데려다주는 길에 아이에게 물었다. "지금 엄마랑 5-6일 같이 있는데 아빠랑 3일 더 같이 보내는 게 좋을 거 같아?"라고 물어봤다. 아이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아이에게 그렇게 물어보고서도 스스로 후회가 되었다. '내가 너무 쉽게 아이랑 관계가 어렵다고 주양육자 상황을 포기하려는 건가?' 하고 말이다... 속으로는 울고 있었는데 아이 앞에서는 울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다행히 늘 상담하던 상담 센터에서 부모 상담이 있어서 이 고충과 주양육자에서 공동양육으로 방식을 바꾸는 것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상담을 하며 여쭈어 보았다.
나는 상담하는 동안 몇 번이나 울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이 세상에 완벽한 부모는 없어요. 실수를 했으면 다음번엔 그러지 말고 완벽하게 행동을 끊어낼 수 없더라도 그 정도를 줄이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면 돼요. 그리고 절대로 자책하거나 자괴감에 빠지지 말아야 해요."라고, "지금도 충분히 좋은 엄마."라고... 계속 격려해 주시며 지금까지 어려운 과정을 잘 견뎌왔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렇게 상담을 통해 마음을 다잡고 주말에 아빠와 시간을 보낸 아이를 다시 일요일에 만났다.
그리고 나의 다짐을 하루 종일 아이에게 충분하게 실천했다. 휴대폰도 되도록이면 안 보고 친구들과 같이 놀던,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 시간은 나에게도 만족스러웠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아이에게 물었을 때 나랑 보낸 오늘은 행복하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완벽한 엄마는 역시 아니었지만 오늘만큼은 아이와 적어도 온전한 하루를 보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 두어 번 정도 자기 생각과 다르게 엄마가 본인의 말을 잘 안 따라 줄 때 "나~ 그러면 엄마랑 안 살 거야."라고 말을 했고 "그렇게 말하면 엄마가 속상하다고 그렇게 말하지 말아 줘."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자기 직전에도 똑같은 상황이 발생해서 다시 한번 아이를 붙잡고 "그런 말 하면 엄마가 슬프고 속상하다."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아이는 갑자기 울먹거리더니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왜 그러냐고 나는 아이를 안고 달래주며 물었다.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나는 엄마랑 더 많이 같이 있고 싶어."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했어? 엄마가 아빠하고 3일 정도 같이 보내라고 하니까 슬펐어?"
"응... 나는 엄마랑 같이 살고 싶단 말이야."
그제야 나는 아이에게 "너랑 안 살 거야"라는 식의 말은 한 적은 없지만 "아빠하고 더 많은 시간 보낼래?"라는 말이 아이에게는 상응하는 말과 같았다는 걸 깨달았다.
너무너무 미안해서 아이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아이를 계속 몇십 분이나 다독여주었다.
"엄마는 너를 너무 사랑해. 엄마가 그날은 너무 힘들어서 그런 거 같아. 그런런데 이제는 엄마 더 마음이 강해졌고 절대 널 포기하거나 아빠에게 보내지 않을 거야. 엄마는 정말 널 사랑하니까 엄마가 너한테 더 잘할게." 아이는 계속 속상했는지 내 품에서 울음을 그치다가 울다를 반복하였다. 그리고 자기 전 우리 아이가 좋아하는 책 두 권을 읽어주며 이날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였다.
참... 부모가 되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구나. 특히 좋은 부모가 되는 일 말이다...
다행히 나에게는 아이와 같은 괴물 같은 회복탄력성이 있어서 이 일이 트라우마가 되거나 심적으로 힘든 사건이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러나 어쩌면 나는 이기적으로 아이를 양육했던 것 같기도 하다. 주양육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아이에게 시간만 쓴다고 육아가 되는 게 아닌데, 질적인 면을 높이지 못했던 것과 내가 아이를 돌본다고 해서 내 일을 할 시간이 줄어드는 효율성 따위를 재단했던 것, 그리고 아이와 있는 시간에 행복감이나 즐거움 그리고 아이 존재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한 것들 말이다...
정말 아이와 함께 있을 때는 아이에게 집중하는 모습만 있어도 내 아이는 정말 행복해할 거라는 걸 안다. 이제 길고 정직하게 이 다짐을 아이와 나 스스로를 위해 실천하는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