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첫번째 썸남 2킥 그 후...
SF와의 이별은 나의 예상을 뛰어넘어 이렇게 평화스러울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고 진한 여운이 남았다. SF를 거절한 이유는 그와 나의 다른 사랑의 언어 차이도 있었지만, 또 다른 이유는 내 자신에게 있었고 그 중 하나가 둘이 데이트를 할 때 나누었던 대화중 그가 두 번 정도 언급했던 부분이었다.
가정법이지만, 그가 "우리가 지금이 아니라 몇 년 전에 한국에서 만났다면 어땠을까? 너의 아이가 우리의 아이일수도 있다."고 농담삼아 얘기하기도 했었고, 또 다른 날에 "만약 우리가 과거에 만났다면 지금은 내가 본인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을 수 있다."고 했을 때 나도 맞장구 치듯 "내게는 딸이 없으니 딸이라면 그렇게 되었을 수도 있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본인의 판타지 중 하나가 자기가 좋아라했던 체조를 본인의 딸도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늘 '내 인생에 딸이 있을거다.'라고 당연히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내게는 아들이 찾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딸을 갖기 위해 아이를 또 갖는 모험을 하고싶지 않고 다시는 지금까지 겪어온 과정을 또 다시 되풀이 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SF의 어린시절 사진을 보게 되었는데 늠름한 아기천사의 모습이였다. 그리고 '미래에 그와 아이를 갖게 되면, 그리고 그게 딸이라면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울까?' 라는 상상을 자꾸하게 되었다.
미래에 SF와 함께하는 나를 상상하면서 내 이성과 본능적인 욕구가 충돌하는 지점을 발견했다. 상상하는 일이 언제 일어날지도 모르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미래이지만 나는 그와의 관계를 끝냄으로 이 가능성을 완전 차단하고 '나에게 집중하는 삶'을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그걸 이별의 순간에 얘기했더니 그는 다소 안타까워 했고 대화 끝무렵에는 카톡 연락처를 지우지 않고 있을테니 당장 연락하지 않더라도 언젠가 연락을 하고 싶은 순간이 오면 해달라고 했다.(본인이 할 수도 있고...)
난 그것이 마지막 통화일거라 예상해서 그 시간을 간직하고자 녹음을 했다.(나도 참 별난 인간이다) 그런데 며칠간이나 그와의 마지막 통화가 계속 생각이 났고 몇번이나 녹음한 통화 내용을 다시 들었다. 정말 말도 안되게 그렇게 목소리에게 확신했던 감정의 틈에서 SF에 대한 '미련'이 싹트게 된 것 이다.
그래서 그 후에 그와 뭔가 더 있는건가?
그렇다. 결국은 두번째 썸남 3킥 후 나는 SF에게로 돌아갔다.
물론 내가 느끼는 감정의 강도가 두번째 썸남에 비하면 조금 더 가벼운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 가벼움이 좋았다. 그 가벼운 감정이 헤프거나 소중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관계를 지속하며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 현재의 내게 필요한 감정의 무게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또한 가볍다고 해서 진심이 아닌건 아니다. 진심을 다하고 솔직하게 지내다보면 그 무게가 무거워지는 순간이 올 수도 있을테니 말이다.
그와 나, 둘 다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나는 작가 지망생이자 워킹맘, 그는 리크루팅 서비스 앱 회사의 대표이면서 서로 목표하는게 있고 각자 하고 싶은게 많다. 그래서 서로의 시간을 존중해줄 수 있는 이해의 폭이 넓은 상황이다. 그러나 서로 이해만 하고 배려만 하다가 그 감정의 크기가 계속 커지지 않고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결론적으로는 그렇게 의미있는 관계가 될 수 없을것이다.
나는 늘 속도가 빠른 사랑을 해왔던것 같다. 불같이 타오르다가 금방 꺼져버리는 그런 사랑을... 그래서 실수가 많았고 짧은 연애들도 꽤 많았던 것 같다. 또는 누군가를 천천히 알아가고 이해하고 진득하게 받아들이는 그런 성숙한 연애는 해본적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한번 그 사람에게 빠지면 그 사람을 믿고 계속 나답지 않은 채로 연애를 지속하게 되었고 그 연애의 끝이 그렇게 좋진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세대로써, 모든걸 초고속으로 해결할 수 있고 빠른 소통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기에(나야나...) '기다림의 미학'이라던가 '진득함'을 추구하는 인간관계는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게 어려울 수도 있는 방법을 시도해보면서 정말 차곡차곡 신뢰를 쌓는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지가 궁금해서 시도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런 관계를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싶다.
그렇다고 상황 유지를 위해 억지로 나를 끼워맞추진 않을것이다. 언제든 내가 싫다면, 나답지 않다고 느낀다면 용기있게 '아니'라고 결론 지을 수 있도록 늘 내 생각과 감각을 깨우고 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