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해결의 훈련장
내가 이 길을 처음 선택했을 때, 아버지는 고개를 갸웃뚱하셨다.
“혁신경영? 그게 무슨 공부니?”
MBA가 대세이던 시절, 나는 새로 생긴 ‘혁신경영학’라는 신설 학과를 택했다.
혁신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궁금점으로 시작한 무모한 도전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선택이 내 커리어의 방향을 바꾼 출발점이었다. 우리과는 경영·디자인·기술의 융합을 목표로, 여느 영국 석사 과정과 달리 2년제로 현장학습이 필수로 포함되어 있었다. 강의실에만 머무는 학문이 아니라 실제 기업 문제를 다루며 배우는 과정이었다. 새로 시작하는 학과이다보니, 다양한 기업 출신의 튜터들과 새로운 프로젝트가 많았다. 우리 튜터는 P&G 출신이었다. 그는 한 번에 답을 주지 않고, 질문을 질문으로 답하여 나를 더 깊이 고민하게 만들었다. 대신 “혁신은 결국 끊임없는 문제 해결의 과정”이라는 말처럼, 문제의 핵심을 다시 바라보게 만들었다.
한 학기는 실패한 프로젝트를 건네받아 우리가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미션도 있었다. P2i 특수원단을 활용한 프로젝트가 그중 하나였다. 원단은 완벽하게 젖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염물도 단번에 튕겨냈다. 촉감도 변하지 않고 디자인도 그대로지만, P2i 코팅 표면 덕분에 섬유의 내구성과 방수 성능은 극적으로 향상된 것이다. 자신들은 처음에 운동화를 만들었다고 하면서 실패담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들이 실패한 것을 우리가 할 수 있을까하는 마음이있었지만, 우리는 팀으로 모여 다양한 아이디어로 상품화 방법을 구성했다. 어떤 팀은 반려견을 위한 아이디어를 냈고, 어떤 팀은 의류와 관련된 아이디어를 냈다. 우리는 방수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을 고민하였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한 아이디어는 의료복과 방수 케이스. 해법을 모색하는 과정 자체가 값진 훈련이 되었다.
영국의 혁신적인 기업 WhatIF, Liberty London, Monocle 의 창업자 또는 대표와 같이 다양한 스피커들의 강연도 잊을 수 없다. 그들의 성공과 실패담을 들으며 배운 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태도였다. 문제는 언제나 예기치 못하게 다가오고, 해법은 혼자가 아닌 협업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내 석사 논문 주제는 국가브랜딩. 이론으로만 다루기에는 부족했다. 그래서 기업과 국가, 두 무대에서 어떻게 브랜드가 만들어지는지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다. 운이 좋게도 나는 국가브랜드위원회와 영국 LG디자인센터에서 인턴십을 하며 글로벌 브랜딩의 현장을 살짝 맛볼 수 있었다.
국가브랜드위원회에서는 한국에 대한 인식을 조사하는 일을 맡았다. 당시 사용되던 슬로건—‘다이나믹 코리아(Dynamic Korea)’, ‘스파클링 코리아(Sparkling Korea)’—이 뉴스와 대중 담론 속에서 어떻게 소비되는지를 분석했다. 그 과정에서 ‘국가’라는 거대한 브랜드도 결국은 사람들의 언어와 감각 속에서 읽힌다는 사실을 배웠고, 우리가 생각하는 단어의 의미와 받아들이는 사람이 느끼는 온도차는 매우 클 수 있다는 것이었다.
LG디자인센터에서는 런던 관광지와 유럽냉장고 관련 프로젝트를 보조했다. 런던 디자이너들이 문제를 푸는 방식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는데, 정식 회의보다 펍에서의 대화 속에서 더 창의적인 접근법이 오갔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문제 해결은 공식적인 자리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이고 자유로운 순간에도 태어난다는 점을 체감했다.
그 후 한국무역협회와 함께 더 큰 무대에 참여할 기회가 찾아왔다. 2010년 상하이 엑스포 한국 비즈니스관과 G20 서울 비즈니스 정상회의 준비였다. 상하이 엑스포 주제는 ‘성장과 지속성’. 특히 한국 비즈니스관은 해외 엑스포 사상 최초의 기업 연합관이었기에, 한국관과는 차별화된 경험 설계가 필요했다.
우리는 ‘상하이 시민에게 선물을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전시 아이디어를 현실화했다.
전시관에서 눈을 내리게 하는 ‘첫 눈의 경험’
전시관 PVC를 재활용해 만든 에코백
미디어월과 터치스크린으로 구성된 미래 체험관
핵심 과제는 단순히 전시를 꾸미는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국제 관람객의 동선을 어떻게 설계할지, 각국 정상과 기업인이 모인 자리를 어떻게 ‘경험’으로 풀어낼지가 진짜 도전이었다. 우리는 공간을 하나의 언어처럼 다루며, 문화적으로 적합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고심했다.
그 결과, 한국 비즈니스관은 ‘체험이 가장 풍부한 지혜의 전시관’으로 평가받으며 엑스포 오스카상을 수상했고, 기업관 중 관람객 수 4,711,848명으로 외국기업관 1위를 기록했다. 세계 최초의 기업 연합관이라는 타이틀도 함께 얻었다.
기업도, 기관도, 목표도 달랐지만, 결국 공통의 과제는 하나였다. 서로 다른 언어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협업할 것인가. 그리고 각자의 사고를 어떻게 전환하여 하나의 결과로 빚어낼 것인가. 그 훈련의 장이 바로 나의 석사 시절이었다.
KOTRA와 함께한 런던 해롯백화점 프로젝트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세계적인 백화점에 한국 제품을 단순히 진열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가 핵심이었다. 영국인에게 한국 브랜드는 낯설었기에, 그들에게는 ‘물건’보다 ‘이야기’를 전달해야 했다. 기획된 전시 공간을 하나의 무대로, 제품을 하나의 캐릭터처럼 풀어내는 과정에서 나는 스스로를 ‘문화적 통역자’라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한국에 대한 인식은 곧 브랜드에 대한 인식이라는 것을.
런던에서 서울시 통신원으로 활동하며 바라본 영국의 도시들 역시 내 시야를 넓혀주었다. 킹스크로스 재개발, 서펜타인 파빌리온 같은 현장을 직접 보고 기록하면서 알게 되었다. “도시도 브랜드가 될 수 있구나.” 건축과 공간, 정책과 문화가 어우러져 시민 경험을 바꾸는 과정을 보며, 문제 해결의 원리는 기업을 넘어 도시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 시절의 경험은 내게 협업의 성과와 한계를 동시에 알려주었다.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 놀라운 해법이 나오기도 하지만, 언어와 목표의 차이로 좌절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그 과정을 통해 가장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문제 해결이란 내 언어를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언어를 이해하고 이어주는 일이라는 것.
돌이켜보면, 그때의 프로젝트들은 단순한 업무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에게 ‘문제 해결의 훈련장’이자, 훗날 브랜드 경험을 설계하는 데 기초가 된 가장 값진 자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