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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날 Sep 21. 2022

나에게 '글쓰기'란?

 나는 전문적으로 글쓰기를 배운적이 없다. 고등학교 때 수시를 준비하며 논술을 배운게 다이다. 당시 논술 선생님께서 나의 글이 샤프하다고 해주셨는데, 그냥 영혼없는 일상적인 칭찬이었던 것 같다. 당시의 기억중에 생생히 생각나는 것이 있는데, 논술이 대개 그렇듯 특정 주제에 대해 A와 B 입장 중 나의 입장을 정하여 서술을 하여야했다. 그런데 나는 A와 B 입장 모두에게 동의할 수 없었고 (둘 다 모두 극단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A와 B 어딘가 내 입장의 글을 썼는데 선생님께서 논술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의 말씀이 맞다. 논술은 결국 나의 논리력을 보는 거니까. 그래서 나는 논술이 재미없었다. 이후 논술학원을 몇개월 다녔지만 수시에서는 다 떨어졌고 결국 정시로 대학을 갔다.


나에게 글쓰기란, 토해냄이다. 나의 생각과 감정의 토해냄. 한때는 강렬한 감정이 휘몰아치면 글을 쓰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는 시기도 있었다. 토해내야하는 것이다. 그렇게 글을 통해서 나 자신을 토해내면 마음이 좀 가라앉곤 했었다. 가끔은 감정에 침전될 때 누군가와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는 것보다 글을 쓰는 것이 더 안정감을 주기도 한다. 가장 솔직할 수 있으니까. 온전히 나의 감정과 생각에 집중할 수 있으니까. 글 쓰는 시간은 나에게 그런의미인 것 같다.


내 기억이 맞다면, 초등학교 4학년 때즈음부터 일기를 썼다. 그때 썼던 일기장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그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일기를 썼었고, 대학교에 들어가서는 손으로 쓰는 일기보다는 블로그 등을 통해서 나의 생각을 썼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 썼던 일기중 기억나는 것은 '나는 이 정도면 다 큰 것 같은데, 더 이상 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이다. 놀랍게도 신체적인 것을 말하는게 아니고 정신적인 부분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도 초등학생 때였던 것 같은데 한창 해리포터에 빠져있을 당시, 당시에 읽었던 <안나의 일기>에 영감을 받아 '덤블도어'에게 편지를 쓰듯이 일기를 쓰던 적도 있었다.


글을 쓰는 시간에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내 자신에게 귀기울이는 시간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사실 일상생활을 하면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 시간이 별로 없다. 사람 대 사람 간의 의사소통은 쌍방이어서 상대의 말을 듣고 그에 따라 내가 반응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글쓰기는 어떠한 방해 없이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다. 그런 시간들을 통해 생각을 정리하기도 하고, 재충전을 하기도 한다. 어릴적부터의 글쓰기를 통해 외부 대상에게 의지하는 것이 아닌, 혼자서 내면의 힘을 기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참 다행이다.


20대 시절 '왜 살아야 되는가'라는 질문을 하기 시작한 즈음과 직장을 시작하고 한 2년동안은 글을 쓰지 못하였다. 나름 시도는 하였는데(브런치에 17년도에 2편을 썼다) 굉장히 힘이 들었다. 시작하는게 매우 힘이 들었고 한글자 한글자 써내려가는게 힘들었다. 돌이켜보면 당시엔 내 내면을 들여다 볼 힘조차 없었던 것 같다. 내 자신을 방치하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 들여다 볼 여유가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 엄청나게 의욕이 넘치는 그런 상황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제는 내 자신을 살펴볼 수 있다.


나에게 글쓰기란 '나 자신과의 대화'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화는 인생을 좀더 단단하게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과 대화를 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다. 그중에서 글쓰기가 나에게 제일 잘 맞았다. 나의 말에 가장 귀 기울여줄 사람은 나 자신이다. 이를 잊지 말자. 이를 잊지 말고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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