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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존재 Nov 14. 2021

앨범을 들으며 자유연상 4

harukana nakamura - Still life

여전히 어딘가의 본능이 타자를 원한다. 본능은  그대로 본능이기 때문에 그것을 거스를  없다. 이젠  수를 바라지도 않는다. 애초에 내게 소타자로 욕망되는 것은 영원히 만족될  없는 무언가 이니까. 도달할  없는  애초에 바라기를 그만두면 편해진다. 차라리 닿을  있는 지식과 성취를 추구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나이먹음이란 체념의 이로움을 배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더 이상 무언가를 토로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토로한들 형체를 가질까. 희여 멀건 한 몸부림으로 간신히 앉아있다 떠나지 않을까. 그런 게 의미가 있을까. 생 의지가 갈수록 이분화되고 극단화되는 것 같다. 모든 것엔, 이제는 감정마저 의미가 없다는 한편과, 그럼에도 지식을 추구하고 삶을 지속해야 해 하는 다른 편. 그런 양극을 한 정신 안에서 느낀다. 묘한 기분이다. 외적으로 정갈하고 성실한 삶을 살아가는 중이더라도 이러한 일부는 늘 감정의 어딘가에 똬리를 틀고 앉아있다. 외면하려야 외면할 수 없다. 뇌의 뿌리가 이것에 붙들린 듯해, 별 수 없이 언제까지나 이곳에 있을걸, 하며 담담하게 되뇔 뿐이다.


어쨌든 인간은 익숙해져 가는 동물이니까. 타고난 신경증도는 나이를 먹으며 경험이 쌓여갈수록 줄어든다고 한다. 양극 사이에서도 나아지고 있다. 아직 20대 중반밖에 안됐는데 벌써 건강한 정신 직전에 도달한 것 같아 내심 뿌듯하다. 고등학생 때 그대로였다면 암울함이 변하지 않은 채로 매일에 스며들었을지도 모르기에 더욱. 30대가 되면, 40대가 되면 어떻게 새로운 정신을 유지하게 될까. 비록 육체는 노쇠해져 가겠으나 내가 귀히 여기는 것은 정신이므로 정신을 보필할 정도로만 몸을 망치지 않으려 한다. 그러다 보면 건강한 추구나 사랑이나 욕망이나 꿈같은 것들을, 내가 좋아하는 색 같은 것들을 즐겁게 찾아가게 될 것이다.


소타자적 욕망이 갈망하는 타자엔 도달할 수 없으니, 착실히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세계를 건축하는 것이 이롭다. 소타자/대타자적 욕망과 내가 진정 바라는 것을 구별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외부에 의해 덮인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차분하고 끈질기게 채굴 작업에 임해야 한다. 명상을 하고 사고를 새로이 하고, 자신에게서 거리를 두고.


이 모든 것은 바라는 것을 쓰고, 듣고 느끼는 것을 쓰고, 또 말로 옮길 수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 그걸 말할 때 어색하지 않은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인간으로 사람들과 어울려 살기 위해서. 때론 넋 놓고 바다의 오고 감을 볼 수 있는 인간으로 자랄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이다.


어쩌면 그때엔 양극마저 홀연히 지워지고, 나만이 오롯이 남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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