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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Aug 27. 2024

나는 일주일마다 아버지를 만난다

자식으로서의 책임감, 그리고 스스로에게 주는 확언적인 신념

280번째 에피소드이다.


5년 전 부산을 다시 내려오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스무살 부산을 떠나면서 다시는 부산에 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불우한 청소년 시기를 겪었다고 스스로 생각했고, 무엇보다도 사춘기 시절 내내 내 방이 없이 엄마와 함께 자야했던 그 기분이 서글펐다. 대학입학과 동시에 내겐 기숙가 등과 같이 방이 생겼고 자취를 하면서 완전히 독립적인 생활에 적응했다. 대구에서 서울로 오고 가는 일이 많이 생기면서 혼자 스스로 해내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고 더 편했다. 이십대 중반에는 1년에 설날, 추석 제외하고는 부산 집에 가지도 않았다. 그만큼 떠나고 싶었던 고향이었고 불편한 존재였다. 심지어 이런 적이 있다. 서울에서 막차를 타고 내려오다가 내릴 역이었던 동대구역에서 깜빡하고 졸다 내리지 못했을 때, 내 선택지는 부산이 아닌 신경주역에서 내려 대구로 택시를 타고 오는 것이었다. 이해가 안 갈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 내게는 그리 부산 그리고 우리집과 부모는 반갑지 않은 존재였다. 엄마는 내게 가끔씩 제발 전화만이라도 받아달라고 사정했을 정도였다. 부모의 전화는 기본적으로 받지 않고 메세지로 요약해서 달라고 했으니, 얼마나 불효자였는지 알 수 있다. 수십통에 한번씩 백콜은 하는 편이었으니 회신률은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했다. 그만큼, 그때 나는 존재의 부정을 하고 싶었다.


부산을 내려올 기회가 마련되고 전혀 상관없었는데도 불구하고 한켠에서 '부모와 같이 살아볼 마지막 기회'란 생각이 자리잡았다. 이십대부터 삼십대까지 부모와 떨어져 살았고 그마저도 아버지는 내 십대중반에 타 지방으로 가 살았기에 내 인생 절반은 따로 살았다. 가깝다기보다는 오히려 먼 존재였지만, '같이 살아볼 기회'란 단어가 내 마음을 사로 잡았다. 부산에 처음 내려와서 같이 살 때는 너무 불편해 통장 잔고를 매일 확인했다. 새로 집을 구할 요량으로 알아보다가도 경제적 이익보단 부모의 정서적 교감이 더 컸으니 수년간을 함께 했을 거다. 엄마가 먼저 아팠고, 그 이후 아버지가 아팠다. 제대로 된 자식 도리를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멀리 있는 누나보다는 내가 집안일을 도맡아서 해야했다. 서울에서 수술을 마치고 부산의 재활병원에 입원한 아버지를 보기 위해 일주일마다 하루씩 가고 있다. 이게 생각보단 별 게 아닐 수 있지만, 직장을 다니면서 미래지향적 진로를 동시에 쟁취하기 위한 노력과 동반된 '일주일에 한번'은 눈깜짝할 사이에 다가온다. 정신없이 며칠을 지내고 보면 병문안 갈 시간이 다가온다. 빈손으로 갈 순 없기에 엄마와 상의해서 필요한 집기구, 간식 등을 챙겨서 이동한다. 재활병원이다보니 그리 교통편이 좋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애를 먹지만 정말 한번도 일주일에 한번은 빠지지 않고 방문했다. 4인 1실을 쓰기에 같이 있는 환자 분들 가족이 나를 보면 '효자'라고 칭하는데 굉장히 어색한 표정을 지우지 못한다. 그만큼 나는 효자가 과거에도 아니었으며 지금도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엄마도 내가 일에 지친 기색을 감추지 못해 굳이 일주일에 한번은 꼭 안 와도 된다고 말했지만 나는 확언적인 신념같이 지키기 위해 모든 집중을 하고 있다. 문득 내가 왜 이럴까 스스로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내가 내린 결론은 "그 순간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 후회라는 것이 부모에 대한 불효의 미안함이 아니라, 나는 아버지가 다시금 벌떡 일어나 꼰대같은 모습을 유지한 채 사회를 맞이할 것임을 믿어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다시 걷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또는 그 순간을 놓치고 후회하지 않기 위해 빠짐없이 병문안을 간다. 내가 갓난아기 시절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 그걸 보고 있는 부모의 행복함과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을거다. 모든 부모에게 그 순간과 억만금을 바꾸자는 거래를 제안한다면 거절할거다. 그만큼 순간의 기억은 소중하고 강렬하다. 그 순간으로 뒤이어 찾아올 삶에서의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만다. 그게 자녀가 부모에게 주는 행복이자 책임감이다. 이제는 상황은 역전되었다. 부모는 나보다 훨씬 더 약해졌고 삶을 이겨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아버지가 다시 일어서서 걷는 순간, 내가 그 자리에 있어 그 감동을 느낄 수 있다면 나 역시 앞으로 올 삶에서의 고난과 역경을 단단한 책임감을 가지고 이겨낼 것이다. 나는 나중에 내가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이룰 가족에게도 이 행복과 책임감을 동시에 받기도 하고 전달해주고 싶다. 가족은 단단할 것 같지만 느슨하고 느슨한 것 같지만 단단하다. 그게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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