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공동체가 끊임없는 고민으로 힘을 발휘하는 순간
286번째 에피소드이다.
오늘은 우리 가족 일원인 매형에 관한 이야기다. 매형은 내가 굉장히 칭찬을 아끼지 않지 분이다. 내가 원체 스스로 잘난 맛에 살기에 칭찬에 인색한데 매형에게는 닮은 점이 참 많다. 내게 첫 기억은 열여덟 고등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춘기가 쎄게 와서 공부에 흥미를 잃고 있던 내가, 또 하던 가닥이 있었던지 중간고사를 완전히 망치긴 싫어 억지로 억지로 꾸역꾸역 모든 과목을 벼락치기로 보고 집으로 후딱 도망왔다. 하기 싫음을 인지하지만, 결국 학생으로서 먹고 살려면 어느 정도는 해내야 한다는 이율배반적인 감정을 꾸역꾸역 눌러 왔기에 집에 도착하자마자 현관문을 열고 소리를 질렀다. "으아, XX 시험 끝났다." 당연히 집에 아무도 없는 경우가 많았기에 그랬는데, 갑자기 누나가 나와서 "야, 너 돌았어?"라고 적절한 욕설을 날렸다. 그 뒤로 키큰 남자가 나왔고, 그게 현재의 매형이 되었다. 서울로 먼저 가 자리 잡은 매형은 누나와의 결혼부터 해서 가정을 이루고 일하는 회사에서도 인정을 받는 아무 균형잡힌 밸런스를 갖춘 사람이다. 그 점이 난 참 존경스러웠다.
내가 서울에 올라가 일할 떄가 되어서,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도 밤 늦게 까지 시간을 내어 함께 부동산을 알아봐주었고 간혹 집을 방문하면 조카들에게 얼마나 외삼촌에 대해서 잘 말해주었는지, 조카들이 나를 누구보다 더 좋아하게끔 만들어주곤 했다. 그리고 내가 꼭 배워야 겠다고 생각했던 건, 바로 육아하는 모습과 방식이다. 뭐, 우리 누나를.. 남매로 봤지만 뭐.. 그렇다. 매형이 취사병 출신이셔서 요리도 잘하고 청소부터 집안일까지 정말 만능이다. 항상 짜증 한번 없이 웃으면서 하다가도, 아이들과 잘 놀아준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딱 예의가 없거나 도를 넘는다 싶으면 그때는 딱 잘라준다. 그 적절한 타이밍에 매번 놀라는데 이건 어찌보면 본능이다. 그리고 가장 배우고 싶고 고마운 건, 엄마와의 살가운 통화이다. 나는 일단 사회성이 결여되어있을 만큼 답도 없는 성격에 소유자고, 누나는 무뚝뚝함의 정석이다. 남매가 이러다보니, 엄마에겐 하나의 거대한 벽이 세워 있는 느낌이었다. 그 바쁜 가운데서도 매형이 엄마와 미주알고주알 사사로운 세상 이야기까지 엄청 긴 전화를 한다고 알게 되었을 때 내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을 넘어 그걸 자진해서 했다는데 굉장한 고마움을 느꼈다.
설날 연휴 기간 매형과 누나네 가족이 부산으로 내려와 집에서 머물다가 매형과 누나와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난 이 집에 오면서 사위보단 아들로 왔다고 진심으로 생각한다." 하면서 운을 띄우는 모습과 털어놓은 고민의 지점이 상당히 진지했다.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는 아버지의 재활, 그리고 간병을 전담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자식들이 관계자이자 주변인으로 있으면서 어찌할바를 모르는 상황에 오히려 중재를 나선 매형이다. 누나와 깊은 대화도 했겠지만, 결국 매형의 결단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아이디어였다. 여러가지 안의 장단점을 따지면서 1시간도 넘게 대화를 했다. 결국 무엇이 선택되든지 '설득'의 장기레이스이자 판짜기달인이 되어야 한다. 오랫동안 고민하고 가족 공동체가 또 향후 어떤 형태와 모습을 이루고 살지 힘을 모아야 한다. 가족이란 개념에 대해서 난 최근, 여러가지 일들로 인해 생각해보는 계기를 가진다. 개인주의자였던, 또는 현재도 개인주의자인 나에게 공동체란 관점은 사회적기업 창업이나, 사회적경제 연구를 하면서 조금이나마 익숙해지고 가까워졌지만, 가족이란 개념은 그리 와닿지는 않았다. 그저 나를 낳아주고 키워준 고맙고 평생 은혜를 갚을 존재라는 것에 가까웠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교과서에 나올 법한 한자는 누구보다 잘 외우고 알았지만, 가장 기본적인 공동체 unit인 가족에 대해서는 깊은 성찰과 고민을 할 기회가 없었다. 아니, 어찌보면 내가 좀 결여되어 있거나 이해도가 많이 떨어지는 편이 더 맞을 듯 하다. 무튼, 요 몇년 간 체득화하는 과정에서 가족을 알아가며 함께 고민하는 대상이 매형이나 조카까지, 더 넓게는 사돈 어르신들까지 있음을 알아가고 있다.
내 스스로 서른 아홉 즈음에는 결혼을 해야 겠다고 얼마 전부터 다짐하고 있다. 단순히 조급함이나 쫓겨서가 아닌 그때즈음이면 단순 사회의 시선, 편견, 평판 등 외부요인이 아니라 내가 가족을 이루고 어떤 것들을 꼭 하고 싶고 함께 해나가고 싶은지 확신과 함께 진정한 용기가 생기는 내적 성장을 현재보다 훨씬 이룰 것 같다. 그 고민을 끝내면 진정한 내 가족을 이룬다는 첫 단계인 '결혼'을 고뇌없이, 두려움없이 해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