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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두개도 바쁜 엄마의 컵라면

최근 먹은 컵라면 중에서 가장 진중하고 든든했다.

by 커피 한잔의 여유

291번째 에피소드이다.


타 직장인에 비해 조금 여유롭게 움직일 수가 있어, 늑장부리고 뒤척이다 가방 메고 현관문을 나섰는데 엄마와 바로 마주쳤다. 요새 우리 집 흐름도는 아래와 같다. 우선 병원에서 내가 병문안을 가야 부모님을 온전히 볼 수 있다. 내가 출근했을 때는 엄마가 찰나의 시간을 활용해서 집에 와서 일부 가사일 등을 하고 개인적인 용무를 보기에 나와 마주칠 일이 없다. 내가 퇴근하고 비로소 집에 왔을 때 누군가가 다녀간 흔적이 생기는데 그건 엄마의 흔적이다. 엄마는 요새 몸이 두개여도 바쁘다. 올해 늦깍이 대학생으로 입학하면서 병원에 있다 주2일은 학교로 잠시 몸을 옮긴다. 그리고 학교에서 병원 가는 도중 집에 들러서 엄마가 생각하는 집안일을 하다가 가는 코스다. 그렇기에 나와 활동시간대가 전혀 다르다. 한집에 두명이 살고 있지만 만날 일이 없다가 오늘은 우연치 않게 만났다. 엄마의 손에는 컵라면 두개가 들려있었다. 내가 물었다. "왜 라면이 두개에요?"


엄마가 말했다. "몰라, 그냥 오늘은 두개를 사고 싶었어." 미신이나 운명론자도 아니지만 그 한마디에 나는 짐을 풀고 엄마에게 말했다. "물 끓일테니 같이 먹어요." 주섬주섬 라면을 끓이면서 아버지의 재활 여부를 묻다 이내 오늘만큼은 그저 늦깍이 학생으로서 엄마가 지금 하고 있는 공부에 대해 물어보기로 작정했다. "시험은 언제 쳐요?"란 대답에 "오늘" 이란 예상치 못한 대답과 함께 컵라면을 먹으면서 한 손에는 시험범위로 보이는 요약지가 들려있는 걸 확인했다. 아? 내가 대학을 졸업한지 너무나 오래되어서, 또는 직장인 생활패턴에 너무 익숙해져서 학생들의 시험기간을 미쳐 몰랐다. 갑자기 나도 마음이 급해졌다. 컵라면을 먹는둥 마는둥 하면서 단기 속성 암기법을 전수하는데 몰두했다. 요새 엄마는 이렇게 몸이 두개라도 바쁘다. 하지만, 한편으론 엄마는 행복해보였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함께 같은 대학, 같은 학과로 이동한 진정한 친구들. 대부분은 다 가진 그 추억을 엄마는 가지지 못했기에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듯 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간병과 재활치료로 지친 심신에서 그나마 해방할 수 있는 통로이기도 했다. 그렇게 엄마의 손에는 사회복지학 전공서적이 들려있었다.


나보다 더 급하게 움직여야 하는 엄마를 위해 택시를 잡아줬다. 카카오택시 앱을 쓰는 방법을 여러 차례 알려 주었지만 쉽지 않다. 언젠가 무조건 무한 반복 학습으로 이걸 꼭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60대의 사회복지학 전공자이길 진심으로 바란다. 엄마를 먼저 보내고 식탁에 덩그러니 놓여진 컵라면을 보았다. 꽤 시간이 지나 면을 풀어터있었고 국물은 이제 더 진해졌다. 그걸 보다가 신 김치와 함께 그대로 내 목구멍으로 털어넣었다. 짠 국물이 정신을 번뜩이게 하다 굵어진 면발이 그걸 식혀준다. 최근 먹은 컵라면 중 가장 진중하고 든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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