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사회 생활 복귀 및 적응 준비기
292번째 에피소드이다.
누나네 가족들이 여름 휴가를 부산으로 온다기에 조카들과 어떻게 놀아줘야 하나를 고민하고 있던 찰나, 엄마의 전화 한통이 왔다. "아빠도 이번에 집으로 갈꺼다." 그 소리에 순간 정적이 흘렀다. 1년 6개월 즈음 지난 것 같은 기간 동안 아버지는 병원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시지 못했다. 진단 이후 수술, 그리고 재활 속에서 결국은 희망만 존재하진 못했다. 재활은 끝없는 동일한 훈련과 작업의 반복 과정이다. 그 속에서 대부분은 당사자가 먼저 쓰러지는데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무척 낙천적이다.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노화가 바로 장애지, 즉 나도 이제 일흔을 바라보고 있는데 장애가 없는게 말이 안되잖아. 이건 자연스러운거야." 물론 아버지도 그 말을 하면서 얼마나 감정을 부여잡고 있을지는 짐작할 수 있지만 말이다. 엄마도 지친 기색이 역력하고 나도 가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과 직면하다. 누나와 매형은 본인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특히 이 시기를 거치며 매형에 대한 존경심 그리고 정말 귀감이 될 만한 어른을 가까이서 보게 되어 대단히 영광이다.
'두리발' 이라고 지자체에서 장애인들을 위한 택시 서비스가 있다. 등록과정도 꽤 까다롭고 많은 차량을 운영하진 않는다고 알고 있어 대기시간을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빠르게 차량 배치가 되었다. 휠체어가 가장 적합히 들어갈 수 있는 구조로 차량을 개조해놓고 택시 가격보다 값싸게 이용할 수 있다. 문이 열리고 아버지가 정말 오랜만에 집에 도착했다. 아버지도 감회가 새로운 듯, 집안 이곳저곳을 둘러보는데 여념이 없었다. 부지런한 엄마의 노력으로 아파트의 입구 문턱부터, 방과 방 사이의 문턱, 화장실 개조를 모조리 해놓은 상태라 아버지의 사회 생활 복귀가 쉬울 것만 같았다. 오랜만에 우리 가족 모두 저녁을 같이 먹었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꺼내는 펄벅의 소설 '대지'가 또 한번 떠올랐다. 저녁을 먹고 아버지가 자신이 집으로 복귀했을 때 마냥 집에 있을 순 없으니 도보로 10분 내외 떨어진 빌라형 오피스텔을 가보자고 했다. 매형, 나 그리고 엄마가 함께 따라나섰다. 먼저는 매형 차로 이동하려고 했는데 휠체어를 차량 가까이 붙여도 현재 아버지 힘으론 그 사이를 쉽게 뛰어넘을 수가 없었다. 보조기구가 있거나 아니면 상체의 튼튼한 근력이 동반되어야만 넘을 수 있는 거리였다. 여기서 우선 놀랐다. 우리는 차선책으로 도보로 10분 내외 거리였기에 휠체어를 밀고 직접 가보기로 하였다. 거주하는 집 지형이 살짝 언덕이 있어 매형이 휠체어를 보조하는 동안에 브레이크를 잡으며 천천히 가야만 했다. 오히려 최대 고비로 여겼던 내리막길이 순조롭게 가는 걸 보자 또 마음이 놓였다. 아버지가 마련한 빌라형 오피스텔은 구식이어서 베리어프리가 전혀 되어있지 않아, 문을 열고 늘어가자마자 설치한 문턱 경사로가 너무나 가팔라 도저히 혼자서 진입이 불가능했다. 잘못하다가는 뒤로 넘어갈 수 있겠다고 서로가 의견을 모았다. 다시 돌아오는 길은 평온했다. 다만, 돌아오는 길은 내가 휠체어를 보조했는데 내려왔었던 내리막길이 오르막길이 된 순간 그걸 밀고 올라가야 하는 순간에 정말 있는 힘을 다해 끌어올렸다. 성인남성이 앉아있는 휠체어를 그대로 밀어올린다는 건 상당한 힘이 필요했다. 평소 운동을 꾸준히 하고 타고난 근력을 갖춘 나에게도 굉장히 버거웠다. 요령이 생기는 것보다 두려웠던 건 내가 아니면 이걸 누가 해야 하지 란 질문이었다. 엄마에게 맡길 순 없고, 현재 복지 시스템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 요양보호사나 간병인들은 이와 관련된 업무는 포함되지 않는다. 결국 본인 스스로가 극복하거나 가족들이 부담해야 하는데 생각보다 난이도가 높은 고민이란 걸 체감했다. 아버지도 한번 동선을 체크해보더니 생각이 많아진 듯 했다. 매사 낙천적인 걸 유지하는 사람이지만 내가 느낀 그 순간 아버지는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쉽지 않는데'하는 고민에 빠진 듯 했다. 그렇게 아버지의 사회 생활 복귀 및 적응 준비기는 시작되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생겼다.
더 나아질 것이란 기대감이다. 나같은 개인주의자가 가족 공동체를 생각하고 기꺼이 헌신하고 고민하며 어떤 대안을 찾을 수 있을지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 훌륭한 매형을 보면서 어른다움을 느끼고 누나, 조카들이 응원과 격려로 무형의 전진을 기록한다. 천성이 착하디 착한 엄마의 부지런한과 선함으로 아버지를 끝까지 간병해 반드시 재활의 종지부를 찍고 그게 아니더라도 사회 생활을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당사자인 아버지는 고민 속에서 반드시 더 나은 대안과 해결책을 찾을 것이다. 항상 그래왔고 1년 6개월 전에 비해서는 훨씬 더 나은 상황에서 사회를 마주하고 다시금 복귀해 적응과 함께 사회인으로서 그 역할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높은 문턱과 언덕은 능숙함과 꾸준함에 낮아지고 익숙해져 전혀 방해가 되지 않을 것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