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학습자 3년은 생각보다 더 길다

3년 간 그들과 동고동락하면서 의도치않게 알게 된 그들의 삶의 궤적

by 커피 한잔의 여유

296번째 에피소드이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이렇게 까지 진심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저, 하라고 해서 한 것이었고 결국 우연치 또는 어쩌다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그것보다 성인학습자 분들과의 인연을 맺게 된 이유를 정의하기 힘들다. 성인학습자 전용 학과 설립 소식과 함께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창업에 대한 노하우를 전수해볼 수 있는 젊은 사람이 필요했고 내가 적합했다. 그렇게 된지 벌써 3년을 꽉 채웠다. 2년 과정이기에 한번의 졸업생들을 떠나 보냈고, 또 한번의 졸업생을 올해 떠나보낸다. 하지만, 더 특별한 분들은 2+2년 과정으로 확대된 심화과정을 듣고 계신 분들이다. 2년 과정을 마치고 또 2년 과정을 추가 수강하여 4년제 학위로 변환해 취득하려고 한다.


성인학습자들의 1년 간 변화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 삶의 궤적은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 청춘의 시기와는 확연히 다르다. 함께 공부하고 있는 한 성인학습자 분은 내게 핸드폰으로 병 간호를 하고 있는 아버지 사진을 보여준다. 식도로는 음식을 삼키지 못해 코로 액체 형태로만 섭식이 가능하여 간호를 한다고 했다. 내가 많이 괜찮아지신거냐고 물어보니 "정말 많이 괜찮아지신거다."라고 말한다. 그 분은 올해 어머니를 떠나 보내셨다. 그걸 알게 된 이유도 황당하다. 수업에 다소 늦게 도착해서 연유를 물으니, 장례를 치루고 왔다고 했다. 나는 정말 깜짝 놀라서 "아니, 집에 가서 쉬셔라. 걱정마시고..." 내가 어찌 할바를 몰라서 전전긍긍했다. 꽤 마음의 준비를 미리 하신 듯 괜찮다면 수업을 계속 들으시는 그들을 보고 여러 생각이 들었다. 또 어느 분께서는 수업을 조금 일찍 스스로 마치셔서 어느 날 내가 그 분을 잡고 물어본 적이 있다. "혹시 무슨 일 있으셔요? 수업을 항상 조금씩 일찍 나가시길래요." 그 질문에 그 분의 대답은 "아, 제가 진해에서 학교를 다녀서요. 오고가는데 5시간이 걸려서 조금씩 일찌 나가야 해요. 양해 부탁드려요." 나는 정말 놀라 그 이후로 더 이상 묻지 않는다.


오늘 마지막이 끝나고, 꼭 항상 마지막은 밥 먹고 헤어지자고 해서 다 같이 밥을 먹는데 그들의 삶의 궤적을 의도치않게 알게 된다. 그렇게 누적된 3년 간의 기록은 꽤 나같은 '이성'으로 똘똘 뭉친 극T에게도 여러가지 생각을 들게 한다. '나는 무엇을 어떻게 앞으로 해야, 이 분들에게 가장 도움이 될 것인가. 그리고 내가 속한 공동체를 지키고 그들이 권리와 가치가 훼손되지 않고 존재하게 할 것인가.' 그들의 고민은 이제 남은 1년을 무사히 주변 걱정없이 잘 다닐 수 있는가이다. 어떤 이들은 포부있게 4년 과정을 마치고 대학원 석사과정을 진학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감없이 밝히기도 하였고, 어떤 이들은 그저 자격증 시험에 통과해서 직장을 찾는 과정에서 유리한 도움을 받고 싶다고 하기도 하였다. 뭐 이유가 어쨌든 그들은 삶에 도움이 된다면 교육은 그 자체로 의미가 충분하다. 솔직히 말해 현재 성인학습자에 대한 관심은 굉장히 마이너한 언더독의 영역이다. 제기랄... 하필 나는 또 이 언더독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항상 이랬다. 나는 정말 주류의 영역과 삶을 선택하지 못하고 항상 언더독에 빠져서 무조건 잘될것보다는, 항상 미지의 영역과 이게 뭔지도 모르는 영역을 탐구하고 개척하고 유의미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곤 했다. 십대부터 마흔을 앞둔 지금까지.. 또 나는 주류 학문에 관심을 두지 못하고 왜 또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지냐 하는 영역에 빠져버렸다. 또 내 병이 도져버린 것이다. 그렇지만 어쩌겠냐 그게 반골 기질을 가진 내 본질인 걸. 그래도 하나 확실한 건 성인학습자 교육이 곧 마이너 연구에서 메이저 연구로 갈 것이란 전망이다. 대한민국 고령화 인구 추세 및 그에 따른 일자리 생성, 연금고갈 등으로 미루어볼 때 성인학습자가 주류를 이루는 4,50대 이상의 분들께서 평균 은퇴시기 이후 노동시장에서 강제적 퇴출을 당하는 일을 만들지 않아야 대한민국이 생존할 수 있다. 슬프지만, 그게 국가 생존확률을 높이며 미래 성장가능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래서 제2의 진로교육에 대한민국은 정말 목숨을 걸 수 밖에 없다.


그 가운데서 취미로서의 교육, 직업훈련으로서의 교육의 난립하겠지만 개인의 삶이 흔들리지 않고 행복함의 본질을 지키되 각자 선택할 자유가 있는 교육의 다양성을 바랄 뿐이다. 대한민국 헌법 31조 1항,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한마디 덧붙이면 다양성을 기반으로 선택할 자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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