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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Jan 10. 2021

상담? 내가 '물어보살' 원조 버젼

청년들의 애환을 경청하는 시간

서른여덟번째 에피소드다


최근 서장훈, 이수근 분께서 진행하는 '물어보살'이 상당한 인기다. 나도 이동하면서 유튜브로 곧잘 듣는 애청자 중 한명이다. 이 프로그램의 장점은 유명인이 아닌 일반인의 고민청취기 때문에 공감이 된다는 것이다.


내가 다시 대구로 내려와서 깍아먹었던 돈을 메우느라 일에 빠져있을 때 한통의 전화가 왔다. 대구광역시 청년센터였다. 청년상담을 해주는 상담사를 찾는데 내가 그 역할을 잘 해줄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반문했다. "저는 상담 전공이 아닌데요? 다만.. 청소년들 상담은 많이 해줬긴 합니다."


청소년들 멘토링을 해주면서 온라인 상담을 참 많이 해줬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나에게 다가와 질문을 해댄다. 처음에는 학습내용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는 연애, 진학, 가정사 등을 나에게 터놓는다. 내가 이메일을 하나 알려주었다. "여기로 정리해서 보내. 답 남겨줄테니" 그렇게 온라인 상담을 청소년들에게 꾸준히 했다. 이제는 청년들 상담을 해줘야 하는데, 온.오프라인 동시에 해야하는 역할이어서 고민되었다.


나중에 청년상담사 분들께서 모였다. 내 영역은 '진로'였다. 저를 왜 선정했냐고 물어보니 대구광역시 청년센터 분들께서 "에이.. 대표님 잘 아시면서, 대표님 같은 다양한 경험가지신 분이 어디있어요. ㅎㅎ" 그래서 내가 선택한 내 슬로건은 <나이 30에 창업,취업,시민운동,정치를 해본 꼰대 상담가>


매주마다 오프라인으로 15명 청년들을 만나고, 온라인으로 5명 청년들을 만났다. 생각보다 진이 많이 빠지는 일이었다. 1시간 남짓 시간을 써서 하다보면 나도 진이 빠졌다. 몇달이 지나고 대구광역시 청년센터 분들께서 잠시 나를 불렀다. "대표님, 아시겠지만 대표님은 그럴 줄 알고?? 저희가 섭외한 것이라 그러려니하고 있어요. ㅎㅎ"


내용인 즉슨, 상담해준 청년 중 너무 현실적인 방안을 함께 찾으려고 하니 컴플레인을 걸기도 했다. 나는 솔직히 말해서 별로 개의치 않았다. 나는 그게 더 도움이 된다 생각했다. '힐링'보단 '현실'이 나에게 더 중요했으며 그들이 지금은 힘들지라도 극복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진정으로 그들의 삶을 응원하기에.. (항상 마지막 멘트로 이 말을 진심을 담아 해주었다)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에 행사가 있어 방문했다가 중간에 일어나서 이동해야 했다. 슬쩍 일어나서 가방 들쳐메고 나오는데 누군가가 나를 따라나왔다. 문을 열었을 때 나를 불렀다. "저기.. 잠깐 김인호씨." 나는 정말 깜짝 놀라서 "네??" 이렇게 반응했다. 여성분이어서 순간... 내가 뭐 잘못한게 있나.. 뇌 회로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 분이 말을 이어갔다.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서요. 그.. 온라인 상담에서 저에게 리더가 되어보라고 해서요."


망치로 한대 맞은 듯 했다. 잠시 서서 그 분과 대화를 해보니 익명으로 올라오는 사연 중에 '휴학을 하고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다'라고 보낸 분이었고 거기에 내가 작은 소모임의 리더라도 해보는 경험을 조언했으며 정말 그렇게 하고 계셨다. 연신 고맙다고 해서, 내가 어쩔 줄 몰라 당황했다. (나중에 그 분은 대구시에서 청년정책네트워크 대표가 된다)


한번은 로스쿨 진학에 관련된 사연이 있었고 그분께 내 진심을 담아, 나 역시 그러한 고민을 했고 하지만 본질적으로 그건 도피처다. 남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두려워 동기가 확실치 않은 3년의 도피처로 빠지지 말라고 했다. 그 분이 답글로 나에게 메세지를 보내왔다. 뭔가 너무나 진정어린 답변이어서 눈물이 계속 났다. 진심으로 고맙다면서 말씀하신대로 그렇게 해보겠다고 정말 긴 글로 메세지를 다시 보내왔다. (그 분이 꼭 자신의 삶을 찾아 행복에 가까워졌으면 한다)


분기별로 토크콘서트 형태로 집단상담을 진행했는데 사실.. 내가 인기가 제일 좋았다. 상담 전문가도 아니며 기법과 이론은 문외한이 나였지만 최소한 공감을 했던 것 같다. 상담을 하면서 너무나 부당한 일을 들으면 책상을 탁! 치면서 같이 욕을 했다. 잡아서 족치자고 하면서 내가 흥분하기도 했으며, 너무나 안타까운 사연은 같이 울어줬다. 그냥 그 순간에는 그게 내 일이었고 내 삶이었으며 내가 처한 상황이었다. 이게 상담인지, 아닌지 잘 모를 정도로 집중했으며 나름 매니아 층이 계속 생겼던 것 같다.


내가 상담했던 글들을 조금씩 각색해서 익명처리하여 SNS(페이스북)에 연재했다. 결국 일반인으로 누구나 공감하고 고민하는 것들이 많았다. 연재글은 호응이 좋았다.


나중에 어떤 이들에게 이런 말을 들었을 때 가장 기분이 좋았다. "현실적이고 찔러도 피나올 것 같지 않은 조언이지만, 그 뒤에는 항상 따듯함이 느껴진다."


내가 국회 비서관 일을 하게 되면서 지금은 온라인으로나마 상담을 꾸준히 해주고 있다. 3년 남짓 꾸준히 해오면서 많은 청년들을 만나고 함께 희노애락을 고민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참고. 젊프, 온라인청년상담소] 

https://www.dgjump.com/open_content/space/space_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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