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02] 불합격? 합격!
논산 훈련소에서 어느덧 3주가 지나고 옆에 동기와도 정이 쌓이고 훈련 조교들도 익숙해지고
그리고 조교로 곧 차출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 여러 감정이 빠르게 교차하였다.
나는 10월 군번이라 날씨가 좋은 가을날에 가서 여름 군번보다는 고생을 덜 할 것으로 예상을 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1주 차가 지나자 바로 몸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군대에 다녀오신 분들이나 현재 군복무 중인 분들은 전부 느끼겠지만 여름 폭서기에는 오히려 훈련을
하지 못한다. 오침도 하고, 땡볕에 쓰러지지 않게 충분한 수분섭취와 함께 휴식을 하게 된다. 물론 훈련과정은
힘들게 하겠지만 그럼에도 날씨의 영향은 분명히 받는다.
하지만 가을은 더위도, 추위도 영향을 받지 않는 그야말로 훈련의 최적의 시기이다.
적어도 내가 느낀 거는 그렇다. 일단 무더위가 없다, 그렇다고 내복을 입을 정도의 추위도 없다. 그야말로 야외에서 훈련하기 딱 좋은 날씨의 연속인 것이다. 비가 변수이긴 하겠지만 그것은 판초의 라는 훌륭한 대안이 있다. 숙영을 하러 훈련소 외부로 행군을 하면서 나간 적이 있는데 그때는 수확하고 남은 누런 밭을 보면서 계절의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나는 체력이 약해서 빨리 쉬고 싶다는 생각밖에 하지 못했다.
대략 훈련소에서 1시간 정도 지나서 숙영 할 곳에 도착하는데 가는 것도 훈련, 도착해서도 훈련, 자는 것도
모두 다 훈련의 일종이다.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지만 그때는 3명이 1조가 되어 A텐트에서 자고
공간은 그리 넓지 않다. 열심히 땅을 파고 텐트를 치고 반합에 밥을 받아서 먹고 잠을 잤다.
아침에 일어나서 짐을 챙긴 후 다시 부대로 복귀하기 전에 조교가 나를 찾았다.
조교가 내 이름을 확인하고는 오전 몇 시까지 강당에 도착해야 한다는 말만 하고 중대에서 나를 빼서 먼저 출발을 시켰다. 왜 가는지? 무엇 때문에 가는지? 무슨 목적으로 가는지? 전혀 이유와 설명이 없다.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조교 입장에서는 정해진 시간에 내가 도착을 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게 목적이기 때문에 내가 왜 가는지 그게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위에도 설명을 했지만 1시간 넘는 거리를 단축해도 50분에서 40분이 정상적이라 하면 나는 30분 만에 도착을 한 것이다. 처음에는 빠른 도보로 그러다 시간이 촉박하다고 하니 다시 구보로..... 완전무장을 한 채로 속도를 내는 것이 힘들었다. 조교 입장에서 내가 시간을 못 맞출 것 같다는 판단을 하니, 내 짐을 다른 동기에게 맡기고 맨 몸으로 뛰게 하였다. 그러니 다시 가속력이 붙어서 정해진 시간에 강당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처음에 나는 조교 테스트 때문에 모여서 경쟁을 하는 것인가? 내가 별다른 주특기도 없고 사회에서 소위 말하는 잘 나가는 자격증도 없는데 무슨 일로 강당에 모이라고 한 것인지? 그 짧은 순간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면서 일말의 불안감이 엄습해 왔는데 혹시 최전방으로 차출되는가?????? 하여튼 숨쉴틈도 없이 바로 강당 안으로 들어갔다.
강당에는 이미 나와 같은 훈련병들로 만석이 되었다. 영문도 모르고 자리에 앉아 좀 대기하니, 옆에서 이미 온 훈련병들이 저마다 얘기를 하는데 여기서 시험을 치게 될 것이고 선발된 자들은 '카투사'로 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때까지 내가 아는 카투사는 막연히 미군과 근무하고 뭐 그 정도 그 이상의 정보는 없었다. 그리고 그다지 관심도 없었다. 이미 몇몇 훈련병들은 정보를 어디서 얻었는지 대강 아는 눈치였고 자기들끼리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사실 그 얘기가 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뭘 알아야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판단을 할 텐데 정작 아무런 정보가 없으니 그냥 덤덤하였다.
그 와중에도 누군가 그러는데 여기 국방부 대령 아들이 왔는데 그 훈련병은 영어를 잘해서 붙을 것 같다는 둥 그 동기생 곁에서 시험을 쳐야 한다는 둥 신뢰가 가지 않는 말을 하는데 이상하게 다른 훈련병은 진짜 그 말이 사실인 줄 알고 모두들 눈동자가 커져가며 이것저것 그에게 묻기 시작했다. 나는 이성적인 사람이기보다 현실적인 사람이라 그 동기가 어떤 상황인지 확인할 수 없는 가운데 무엇을 믿고 의지할 수 있겠는가?
호사꾼들의 지어낸 이야기에 현혹되지 말고 지금 이 상황에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는 생각만 하게 되었다.
잠시 후 훈련소에서 보기 힘든 높은 계급의 (중령인지 대령인지 가물하다) 장교가 오셔서 말씀을 하시는데
늘 듣던 조교의 음성과는 다른 부드럽고 평안한 음성에 나도 모르게 긴장감이 풀렸다.
신원조회서 작성을 하고 군에 입대할 때 유력한(?) 인사가 있는지 그것도 쓰라고 한다. (지금 생각해도 그게 왜 중요한지 잘 모르겠다.) 하여튼 일말의 과정이 지난 후 시험지가 내 눈앞에 도착하고 그래도 무난하게 시험을 친 것 같았다. 앞에도 얘기했지만 정보가 전혀 없었기에 몇 점이 커트라인이고 몇 명이나 뽑게 되는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그래서 그런지 오히려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부담 없이 치렀다.
시험을 치른 후 1시간 정도 강당에서 대기를 하는데 아마 바로 결과를 내는 것 같았다. 대기를 하면서 역시나 국방부 대령의 아들 주위에 많은 훈련병들이 모이면서 정보를 얻거나 자신의 궁금한 사항을 묻고 저마다 자기가 선발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일명 '희망고문'을 갖기 시작했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고 장교 한 분이 강대상에 나와 직접 호명을 하신다.
여기서 호명하는 훈련병들은 강당 밖으로 나가 별도 대기한다. 그러면서 한 명씩 한 명씩 호명을 하였다.
처음에는 불리지 않아도 아, 조금 있으면 부르겠지 했는데 5분이 지나도 호명되지 않아 포기한 채 마음을 비웠다. 근데 그 국방부 대령 아들이라는 훈련병도 어느새 이름이 불려져 밖으로 나갔는데 그 표정을 보니 되게 흐뭇하고 하면서도 당연한 듯 보이면서 여유롭게 퇴장을 하였다. 그리고 그 국방부 대령 아들이 나간 뒤 얼마 후 호명이 된 훈련병이 있었는데 마치 나라를 구한 것처럼 두 손으로 만세하고 기뻐하며 나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곧 호명이 마치게 되었다. 결과에 매이지 않았다고 하나 끝까지 이름이 불려지길 기대했는데 역시나 내 이름은 조용히 건너뛰었다.
누가 생각해도 강당 밖으로 별도 호명된 훈련병들이 합격한 것 같고, 심증+물증으로 국방부 대령 아들도 나갔으니 결과는 이미 나온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렇게 남은 훈련병들은 별도의 지시가 내려오기 전까지 잠시라도 자유를 느끼기 위해 계속 강당에 머물러 있었고 나도 기왕 있는 거 더 천천히 나가는 게 좋겠다 하고 대기하고 있었는데 아까 그 국방부 대령아들이 다시 강당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주변 동기들이 모두 어안이 벙벙한 채로 왜 다시 들어왔냐고 물었다. 호명돼서 나갔지 않았냐고? 그런데 대답이 반전이었다. 자기 이름을 불러서 나갔는데 알고 봤더니 비슷한 이름으로 잘 못 들었다고 그래서 본인이 아닌 것으로 확인하여 다시 들어오게 되었다고......
잠시 후 결과를 알려주시는데 장교님께서 지금 남아있는 훈련병들이 합격하여 선발된 자원들이고 신원조회 끝나고 최종 합격이 될 것 이라고....... 전혀 기대하지 않고 예상치 못했는데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지?.......
강당을 보니 약 130~140명 정도 남은 것 같았다. (나중에 카투사 훈련받을 때 둘러보니 유학생도 많고, 외고 졸업생도 많고, 영문과 친구들도 많이 포진되어 있었다.)
그 순간 바로 뇌리에 스치는 한 명이 있었다.
마치 나라를 구한 듯이 띌 듯이 기뻐하고 자기보다 앞선 호명을 받은 국방부 대령의 아들이 나간 것을 확인 후 100% 확신에 차서 나갔던 그 훈련병... 기대가 큰 만큼 얼마나 실망도 컸을까...... 요새 흔히 말하는 부끄러움은 나의 몫... ... 결국 나를 포함한 호명되지 않은 강당의 훈련병들이 최종 합격이 되었고 마지막까지 내 이름이 불려지지 않은 것에 대한 감사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 논산에서의 훈련은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