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8 물벼락과 푸시업의 추억
포대장 John 대위의 우렁찬 목소리가 배럭스 앞에 울려 퍼졌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아직 매서운 3월의 바람이 볼을 스쳤지만, 지금 내 얼굴은 긴장과 흥분으로 화끈거렸다.
오후 5시, ROKA STAFF OFFICE(한국군 인사계).
"김 이병, 진급 축하한다. 여기 계급장이다."
파견대 선임 본부포대 박병장님이 무뚝뚝하게 말하며 계급장을 건넸다. 한국군에서는 자동진급이라 특별한 세리머니가 없지만, 여기 캠프 케이시에서는 달랐다.
"내일 아침에 진급식이니까, 미리 포대장님께 전달하고 준비해."
"감사합니다, 단결!"
배럭스 앞에 지원포대 전체 병력이 집결했다. 미군들은 이런 행사를 무척 좋아했다. 작은 일이라도 축하하고 세리머니 하고 그 핑계로 크게 소리 지르고 환호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니까.
"Battery Attention!" (포대 차렷)
모두가 차렷 자세를 취했다. 오늘 진급자는 총 9명. 미군 5명, 카투사 4명. 내 동기들 4명 하고 같이 받는다.
1단계: 호명
상위 계급부터 호명이 시작됐다. 먼저 병장(E-5)으로 진급하는 미군 존슨이 불려 나왔다.
"Sergeant Johnson, step forward!"
2단계: 계급장 수여
John 대위가 새 계급장을 존슨의 가슴에 붙이는 순간—
탁!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계급장을 확실히 고정시켰다. 미군식 '애정의 한 방'이었다.
3단계: 환호와... 푸시업
"Congratulations, Specialist Johnson! DROP AND GIVE ME FIFTY!"
전체 병력이 환호성을 질렀고, 존슨은 자동으로 푸시업 자세를 취했다. E-5는 50개. 규칙은 간단했다. 보통은 계급 숫자 × 10개. 당연히 상위 진급자일수록 많이 한다.
"One... Two... Three..."
전원이 한 마음으로 큰 소리로 카운트를 세기 시작했다. 존슨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기쁘게 감당하며 쉬지 않고 푸시업을 해냈다.
"Forty-eight... Forty-nine... FIFTY!" Whooah~~~
4단계: 물벼락 세리머니
그 순간, 소대장 Miller 하사가 양동이를 들고 나타났다. 바케스(야전용 대형 쓰레기통)에 가득 담긴 얼음물—그리고 과일껍질과 빵 부스러기가 둥둥 떠 있었다.
"CONGRATULATIONS, SERGEANT!"
철퍼덕!
얼음물이 존슨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3월초의 아직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WHOOAH!!!"
전체 병력이 미군식 함성을 질렀다. 존슨은 물에 젖은 생쥐처럼 온몸이 흠뻑 젖었지만, 얼굴만큼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Private First Class Kim, **!"
내 이름이 불렸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앞으로 나가자 John 대위가 웃으며 계급장을 내 가슴에 붙였다.
탁!
생각보다 세게 쳤다. 가슴이 약간 아팠지만 기분 좋은 아픔이고 당연히 기분은 좋았다.
"Congratulations, PFC Kim! DROP AND GIVE ME THIRTY!"
E-3는 30개. 나는 바로 푸시업 자세를 취했다.
"ONE!"
전체 병력의 우렁찬 카운트가 시작됐다. 같은 부대 미군들뿐 아니라 모든 카투사들도 옆에서 소리쳤다.
"김 일병! 파이팅!"
"Let's go, Kim!"
30개를 마치자 팔이 욱신거렸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철퍼덕!
차가운 물벼락이 쏟아졌다. 숨이 막혔다. 얼음물이 군복 안으로 스며들며 온몸이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WHOOAH!!!"
하지만 이상하게도 기분은 최고였다. 내가 인정받았다는 느낌. 이 부대의 일원이라는 소속감. 그리고 무엇보다—드디어 일병이 되었다는 성취감.
진급식이 끝나고 나는 얼른 군복을 갈아입었다. (물에 젖은 군복은 정말 불쾌하다.) 같은 날 진급한 동기들과 함께 근무 후 캠프를 나섰다.
"야, 김 일병. 축하한다, 김일병!"
"너도 축하해, 유일병!"
우리는 서로서로를 새 계급으로 부르며 웃었다.
캠프 근처 '** 세탁소'는 카투사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사장님이 오버로크(계급장 달기) 전문가였기 때문이다.
"어서 오세요~ 와 모두 진급했나봐?"
사장님은 우리를 보자마자 친절하게 웃으면서 맞아주셨다.
"네! 계급장 오버로크 부탁합니다"
"다하면 1시간 이상 걸려요. 근처 식당 가서 밥이나 먹고 오세요."
캠프 안에도 캔틴(Canteen, 간이식당)이 있었지만, 오늘만큼은 사제 음식이 먹고 싶었다. 일병으로 진급도 했으니 그냥 기분 내는 거였다.
"사장님, 부대찌개 4인분이요!"
동두천 식당 사장님들은 사복을 입은 카투사들을 보면 다 알아봤다. 우리는 모처럼 부대에서 맛보지 못한 사제 뜨끈한 부대찌개에 밥을 말아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야, 근데 물 진짜 차가웠다."
"그니까. 아직 3월초인데 얼음물이라니. 미군들은 진짜 독하다니까."
"그래도... 기분 좋지 않았어?"
"응. 기분은 최고지."
1시간여 후, 다시 세탁소로 돌아갔다. 사장님이 정성스럽게 오버로크한 군복을 건넸다.
"자, 확인해 봐요. 계급장 위치 딱 맞지?"
"완벽합니다! "
나와 동기들은 모두 군복위에 멋지게 오버로크한 계급장에 만족해 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캠프 복귀하였다.
(캠프 내 세탁소도 있었지만, 그곳은 그냥 바느질뜀으로 대충 고정하는 수준이었다. 여기는 달랐다. 계급장이 군복과 일체가 된 것처럼 깔끔하게 박혀 있었다.)
"일병 진급 축하해. - 선임 **"
방앞에 포스트잇이 붙여져 있었고 문 앞에는 초코파이도 한 개 놓여 있다.
누가 우리 맞선임 아니랄까 친절히 챙겨 주셨다. ㅋㅋ
나는 그날 밤, 물에 젖은 기억과 푸시업의 고통, 그리고 미군 및 카투사들의 환호성을 떠올리며 잠들었다.
한국군사병은 자동으로 진급하지만, 여기 미군 캠프 케이시에서는 달랐다.
미군에게 진급은 '승진'이었다. 급여도 오르고, 책임도 늘어나는 진짜 '직장 생활'의 한 단계였다. 그래서 그들은 진급식을 이렇게까지 성대하게 치르는 거였다.
그리고 나도 이제 그 일원이 되었다.
"PFC Kim, ** "
가슴의 계급장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지금도 가끔 그때 그 기억을 해본다. 물에 흠뻑 젖어 활짝 웃고 있는 22살의 나.
주변에는 미군 전우들과 카투사 동기들이 함께 웃고 있다.
그날의 추위, 푸시업의 고통, 물벼락의 충격—
하지만 그 모든 것보다 더 또렷하게 기억나는 건,
"CONGRATULATIONS!"
외치던 동료들의 목소리와, 가슴에 달린 새 계급장의 무게였다.
그 한 뼘만큼 더 성장하고 자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