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1 슬기로운 군생활
나는 이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1995년 10월에 하게 되었다.
대학교를 가기 위해 3수를 하는 바람에 남들보다 군 입대도 늦었고 그래서 한 학기 마치고
군 입대를 결정하여 10월 12일에 논산 제2훈련소로 가게 되었다.
군대 가는 전날까지 친구들과 어울려 놀며(술, 담배 하지 않는 남자 4명이 무슨 재미로 놀았는지
지금도 이해가 잘 안 되긴 하다.) 나를 위로해 주고 나 다음에 바로 1주일 뒤에 오는 친구도
있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논산에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상남자도 아니면서 부모님과 동행하지 않고 친구도 없이 혼자 씩씩하게 논산까지 기차를 타고
갔다. 문제는 역에 내리는 순간부터 아, 이게 아닌데 ... ... 갑작스레 후회와 돌이킬수 없는 쓸쓸함이
그리고 뭐라 말할 수 없는 외로움과 두려움 등 다채로운 감정이 밀려들었다.
내가 효자는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좀 더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이 죄송스럽고도 후회스럽다. 왜 마지막까지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는지 남자끼리 술도 안마시고 뭐가 그리 재미었을까?????
부대 바로 앞에서 이제 군인과 사회인의 갈림길에서 공중전화로 집에 전화를 걸었다
당시만 해도 전화카드, 동전을 사용한 공중전화가 중요한 통신 매개체였다. (지금은 공중전화 찾는게 자체가 불가해진 시대가 되었다. 아마 우리 자녀들도 공중전화 시절을 말하면 이해를 하지 못할 것이다.)
먼저 어머니와 통화하면서 건강하게 잘 갔다 오겠다 말씀드리고 아버지와 통화를 하면서는
울컥 눈물이 나왔다. 그렇다고 내가 부모님한테 다정다감하고 그런 아들이 아니었는데 괜히 짠한 마음이 들었다. 평소 아버지와 대화도 많이 못 나누고 서먹서먹한 관계였는데 군대로 대동통합이 된 것이다.
아버지와 통화를 하면서 아버지도 국방의 의무를 다하셨고, 예전 군대는 나보다 더 많은 고생을
하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 그냥 같은 남자로서 동경과 존경의 눈물이 나왔나 보다.
그렇게 겨우 감정을 제어하고 부대 정문을 지나 입소를 하게 되었다.
입소대대에서 3일 후 본격적인 훈련을 위해 다시 이동해야 하는데 여기서 주로
기본 제식훈련, 군복, 군화 지급 등 군인으로서 기본적인 훈련을 받게 된다.
소위 말해 사회인에서 군인으로 재탄생하는 곳이라 말할 수 있다.
첫날 내무반에서 모두 취침을 해야 하는데 여기저기서 훌쩍훌쩍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 시작도 안한 군생활이지만 고단한 삶보다 더한 고통은 부모님 혹은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있는 것이 안타까워 우는 게 아니었을까?
대부분 20대 초반의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여 훈련하고 군인으로 재탄생하는 것은 무슨 의미를 부여하는 것보다 더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저마다 고향이 다르고, 학교도 다르고, 사는곳 도 다르고 생판 모르는 젊은이들이
모여 하나의 규율, 상명하달의 조직으로 바뀌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때로는 동기끼리 마찰도 생기고 때로는 경계하기도 하지만 결국 서로 훈련을 통한
고생으로 끈끈한 전우애로 하나가 된다. (고생한만큼 더욱 더 전우애가 쌓인다.)
나는 2*연대에 배치되어서 거기서 훈련을 받게 되었다. 근데 조교들이 그곳은 매우
힘든 부대로 군기도 엄격하고 훈련병들이 매우 고생하는 부대로 소개를 해주는데
(처음에는 원래 다 군대 힘든 거 아닌가? 이렇게 해야 훈련병들이 겁을 먹고 딴짓을
생각하지 못하는 거 아닌가? 그 경고를 깊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앞으로 벌어질 4주간의 훈련만 집중하자 했는데 진짜 내가 속한 2*연대가 힘들기로
소문난 것을 체감하여 알기까지 그리 오래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모든 군인들이 전부가 자기가 나온 부대가 제일 힘들다는 것은 대한민국 군인들의
공통점이다........)
논산의 10월은 좀 쌀쌀하다. 어느덧 겨울 야상을 입고 훈련할 때도 생겼다.
그렇게 어느 추운 날 사격훈련을 하게 되었는데 군필자들은 알겠지만 군대에서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구타가 가능한 곳이 바로 사격장이다.
PRI(피가 나고 알이 배기고 이가 갈리는) 훈련을 계속 반복하고 지친 상태에서 사역에 임하는데
몸이 제대로 반응할 때까지 계속한다. 바둑알을 올리고 끊임없이 엎드려 쏴 하며
자세를 반복한다. 그런 연후에 사격장으로 가서 영점사격을 실시한다.
(영점사격-소위 총을 제대로 쏘기 위한 탄착군 형성을 만드는 사격이라 하면 이해가 쉽다)
먼저 조교가 시범을 보이고 그것을 따라 배우며 사격을 한다.
총을 쏘는 훈련병 뒤로 의자에 앉아서 대기하는데 마침 조교가 자신의 야상을
의자로 놓아서 내 앞의 훈련병들은 야상 때문에 앉지 못하고 옆에서 서서 대기했다.
내 순서가 되어 대기할 때 나는 의자에 앉으면서 야상을 내 무릎 위에 올렸다.
그 모습을 본 야상 주인 조교가 날 큰소리로 불렀다.
'이야~ 아무도 내 야상 때문에 앉지 못하고 서서 대기했는데 넌, 야상을
무릎에 덮고....... 처음 봤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냐?
감탄 반 + 살짝 비꼬는 반 = 특이한 놈(?) 취급을 받았다.
난 속으로 이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그냥 옷 깔고 앉으면 안 되고
날도 추우니 앉으면서 무릎에 올린 게 이게 뭐라고.......
그 사건 후 조교가 나와 몇몇 훈련병들을 불러놓고 호구조사를 했다.
키가 몇이냐? 전공이 뭐냐? 잘하는 스포츠가 뭐냐?
그러면서 중대장님에게 추천을 해서 훈련소 조교로 차출하겠다 한다.
그때는 훈련소 조교가 하늘과 같은 존재라 왠지 그 말이 내 군생활이
풀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