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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Jun 14. 2024

달궈진 판이 식기 전에 써야 한다

실은 나의 서랍 속에는 미처 데뷔하지 못한 초고들이 한가득이다. 그것들은 마치 수험가를 떠도는 장수생처럼 비운의 짬바를 풍기면서 나를 노려본다.


그 눈길을 받을 때마다 찔려서 맘이 따끔거리다. 죄송합니다, 젠장. 다음 기회에 꼭 세상빛을 보시게 될 거예요. 그런데 이런 일이 나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글 쓰는 사람은 누구나 있지 않나? 데뷔하지 못한 글이 그득그득 담겨있는 나만의 보석함.


모든 글은 자기만의 때가 있다. 영화에 관한 글은 특히 더 그렇다. 사람들이 그 영화를 보고, 관심을 갖고, 얘기하는 시기는 한정적이다. 게다가 요즘은 그 주기가 더 짧아졌다. 영화 개봉으로부터 일주일, 길어봤자 이 주 정도. 영화가 극장에서 내려가는 시기도 짧아졌고, 다양한 콘텐츠와 자극에 둘러싸인 관객은 미적이는 글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누군가는 그럴 것이다. 늦게라도 올리면 되지 않나요? 올릴 수야 있죠. 하지만 읽히지 않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써서 올려도 읽히지 않으면 무슨 소용입니까.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언젠가 우연히 발견될지 모르는 유물이 아니라, 지금 당장 먹을 수 있는 따끈따끈한 요리를 만드는 중이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고, 아무도 재촉하지 않을 것이다. 빨리 쓰라고. 하지만 사실 모든 글에는 숨겨진 마감이 있다. 본인이 스스로 그걸 알아내서 맞추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명료하다. 화제성이 식기 전에 글을 완성해 올릴 것. 그런데 그걸 누가 몰라. 시간이 없잖아, 시간이. 영화 보고 언제 쓰고 언제 올리죠?


그래서 내가 추천하는 것은 짧게라도 써서 올리는 것이다. 혹은 기대했던 것보다 퀄리티가 떨어져도 괜찮다. 한 단락, 한 줄이라도 좋다. 적시에 간단히 쓴 글이, 늦게 충만하게  것보다 낫다.


물론 글의 퀄리티를 끌어올리려는 노력은 계속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한 시간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제출 시한을 넘긴 답안지가 훌륭한들 의미가 있나? 잔인한 것은 이 시한이라는 것이 글에도 달려있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 무서울지 모르겠다. 하지만 걱정할 건 없다. 적시에 쓰는 능력은 연습으로 충분히 연마할 수 있으니. 다만 잊 않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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