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평론가 홍수정 Jun 24. 2024

<인사이드 아웃> 2편이 아쉬운 가장 큰 이유

※ 스브스 프리미엄 '취향저격' 코너에 기고한 글입니다


<인사이드 아웃 2> 스틸컷

2015년 개봉한 <인사이드 아웃>은 픽사의 작품 중에서도 단연 뛰어난 축에 속한다. 특유의 발랄함과 뭉근한 감동으로 단단한 팬층을 확보한 '픽사 스튜디오'. 이곳의 걸작으로 흔히 <토이 스토리> 시리즈나 <업>(2009), <월-E>(2008) 등을 꼽지만, <인사이드 아웃>의 위상도 만만치 않다. 사람의 다양한 감정을 캐릭터로 표현하고, 그들의 활동으로 아이의 성장을 그리는 <인사이드 아웃>은 픽사만의 상상력과 탄탄한 서사가 빚어낸 발군의 작품이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나 <인사이드 아웃>이 돌아왔다, 2편으로. 영화 속 주인공 '라일리'는 이제 13살이 됐고, 귀엽고 엉뚱한 아이에서 사춘기 소녀로 변모했다. 1편에서 유년기의 감정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던 영화는 이제, 새 감정의 등장으로 일어난 격랑에 몸을 싣는다.


하지만 어째서인가, 마냥 반가울 것 같았던 2편에서 아쉬움이 느껴지는 건. 무어라 꼬집어 말하기 어렵지만 분명히 존재했던 바로 그것. 그래, '픽사 감성'이 옅어졌다. 세계관도, 서사도 화려해졌지만 원조의 맛은 흐리다. 이 글은 우리가 사랑한 그 시절 픽사 감성에 대해 정확히 표현하고, 2편의 아쉬움에 대해 말해보기 위해 썼다. 아래부터 픽사 작품들과 <인사이드 아웃> 1편과 2편에 대한 스포일링이 있으니, 유념해 읽어주시길.


<토이 스토리> 스틸컷

픽사 작품을 이루는 두 축으로 상상력과 감동을 꼽고 싶다. 픽사 작품에는 마치 어린아이가 잠에 들기 전 머릿속으로 펼칠 법한 사랑스러운 상상이 가득하다. 장난감이 살아 움직이고(<토이 스토리>) 아이들의 비명을 에너지로 쓰는 몬스터들이 산다(<몬스터 주식회사>).


하지만 마냥 명랑할 것 같은 이 세계의 중심을 잡는 것은 픽사가 선사하는 묵직한 감동이다. 픽사 작품을 보고 난 뒤에는 매번 눈물을 참기 힘들다. 그렇다면 픽사 감성의 핵심을 이루는 이 감동의 실체는 무엇일까?


픽사 중에서도 특히 사랑받은 명작을 떠올려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토이 스토리> 시리즈의 장난감은 자주 버려질 위기에 처한다. 밝은 분위기 덕에 부각되지 않지만, 이 시리즈 전반에는 잊혀지는 것에 대한 불안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훌쩍 커버린 아이를 보며 마침내 이별을 받아들인다. 이 과정이 <토이 스토리>를 명작으로 만든다.


<업> 스틸컷

<업>의 할아버지 '칼'은 사별한 아내와의 추억을 끌어안고 산다. 우연히 시작된 모험을 계기로 그는 아내와의 시간을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업>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초반 10분, 칼과 아내의 역사를 정리해 보여주는 그 시퀀스는 애틋하며 아름답다. 하지만 여기에는 미래가 없고, 슬픈 현실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업>의 후반, 칼이 아내와의 추억을 마음에 간직한 채 쓸모없는 물건들을 정리해 버리는 장면에는 미래를 향한 희망이 깃든다. 이 순간 칼은 오늘을 정리하고 내일로 나아간다. 그래서 나는 이 장면이 <업>의 오프닝만큼이나 명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작별하며 성장한다. 그리고 성장에는 통증이 따른다. 하지만 그것은 삶에 꼭 필요한 아픔이다. 제시간이 다한 것을 손에 쥐고 주저앉아 있는 이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별의 순간에 정성을 다하는 일, 그리고 오래 기억하는 일. 그것뿐이다.


픽사는 이런 순간을 스크린에 담아낸다. 아프고도 중요한 작별들. 삶은 그런 것이라고, 끝이 있기에 시작도 있는 것이라고 우리를 다독인다. 픽사의 작품 안에서 우리는 삶의 진리를 다시 경험하고 또 한 번 성장한다.


<인사이드 아웃 2> 스틸컷

그랬던 픽사가 최근에 좀 달라지고 있다. 오랜 팬으로서 이런 변화가 아쉽다. <인사이드 아웃 2>가 그 예다. 전작에서 작별의 감성을 담당했던 것은 '빙봉'이다. 어린 라일리가 상상으로 만들어낸 친구. 이 사랑스러운 친구는 커가는 라일리에게 자기보다 필요한 존재가 있음을 받아들이고 담담히 떠나간다. 이것은 누구나 공감하는 아릿한 성장통이다. 빙봉의 서사야말로 <인사이드 아웃>의 격을 높인다.


그러나 아쉽게도 <인사이드 아웃 2>에는 이런 순간이 없다. 새로운 감정이 등장해 문제를 일으킨다. 그로 인해 깨진 밸런스를 다시 찾는 것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 흡사 회사에 새로 입사한, 열정이 과도한 신입 사원과 관계를 조율하는 과정을 보는 듯하다. 이런 이야기도 흥미롭다. 그러나 이 작품의 주된 테마는 '조율'에 집중됐다. 여기에는 픽사가 여태 선사해 온 성장통에 대한 고찰이 없다. 그 점이 아쉽다.


오해를 덜기 위해 말하자면, 이별이 등장하지 않아서 문제라는 게 아니다. 다만 픽사는 우리가 삶에서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내는 것을 포착하고 애도하는 감각이 뛰어났는데, 그것이 발휘되지 않아 아쉬울 따름이다. 그 대안으로 나온 결과물은 재미있지만 깊이가 부족하다. 여태 픽사는 이보다 흥미롭고 뭉클한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으니까.


이별을 그린 영화는 수없이 많다. 그러나 이다지도 보편적인 작별을 꾸준히 스크린에 불러와서 따듯하게 위로해 온 스튜디오는 픽사밖에 없다. 살아가는 것은 끊임없이 헤어지는 일이라는 것, 그래도 괜찮다는 것을 나는 픽사로부터 배웠다. 그러니 다시 기다리는 수밖에 별수가 있나. 다시 한번 옛 감성을 펼쳐 보이는 작품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겠다. 그때쯤이면 우리의 라일리는 대학에도 가고, 첫 연애도 하고, 뭐 그러지 않을까.


원문 : https://premium.sbs.co.kr/article/bdC1hwhNG8b


매거진의 이전글 <원더랜드>가 아쉬운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