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영화평론가 홍수정
Jul 08. 2024
작가다운 외모를 갖고 싶다.
밤새 창작에 시달려 안면에 묵중한 피로가 묻어있지만 숨길 수 없는 날카로움이 선명한. 고뇌하는 표정, 여유로운 자세, 친절하지만 여지없이 핵심에 내다 꽂히는 말들. 가까운 듯 멀게 느껴지는 오묘한 분위기.
하지만 거울 속의 그녀는 즐겁고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리고 어두운 지성인이라 우기기에 너무 포동포동하다. 고뇌한다면서 뭘 저렇게 잘 처먹은 건가 하는 의문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시원한 신장 대신 쬐그만 키. 마른 체구와 파인 볼 대신 하찮게 붙은 근육을 덮은 든든한 지방.
내가 선망하는 작가 포즈가 있는데 그게 뭐냐 하면, 팔짱을 끼고 고개를 숙인 상태에서 한쪽 손을 들어 턱을 쓰다듬는 자세다. 나는 이게 그리도 멋져 보이더라.
그래서 연습을 해봤다. 히히. 그랬더니 턱선을 쓰는 손을 따라 볼살이 이리저리 미어지듯 이동했다.
패션도 마찬가지. 심플한 듯 단정한데 막 작업하다 튀어나온 듯한 느낌을 풍기는 옷을 걸치고 싶지만, 현실은 아웃렛에서 득템한 가성비 좋은 옷(너무 좋아!).
청렴하지도 탐욕스럽지도, 그렇다고 강인한 생활인의 포쓰를 뿜지도 못하는 이래저래 어중간한 외양이 내 모습이다. 여기다 작가다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구차함 한 방울까지.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적당한 스타일과 포즈를 정한 다음, 집에서 연습하고 밖에서는 자연스러운 척 연기해야겠다. 그리고 '나는 원래 이렇게 태어났다'라고 스스로를 세뇌하면 그런 사람이 되지 않을까? 그때까지 인터뷰도 안 할 거야. 혹시 하더라도 사진도 영상도 찍지 않아야겠지. 세기말 조성모가 밀던 '얼굴 없는' 컨셉은 이제 나의 것. 아 맞다, 나 어차피 인터뷰 별로 없지. 하하 정말 다행이야 젠장맞을. 작가 같은 외모는 언제 가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