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 멀티버스 세계관에 지친 관객에게 건네는 새로운 제안
※'PD저널'에 기고한 글입니다
[PD저널 =홍수정 영화평론가] 마블의 새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이 개봉했다. 이 작품은 흥행 1위를 달리고 있지만, 울버린을 소환하고 데드풀 시리즈를 잇는 귀여운 소품 정도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데드풀(라이언 레이놀즈)이 제공하는 수다의 카타르시스는 매력적이지만 익숙하고, 다시 등장한 울버린(휴 잭맨)도 솔직히 <로건>(2017)때의 카리스마를 뿜어내진 못한다. 그러나 데드풀 시리즈가 2018년 이후 오랜만에 돌아왔고, 19금 배지까지 달며 톡 쏘는 매력을 선보이니 이만하면 만족할 만한 팬서비스라는 평가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데드풀과 울버린>의 가치는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다. 나는 이 작품에서 우리 시대의 감성을 예리하게 포착해 영화의 공기로 녹여내는 재능, 낡은 이야기를 버리고 시의적절하게 새로운 것을 제시하는 센스를 본다. 그것은 '세련되다'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감각이다.
그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이 영화의 줄거리 아래 나른하게 누워있는 또 하나의 숨겨진 이야기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아래부터는 <데드풀과 울버린>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으니 유의해 읽어주길 바란다.
영화가 시작되면 데드풀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는 여태 보아오던 모습과 어딘가 다르다. 어벤져스에서 탈락하고, 왕관을 내려놓은 채, 중고차 딜러로 일하는 전직 히어로. 심지어 딜러의 일조차 잘하지 못하는 초라한 신세다.
그의 전 여자친구 바네사(모레나 바카린)는 직장에서 승진했고, 데드풀은 그녀를 여전히 사랑한다. 그런데 그녀에게 새 남자친구가 생겼단다. 데드풀은 중얼거린다.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
이 절망스러운 상황을 두고 그는 '중년의 위기'라며 자조한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영화를 보는 우리 모두 언젠가 한 번쯤 맞닥뜨릴법한 상황이다. 나는 이전만큼 빛나지 못하고, 현실은 기대를 쫓아가지 못한다. 영화는 '중요해지고 싶다'는 우리의 보편적 욕망을 건드리며, 관객과 함께 이야기 속으로 전진한다.
<데드풀과 울버린>은 19금 딱지까지 내걸고, 본격적으로 선 넘는 유머를 시도한다. 그런데 그런 영화가 끊임없이 경계하는 것이 딱 하나 있다. 천방지축 데드풀도 정색하게 만드는 그것. 바로 영화에 언급되는 '코카인'이다.
영화에는 초반부터 코카인이 자주 언급된다. 특히 데드풀의 룸메이트는 코카인은 금지라는 얘기를 듣고 다양한 은어를 죄다 꺼내가며 그것에 대해 말하고 싶어 안달이다. 데드풀은 기겁하며 자리를 뜬다. 그런데 이토록 강한 경계는 오히려 그것을 의식하게 만든다. '코끼리에 대해 생각하지 마'라는 말을 들으면 코끼리가 떠오르는 것처럼.
코카인에 대한 대화가 끝나고 데드풀은 미지의 사람과 만나, 기절한 이후 새로운 세계에 도착한다. 그는 곧바로 새 수트를 얻고, 그토록 원하던 '중요한 인물'이 될 기회까지 얻는다. 데드풀은 이 제안을 거절하지만, 끝내 자신만의 방식으로 중요한 인물이 된다. 그러니까 데드풀은 파티장에서 기절한 후, 곧바로 히어로로 복귀한 셈이다.
자, 여기까지. 표면에 드러난 서사만 놓고 보면, 이것은 한 히어로가 자신의 입지를 되찾는 이야기일 따름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중고차 딜러였던 남자를 중심으로 다르게 해석해 보면 어떨까? 일상에 치여 살아가던 한 남자가 왕년의 영광을 잊지 못하고 괴로워하다 파티장에서 친구의 꼬임에 넘어가 약물에 손을 댔다고. 그리고 그 이후의 이야기는 약에 취한 남자의 망상일 뿐이라고. 어떤가. 훨씬 어둡지만 가능한 이야기 아닌가?
물론 이것은 도발적인 가설이며 재미있는 해석일 뿐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에 힘을 싣는 것은 데드풀이 왕관을 되찾는 과정이다. 그는 너무도 쉽게 히어로 수트와 기회를 얻는다. 마치 부활에 굶주린 사람이 꾸는 행복한 꿈처럼.
데드풀이 울버린(휴 잭맨), 그것도 다중우주에서 가장 한심하다고 취급받는 울버린을 데려와 함께 모험을 떠나는 것도 인상적이다. 이때 데드풀은 (비록 겉으로 티격태격 하지만 실은) 울버린을 절망에서 구출하는데, 이것은 현실에 좌절한 남자(데드풀)가 자신의 능력을 펼치지 못한 남자(울버린)를 구원하고 동행하는 모양새다. 이것은 한 인간의 내면에 있는 여러 자아의 고난 극복기로도 읽힌다.
둘은 함께 '보이드'에 도착한다. TVA의 쓰레기가 모이는 이곳은, 한 마디로 세계의 어두운 이면이다. 히어로들조차 소멸을 면치 못하는 이곳은 마치 누군가가 꾸는 악몽 같다. 보이드를 군림하는 여왕은 카산드라(엠마 코린)다. 그녀는 빌런으로서, 두 남자가 영웅으로 복귀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상대다.
카산드라의 능력은 빌런치고 독특하다. 그녀는 남매인 찰스 자비에와 마친가지로 사람의 생각을 읽는다. 카산드라는 데드풀과 울버린의 속을 헤집으며, 그들의 안에 숨겨진 내심을 관객에게 알려준다. 즉, 카산드라를 대적하는 과정은, 이들이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게 되는 과정과 일치한다. 거기에는 '중요해지고 싶다'거나 '과거로 돌아가 히어로의 책임을 다하고 싶다'는 마음이 숨어 있다.
이들은 우여곡절 끝에 지구에 돌아와 마지막 싸움을 준비한다. 이 대결의 하이라이트는 이들이 '데드풀 군단'과 대결하는 장면이다. 무수한 우주에서 온 또 다른 데드풀들 말이다. 이 장면은 기본적으로 '멀티버스'라는 설정에 기반한다. 맞다, 마블을 위기에 빠트린 바로 그 멀티버스. 과학 이론에서 시작한 그것은 오늘날 영화계에 흘러들어와, 갈등을 손쉽게 해결하는 도깨비방망이로 활용되며 이야기의 긴장을 떨어트린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데드풀은 멀티버스에서 온 다른 데드풀을 신나게 베고 찌르며 도륙한다. 이것은 단순한 싸움을 넘어, 멀티버스의 설정을 아작내겠다는 영화의 포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데드풀은 마블이 여태 펼쳐놓은 작업물을 마주하고 조각내 버린다.
그간 다양한 작품에서 멀티버스는 '내가 놓친 세계'로서 기능했다. 그것은 단순히 비슷한 우주를 넘어, 내가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한 또 다른 나의 우주인 것이다. 우리는 멋진 다중우주를 보며 아쉬움을 달래고, 끔찍한 다중우주를 보며 (저 길을 가지 않은 것을) 안도한다. 그것을 잘 보여준 것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다. 대중 예술에서 멀티버스는 곧 '내가 품었던 가능성'이다.
다시 <데드풀과 울버린>으로 돌아와 보자. 데드풀이 멀티버스에서 온 무수한 자신을 벨 때, 그는 사실 자신의 무수한 가능성을 베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액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비록 비참한 현실이지만, 그는 또 다른 우주에 살고 있는 자신에게 현혹되지 않고 현재의 자신을 지킨다.
이것은 울버린의 서사와도 일치한다. 이들은 마침내 카산드라를 무찌르고, 울버린은 소원대로 과거로 갈 수 있게 됐다. 그러나 TVA의 관계자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비참한 과거가 지금의 영웅, 울버린을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마침내 울버린은 과거에 대한 후회를 접고, 현재의 자신을 받아들인다.
자, 그렇다면 이야기를 한번 정리해 보자. 현실에 이리저리 치여 살던 한 남자는 가장 좌절스러운 순간에 기절한다. 그는 꿈속에서 그토록 원하던 히어로가 되고, 몰랐던 자아(울버린)와도 만난다. 하지만 아뿔싸, 이 꿈은 악몽이었다. 그는 그동안 외면했던 자신의 속마음과 마주한다. 이 과정은 마치 악당에게 괴롭힘을 받는 것처럼 고통스럽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기억해 낸다. 그것은 힘든 현실에서 함께해 준 이들이다. 그는 멀티버스가 제시하는 달콤한 꿈, 또 다른 나에 대한 상상을 거부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비록 그것이 최악의 모습이라 할지라도. 그렇게 남자는 자기 인생의 진정한 히어로로 거듭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데드풀과 울버린>의 숨겨진 이야기다. 여기서 '남자'라는 호칭은 여성과 대비되는 남성을 넘어 인간 전체에 대한 지시로 확장된다. 이런 해석을 거칠 때 이 영화의 진가가 드러난다.
그간 마블은 멀티버스로 마술을 부리며 히어로 무비의 새 지평을 열었다. 하지만 어느새 관객은 다중우주가 제안하는 너무 많은 가능성에 지친 상태다. 바로 그 타이밍에 <데드풀과 울버린>은 유쾌하게 다가와서, 이제 그만 현재에 집중하자 말한다. 어쩌면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했을 한마디. 그러므로 <데드풀과 울버린>의 의미는 이토록 예리하게 시대의 공기를 포착하고 영화에 반영하며, 새로운 가치를 제안하는 그 섬세하고 세련된 감각에 있다.
기술의 발달로 영화는 점점 더 자유로이 현실을 벗어나고, 더 생생하게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당신은 영화를 통해 다른 우주로 갈 수 있고, 또 다른 나를 불러올 수 있다. 이토록 현란한 가능성의 세계에서 <데드풀과 울버린>이 건네는 단출한 메시지는 어딘가 감동스러운 구석이 있다. 기억해. 세계가 어떻게 변화하든 우리의 세상은 하나뿐이고, 당신과 나도 단 한 명뿐이야. 그게 우리가 가진 전부야. 나는 이런 얘기를 해줄 영화를 기다려 왔다.
원문 https://www.p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8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