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기대를 받은 <데드풀과 울버린>의 뚜껑이 마침내 열렸다. 영화에 대한 반응은 대체로 비슷한 것 같다.
"히어로는 물론 최근 정체기를 맞은 마블 유니버스까지 모두 시원하게 까대며 조동아리 액션을 선보이는 데드풀의 매력은 여전하다. 처음으로 '19금' 딱지를 단 만큼 성인 유머까지 알차게 풀어낸다. 데드풀 시리즈를 이으며 울버린의 복귀, 엑스맨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는 임무까지 성공적으로 완수. 다만 그 이상으로 이 영화만의 두드러지는 한 방은 없다."
나는 여기 대체로 동의하지만, <데드풀과 울버린>이 마블의 명맥을 잇는 재밌는 평작으로 평가받는 것이 약간 불만이다.
다른 히어로와 다른 데드풀만의 매력이 있다. 물론 선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유머 감각과, 지치지 않는 수다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하지만 데드풀을 다른 히어로와 가르는 핵심적인 차이를 딱 하나 꼽자면, 그것은 '감각'이다.
데드풀만의 힙한 감각은 다른 히어로를 압도한다. 이건 단순히 세련됐다는 것과 좀 다르다. 다른 히어로들이 자신의 공고한 세계관 안에서 사고한다면, 데드풀은 마치 우리와 같은 세계를 사는 인물처럼, 관객과 함께 호흡하고 최신의 감각을 유지한다. 그는 당장 현실 세계로 튀어나온다고 해도 아무런 위화감 없이 바로 인싸로 등극할 것 같다. 그리고 이런 감각을 한결같이 유지한 히어로는 데드풀이 유일하다. 모두까기와 수다도 이런 감각에 기반한 기술이라 할 수 있다.
그럼 <데드풀과 울버린>을 보자. 영화에서 데드풀의 감각은 어떤가? 그의 센스는 녹슬기는커녕 더 예리하고 세련되게 가공되었다. 구원자가 필요한 마블의 상태, 스타 배우로 인한 제작비 상승, 멀티버스 설정의 과도함을 골고루 놀려댄다.
그런데 데드풀의 센스는 단순히 '농담을 얼마나 잘하는지' 따위에 한정되지 않는다. 이 영화는 드높은 이상을 내려놓고 거친 현실에 적응해야 하는 전직 히어로의 얼굴에 지금 세대의 자화상을 겹쳐놓는다. 만족스럽지 않지만, 소중한 일상. 과연 데드풀만의 이야기인가? 영화는 유연하게 관객의 공감대를 이끌어낸다.
또 멀티버스에 대한 태도도 세련됐다. 데드풀은 최근 마블이 '다중우주'라는 설정을 도깨비방망이처럼 휘두르며 비판받은 점을 솔직하게 언급한다. 그러면서 멀티버스에 대해 새로운 태도를 보이는데, 이에 대한 내용은 곧 업로드될 PD저널 기고에서 자세하게 설명할 예정이다.
때로 어떤 영화의 가치는 화려한 연출, 풍성한 설정 같은 전형적인 요소가 아니라 예리한 센스, 그 하나에 있다. 그건 너무 섬세해서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마치 눈에 띄지 않지만 어딘가 매력적인 친구처럼. <데드풀과 울버린>의 성취는 지금 시대의 공기를 읽어내는 민감함, 그것을 감각적으로 영화에 녹여내는 세련됨에 있다.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그걸 꾸준히 해내는 건 '데드풀' 밖에 없다는 점, 그것이 역설적으로 그의 특별함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