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영화관에서 휴식

※ 조선일보 '일사일언' 코너에 기고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글은 영화관의 의미에 관해 썼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세요. :)



얼마 전 지인들과 영화관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상하게도 극장 안에서는 잠이 잘 온다는 내용이었다. 누구는 그곳에서 자는 잠이 유독 달다는 말도 덧붙였다. 영화를 사랑한다는 이들이 모여 하는 이야기가 고작 이런 것이라니 웃음이 나왔지만, 공감하는 바다. 본격적으로 영화가 시작되며 우리를 둘러싼 공간이 캄캄한 어둠에 휩싸이고 정면에 일렁이는 빛이 떠오르는 그때, 어딘가 모를 평안함에 잠긴다. 이토록 아늑한 곳이라면 꾸벅이며 조는 일도 이상하지 않다.

영화관의 의미는 시대에 따라 변해 왔다. 19세기 후반 이후 필름 영화 시대의 극장은 영화를 상영하는 유일무이한 공간이었다. 그로부터 130년이 지난 지금, 인터넷이 등장하고 상영 환경도 급변했다. 우리는 이제 극장이 아니라 온라인으로, VOD(주문형 비디오)와 OTT(동영상 스트리밍)를 통해 작품을 본다. 영화 상영을 독점하는 공간으로서 극장의 특권은 허물어졌다.

하지만 최근 영화관은 다른 의미로 특별해졌다. 2시간 동안 온전히 휴식을 제공하는 공간. 극장도 이런 변화를 감지해 프리미엄관, 스위트관 등 다양한 특별관을 속속 내놓고 있다. 영화관에서 관객이 경험하는 휴식은 물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면도 포괄한다. 핸드폰을 제쳐두고 바깥 세상을 잊은 채, 작품 안으로 조용히 침잠할 수 있는 장소. 관객을 가두어 놓는 불편한 공간이었던 극장은 이제 어지러운 현실을 차단하고 완전한 쉼을 제공하는 즐겁고 은밀한 방공호가 되어 간다.

언제부턴가 휴식은 관념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쉬어야지, 쉬어야지” 하면서도 몸 편하게 뉜 적이 몇 번인가. 영화 보는 일이 업이면서도 극장의 의미에 둔감했다가 사소한 대화로 다시 떠올렸다. 기록적인 출산율 급감 등 지나치게 경쟁적인 한국 사회에서 개인이 지쳐 있음을 드러내는 지표는 많다. 쉼이 쉽지 않을 때는 영화를 핑계로 극장에 가면 어떨까. 잠시 가쁜 숨을 가라앉히며. 내킨다면 그저 푹 자도 좋으니 말이다.


원문

https://www.chosun.com/culture-life/culture_general/2024/08/05/KVBZ7JL5QNHY7FC7LSPQZ5ZT4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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