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평론가 홍수정 Oct 31. 2024

[예비평론가를 위한 조언] 현실을 고민하라, 거듭거듭

평론가가 되기로 마음먹었을 때 가장 먼저 부딪히는 것은 아마도 현실의 벽일 것이다. 

예술 계통이 모두 비슷하겠지만, 성공한 일부 사람은 폼나게 일하면서 돈도 버는 것 같지만(실상을 들여다보면 이들도 현실에 찌든 생활인인 경우가 많다), 나머지는 암만 생각해도 경제적으로 힘들어 보이기 때문이다. '예술은 배고픈 작업'이라는 말은 평론가에게도 통용된다. 


그래서 평론가의 경우 전업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도 많다. 평론가가 과연 직업인지 분명하지 않다(확실한 직업이 되면 좋겠다). 마치 유튜버가 직업인지 확실하지 않은 것처럼. 이건 무시하는 말이 아니라, 그 활동을 하는 것만으로 생계를 이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 직군이기 때문이다. 평론가는 비평법인 같은 곳에 취업해서 다달이 월급 받으며 일할 리는 만무하므로, 본질적으로 프리랜서다. 



그러므로 비평가의 현실은 불안정하다. 말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이지만 이걸 말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평론가가 될지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요소니까. 그래서 나는 평론가가 되고 싶다는 이들에게 반드시 직업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고 조언한다. 실제로 다른 직업을 가진 채로 잘 활동하는 이들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업 평론가가 되고 싶다면, 혹은 평론 활동을 잘하기 위해 직업을 어느 정도 포기하고 싶다면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그 선택을 하기 전에 반드시 현실을 고민하라. 거듭 거듭, 할 수 있는 한 많이. 내가 비평을 선택함으로써 포기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결정이 내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구체적으로 예측하고 고심하라. 평론이라는 환상(아마도 비평가가 되고 싶은 이들은 어느 정도 이 환상이 있을 것이다)이 깨어질까 봐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나중에 몇 배로 고통스럽게 현실을 맞닥뜨려야 할 것이고, 높은 확률로 정이 떨어져서 비평마저 팽개치게 된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잃는 것이다. 



내가 이런 조언을 하는 이유는, 나야말로 최근에 비평에 전념하겠다는 생각에 다른 길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내 블로그를 보는 분들은 알겠지만) 건강과 평론을 이유로 최근에 퇴사했다. 이런 결정에는 비평을 향한 열망이 큰 작용을 했다. 더 늦게 전에 진검승부를 해야겠다는 생각. 


하지만 이런 선택으로 일상은 크게 바뀌었고, 현실적인 부분에 영향이 없을 리 없다. 하지만 멈칫할 수 있어도, 후회는 하지 않는다. 이미 고려했던 부분이고, 이마저 감당하겠다고 몇 차례 결심한 뒤 이 길에 왔기 때문이다(사실 좀 자주 멈칫거린다ㅋㅋ). 

나는 이 고민을 수년 간 했고, 실질적인 선택에 앞서 본격적으로 고민한 기간은 1년이 넘었다. 만일 내가 평론가에 전념함으로써 내 삶에 미치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직시하지 않고 이 길에 왔더라면, 나는 지금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현실은 상상보다 생생하며 날카롭다. 



겁을 주고 싶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이 겁을 주게 된다면, 어찌 보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먼저 비평을 하는 사람으로서 평론가의 삶이 평탄해질 수 있게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비평만큼이나 개인의 일상의 안녕은 중요한 것 같다. 그럼에도 기어코 와야겠다면. 환영한다, 당신. 

매거진의 이전글 '바쁜 오늘, 글 쓸 수 있을까?' e북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