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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Nov 21. 2024

연말이라 다들 신나나 봐

나는 우울한데

구글광고가 자꾸 연말이라고 설레발치는데 열받아 죽겠다. 연말이에요! 방구석에 있지 말고 공연 좀 보세요. 크리스마스 스페셜 에디션으로 나온 화장품도 사세요. 야.. 원래 공연 안 보던 사람이 연말 됐다고 볼 것 같아? 어림없지. 스페셜 에디션은 포장만 이쁘지. 몇 달 있음 스프링 에디션 내놓고 날 유행에 뒤처진 사람 취급할 거면서.  


다행히도 아직 알고리즘이 내 심리는 모르는 것 같다. 나는 연말에 전혀 신나지 않아. 불안하고 초조해. 한 것도 없이 또 한 살 먹게 돼서 굉장히 다운된 상태야. 


내 지갑을 열고 싶으면 이런 걸 팔아봐. '몸 시계를 연초로 돌려라!' 회춘 영양제. 연말이라 우울한 사람을 위한 책 '올해도 개뿔 한 게 없지만 괜찮아'. 남은 한 달 동안 뭐라도 해보자, '벼락치기용 플래너'. 멘탈 터진 사람을 위한 독주 '마시고 일어나면 내년이에요'. 음, 뭐 더 좋은 거 없을까?


시즌성 질환인 연말 우울을 앓은 지 좀 되었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이제는 이것이 불치의 증상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앞으로 열심히 하면 내년 연말에는 행복하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뭐 해가 바뀌었다고 대단한 변화가 있기는 어렵다는 것을 안다. 늘 목표는 드높고 몸은 게으르니까. 연말을 상큼하게 맞을 정도로 성취를 이루기란 사실상 불가능이다.  


그래서 이제는 그냥 이 감정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울하고 불안하더라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건 축복이지. 기대할 수 있는 내년이 있다는 점도 행운이고. 라고 되뇌면서 이마를 때려보자. 내게 연말은 견디는 시간. 40일을 잘 보내고, 31일에는 좀 평온한 상태로 에세이를 쓸 수 있기를. 또 쳐울고 있을 것 같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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