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안에 닥칠 변화
최근 AI 영화에 대해 취재할 일이 있었는데, 이 일을 계기로 평소에 막연히 생각했던 것들이 확고해져서 나눠보고 싶습니다(기사는 맨 아래).
먼저 5년 안에 AI 영화는 영화계 메인스트림에 완전히 장착할 것입니다. AI로 100% 제작된 영화를 말하죠. AI를 일부 활용한 작품은 지금도 이미 많아서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AI를 활용한 특수효과, 더빙, 디에이징까지.
그리고 10년 안에 AI 영화는 전통 영화를 넘어서 뉴노멀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5년이면 AI 영화를 흔하게 접하게 될 거고, 10년이면 AI 영화가 더 많아질 거예요. 그 이후 우리는 "예전에는 사람들이 직접 모여서 영화를 찍고, 그걸 극장에 가서 봤대"라고 말하는 시대를 맞게 되겠지요.
AI로 인한 변화를 얘기하는 분은 많지만, 제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이것이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전통 영화를 넘어서리라는 점입니다.
정확히 5년이 걸릴지 6년이 걸릴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이 시간은 반드시 올 것이며 이미 도래한 미래라는 것입니다. 영화 외 모든 영상물이 마찬가지예요. 가성비가 중요한 광고계가 가장 빨리 변화할 것이고, 유튜브에서도 일반 사람들의 AI 콘텐츠가 쏟아질 것입니다. 영화는 예술성에 대한 기대가 있어 상대적으로 느리게 진행되겠지만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AI 영화의 도래를 확신하는 이유는 비용 때문입니다. 이것이 다른 기술과 AI의 차이입니다. 가령 3D 기술을 접목할 경우 2D 영화보다 대체로 제작비가 더 많이 들어요. 그만큼 수익이 나지 않으면 손해를 떠안게 되는 리스크가 발생하죠. 하지만 AI 영화는 오히려 제작비가 압도적으로 절감됩니다. 연기, 편집, 촬영 등에 필요한 수많은 사람의 인건비, 카메라 같은 장비, 로케이션, 하다못해 식대까지 필요한 비용을 전부 절감할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영화계가 힘든 때 이것은 압도적인 이점입니다. 제작자는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죠.
게다가 AI 캐릭터는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죠. 리스크가 적습니다. 논란을 일으켜서 개봉 작품에 찬 물을 뿌리거나, 출연료가 올랐다는 이유로 속편 제작에 차질을 일으키지 않아요. 스케줄을 조정할 필요도 없이 동시에 여러 영화에 출연할 수도 있습니다. 제작도 마찬가지입니다. 날씨의 영향을 받지도 않고, 잘못 촬영한 장면을 수정하기도 쉽죠.
게다가 AI 영화는 윤리적 문제에서도 우위에 있습니다. 심심하면 터지는 스태프 갑질 문제, 영화계 성폭력, 촬영으로 인한 환경 파괴, 동물 학대 등의 문제에서 자유롭다는 뜻입니다.
또 하나 아주 중요한 점은, AI 영화가 청년, 독립 예술인에 대한 기회라는 점이에요. 처음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 투자받을 기회를 잡지 못한 예술인 말이죠. 단편영화 하나 만드는 데도 최소한 몇 백을 감수해야 되는 환경에서 AI 영화는 놓칠 수 없는 기회입니다.
그럼에도 AI 영화가 전통 영화를 넘어서지 못할 것이라는 시각에는 AI 영화의 이물감이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우리가 흔히 느끼는 그 어색함 말이죠. 하지만 이것은 시간문제입니다. 당장 1년 전 AI 영상과 지금을 비교하기 어렵고, 지금도 꽤 괜찮은 AI 영화들이 나오고 있어요. 상업화 단계까지 올라오지 못했을 뿐이죠.
다른 한편으로는 그 어색함 자체가 곧 AI 미학으로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애니메이션과 비슷하죠. AI의 특성이 불쾌한 골짜기라거나 약점이 아니라, 그냥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AI 콘텐츠를 유년기부터 접한 세대가 성인이 되는 순간, 이런 흐름은 가속화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AI 영화는 언제 본격화될까요? 저의 예상으로 큰 흥행작이 나올 때가 될 것입니다. 지금 극장 시스템에서는 힘들 것 같아요. AI 영화가 '관객에게 먹힌다'는 사례가 없기 때문에 상영은 어려울 것이고, 아마도 유튜브에서 시작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작비 10만 원으로 찍은 AI 영화가 조회수 천만" 이런 사례가 나온다면 본격적인 흐름이 시작되겠죠.
성공적인 AI 영화가 먼저 등장하는 분야는 '판타지'가 될 거예요. 판타지 성격이 너무 강해서 사람, VFX로는 아무리 잘 구현해도 어색한 작품 말이죠. 가령 지난해 개봉했던 <퇴마록>이나 <귀멸의 칼날>은 AI 영화로 만들기 좋죠. <전지적 참견 시점>도 AI 영화에 적합합니다. 스타 출연료, VFX로 막대한 비용은 들어가는데, 그럼에도 잘 구현이 안돼서 폭망 할 수 있는 영화에 아주 딱이죠.
가장 늦게 적용되는 장르는 정통 드라마가 될 텐데요, 예를 들어 <은중과 상연>을 AI 인물로 한다고 생각하면 역시 어색하죠? 시청자와 인간적인 교감이 필요한 장르는 비교적 늦게 적용될 겁니다. 이 조차도 시간의 문제 이긴 합니다.
AI 영화가 몰고 올 급격한 변화로 영화계는 한동안 진통을 겪을 텐데요. 제가 걱정하는 쪽은 영화인입니다. 말했듯이 AI 기술은 제작자에게 좋아요. 관객에게도 좋습니다. AI 영화의 보급으로 콘텐츠 시청 비용은 무조건 낮아질 것이니까요.
하지만 연출자는 이야기가 좀 다릅니다. 이제 AI와 경쟁해야 하는 처지지요. 이미 유명한 감독들(예를 들어 박찬욱, 봉준호..)은 괜찮습니다. 이미 자기 브랜드가 있으니까요. AI 영화가 생겨도 봉준호 영화를 보러 갈 사람은 늘 있으니까요.
문제는 전통 방식으로 연출을 배운, 아직 자기 브랜드가 없는 연출자입니다. 설 땅은 점점 줄어드는데, 그렇다고 다시 AI를 배우며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하기도 어렵고. 젊은 때 고생해 가며 일 배워서 써먹어야 할 시점에 시대가 바뀐 것이죠. 하지만 저는 그래도 AI를 하시기를 추천합니다. 전통 연출과 AI 모두를 한다는 점이 큰 이점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더 심각한 쪽은 연기, 촬영, 편집 등 인력입니다. 역시나 자기 브랜드가 있으면 괜찮아요. 가령, 스타 배우는 AI로 대체되기 힘들겠죠. 하지만 아직 브랜드가 없는 경우 큰 도전을 직면하게 될 텐데요, 배우의 경우 문제가 가장 큽니다. 적어도 10년 안에는 자기 브랜드를 꼭 만드시기를 바랍니다. 그 이후는 없다는 생각으로 직업의 사활을 걸고. 그렇지 않으면 사라지거나 연극과 같이 인간의 연기가 필요한 장르로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넘어가야 할 텐데, 그것 역시 가능할지 알 수 없는 일이죠(그렇게 생각하면 연극계 퀄리티가 훨씬 좋아질 수도 있겠네요).
지금 영화 연출을 배우는 분들이라면, AI는 필수로 권합니다. 물론 전통 영화는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점점 영역이 줄어드는 탓에 진입도 어려울 것이고, 운 좋게 들어가더라도 AI는 점점 더 많이 활용될 테니까 어차피 아셔야 돼요.
만약 저라면 이미 도래할 미래를 좀 더 빠르게 시작하는 쪽을 택할 것 같습니다. AI 영화의 시대가 온다 해도, 그것을 만드는 건 여전히 인간일 텐데, 거기서도 실력이 나뉘고 스타 연출가는 탄생할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을 국가가 나서서 육성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AI 영화의 성공을 가를 까요? 이건 한참 얘기할 문제이지만, 저는 상상력과 내러티브를 꼽겠습니다. 지금까지 얘기한 것을 종합하면, 기존의 상상력을 넘어서는 끝내주는 판타지를 AI로 만들어 유튜브를 통해 배포하면 뭔가 될 것 같지 않나요? 저는 그런 작품이 곧 나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AI 영화는 단순히 영화 제작 방식을 바꾸는 데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영화라는 관념 자체를 바꾸어 놓을 거예요. 지금 영화는 기술자가 만드는 특별한 영상이지만, 곧 사용자 친화적인 AI가 나오면 누구나 2시간짜리 영화, 혹은 20시간짜리 시리즈를 만들어 유통시키는 미래가 올 것입니다.
극장은 지금 OTT와 경쟁할 것이 아니라 AI 영화 시대를 어떻게 맞을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AI 영화의 장점은 라이트함이거든요. 쉽고 빠르게 만들어지고, 누구나 접할 수 있는. 그런 작품을 극장까지 찾아가서 만오천 원을 주고 보는 것은 잘 상상이 안 되죠. 이 부분은 다른 글에서 다룰 것이지만, 극장은 이제 콘텐츠가 아니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활로를 모색해야 합니다.
긴 글을 썼지만 당장의 변화만 예측될 뿐, AI가 영화계에 가져올 큰 미래는 도무지 상상이 가질 않아요. 아마도 저의 상상력을 넘어서겠죠.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누구나 영화를 쉽게 만들 수 있다는 '물리적 조건'은 이제 우리 '문화' 전반을 바꿀 것이라는 점입니다.
사진의 대중화가 인스타그램을 불러왔듯이, 수시로 영화를 만들어 자기를 표현하고, 주말에는 친구가 만든 영화를 보며 함께 놀 수도 있습니다. 부모들은 아이가 보았으면 하는 콘텐츠를 직접 만들 수도 있겠네요. 마치 텍스트처럼 영화로 소통하는 시대가 올까요? 상상할 수 없는 미래는 새로운 문 같아서 호기심이 생기는 동시에 두렵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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