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영화나 원작 소설은 보지 못했다. 예고를 보고 한 생각들.
1. 새 여주의 등장인가?
개인적으로 <어쩔수가 없다>에서 기대되는 캐릭터는 만수(이병헌) 보다 미리(손예진) 쪽이다. 박찬욱 영화의 여주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먼저 현실 감각은 없지만 매력적인 팜므파탈. <박쥐>의 태주(김옥빈), <아가씨>의 히데코(김민희), <헤어질 결심>의 서래(탕웨이)가 여기 속한다. 반대 편에는 강인하고 영리해서 자기 현실을 씩씩하게 개척해 나가는 인물이 있다. <아가씨>의 숙희(김태리), <헤어질 결심>의 정안(이정현)이다.
그런데 미리는 이 두 가지 성격을 모두 지닌 것 같아 흥미롭다. 겉은 정안처럼 싹싹하고 현실적인데, 속은 서래처럼 뜨겁고 잔혹할 것 같은 느낌. 예고에서 보면 상냥한 아내 그 자체인데, 위의 스틸컷은 서늘하고 불안해서 서래를 연상시킨다. 처음 보는 유형의 여성 캐릭터가 나타날 것인가.
2. 저택 스릴러 환영
<스토커>, <아가씨>를 이어 가옥을 배경으로 한 잔혹극을 보여줄 것 같다. 잘 꾸며진 집안을 스릴러 무대로 전환시키는 작품을 좋아한다. 스틸만 봐도 분위기가 꽤나 멋지다.
3. '나무'가 영화의 구조와 이미지 관통할 것
스틸컷들을 보면 '나무'의 이미지가 관통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뿌리-줄기-열매로 이어지는 나무의 구조와 영화의 이야기가 서로 맞물리며 제시될 것 같다. 예를 들어 아래 왼쪽 스틸컷을 보면 풍성한 잎과 줄기가 강조되고, 그 옆에 즐거워하는 인물들이 있다. 반대로 오른쪽 스틸컷을 보면 만수가 화분을 들고 무슨 일을 저지르려는 것 같다. 이때 화분은 왼쪽 스틸컷에서 땅에 단단하게 박힌 채로 뻗어나간 생명력 넘치는 나무와 대조를 이루며, '뿌리 채 들린' 식물을 상징한다. 즉, 뿌리 채 흔들리는 위기에 처한 만수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 같다.
4. 박찬욱 曰 "웃긴 영화"… 솔직히 우려된다
개인적으로는 <어쩔수가없다>에 기대가 크지만, 흥행의 차원에서는 약간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 그건 해외 지역 영화제에서 수상을 했는지 여부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어쩔수가없다>는 박찬욱 작품 중 유례없이 흥행에 대한 압박이 큰 것 같다. 박찬욱도 인터뷰에서 "웃긴 작품"임을 강조하기도 하고. 그런데 우리끼리 얘기지만, 나한테는 이것이 그다지 좋은 시그널로 다가오지 않는다. 일단 박찬욱은 소소한 개그 코드가 있으나 이걸로 승부를 볼 정도인지는 모르겠고, 흥행에 중요한 청소년 관객이 실직한 중년의 이야기에 공감할지 미지수다. 사실 코미디는 가장 어려운 장르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병헌이 워낙 감각이 좋고, 영화의 유머가 외국에서 먹힐 가능성도 있으니 어느 정도의 성과는 거둘 것이다. 이미 해외 판권으로 손익분기점도 넘겼고.
다만 흥행에 신경 쓰다 박찬욱의 색깔이 옅어질까 불안하긴 하다. 박찬욱은 여태 끊임없이 변화하며 자기 색깔을 잘 지켜온 연출가다. <어쩔수가없다>는 어떤 방식으로든 터닝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