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는 어떤 역할이 어울릴까?
<21세기 대군부인>가 공개되며 아이유의 연기가 다시 한번 회자되고 있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아이유의 연기는 언제나 화제를 모은다. 이것이 연예인의 도화살인가. 아이유의 타고난 장점이다.
나는 몇 해 전부터 꾸준히 아이유의 연기에 관한 글을 써왔다(맨 아래 글 참고). 배우 이지은에 그만큼 애정이 크기 때문이다.
아이유는 확실히 연기자의 재능이 있다. 그런데 그건 기술이나 스킬의 차원은 아니고, 인간 이지은 특유의 감성에 관한 것이다. 그녀 만의 울적함, 사랑스러움, 연약함, 의외의 강인함 같은 것들이 눈동자와 목소리에 묻어나며 브라운관 너머 시청자를 사로잡는다. 그녀를 가수로서 성공시켰던 그 에너지는 배우의 길에도 뻗어 나왔다. 내면에 폭풍이 몰아치는 것이 예술가의 기질이라면, 아이유는 그 바람을 잘 다스려 원하는 방향으로 흘려보내며 순풍을 만난 닻처럼 뻗어나가는 케이스다.
아이유는 좋은 배우가 될 자질이 충분하다. <폭싹 속았수다>에서 최진실에 비유되는 영광을 누린 이유를 알 것 같다. 다만, 지금 이 시점에 아이유의 연기에 관한 나의 평가는 이전의 언급과 동일하다.
"아직 맡지 않았으면 하는 역할은 호흡이 느린 정통 멜로물이다. 여기에 조연까지 적다면 더 궁합이 안 맞는다. 연기자로서 아이유는 더 성장할 부분이 남아있어서 홀로 느린 호흡을 감당할 정도에 이르지 못했다.
반대로 서사가 강한 장르물은 유리한 선택이 될 텐데, <폭싹 속았수다>나 <호텔 델루나> 같은 작품을 고르는 것을 보면 본인도 그것을 감지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 브런치 글 '현실화된 전망들 - 아이유, 웹툰 영화, 전독시' 中 (아래 참고)
이 글을 쓴 것은 지난해 <폭싹 속았수다>로 아이유가 한창 호평을 받을 당시다. 그때도 나는 호흡이 느리고 조연 비중이 적은 멜로물을 피할 것을 권했다. 차기작에 대해 알지 못했지만. 분명 원톱으로 이끄는 멜로물을 제안받을 텐데 그녀에게 좋지 않은 옵션이라 판단했기 때문.
안타깝게도 1, 2화만 보았을 때 <21세기 대군부인>은 이러한 케이스다. 우선 조연의 비중이 적다(<폭싹 속았수다>와 비교해 보자). 또 의외로 호흡이 느리다. 연출이 루즈하기 때문. 그리고 설정은 강렬하지만, 서사가 약하다. 스토리가 휙휙 지나가서 연기력에 눈이 가지 않으면 다행인데, 그렇지 않다. 물론 아직 시리즈 초반이라 그럴 것이다.
아이유의 연기는 잠재력이 크지만, 아직은 홀로 극을 이끌기에 부족하다. 하지만 강렬한 서사나 실력파 동료들이 지탱해 준다면 그 안에서 자기 몫을 수행할 정도로는 충분하기에 이런 작품을 이어가길 바랐다.
게다가 아이유의 경우, 특유의 분위기 탓에 아무래도 클로즈업하고 싶은 연출자의 욕구를 자극하는 것 같다. 이것이 지금의 아이유에게는 오히려 부담이다. 나는 그녀가 롱테이크 클로즈업에서 무너지는 것을 종종 보았다. 혼자 카메라를 견디는 것은 선배 연기자에게도 어려운 일이니까.
하지만 아이유에게도 억울한 부분이 있다. 이 작품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을 것이다. 독특한 설정을 소화해야 하고, 루즈한 연출을 견뎌야 한다. 오글거리는 설정을 툭 던져 주고 모두가 그걸 조용히 지켜보는 상황인데, 이런 판에서 살아남을 이가 많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가수는 선곡이, 배우는 작품 선정이 전부인 것을. 그래도 아직 초반이니 뒤로 갈수록 좋아질 것이다.
지난 글에서 꾸준히 말했는데, 아이유는 남성 보다 여성과 맞붙는 작품에서 오히려 큰 매력을 발휘할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판 <델마와 루이스>. 특히 다른 여성을 보살피고 이끄는 역할이 그녀에게 어울린다. '언니미'를 보여주는 역할 말이다. 그녀의 가녀린 외모와 활동 궤적 때문에 이런 가능성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다만 이런 시나리오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저 털털하고 무뚝뚝한 역할도 좋다. 혹은 <폭싹 속았수다> 같은 정통 드라마를 계속 찍는 것도 연기 수명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정말 배우로서 오래 활동할 생각이 있다면, 지금 아이유는 파격적인 연기 변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데 워낙 스타여서 연기하는 배역 마저 남들보다 까다롭게 골라야 할테니 어려운 일. 쉽게 말해 '깨는 역'을 맡는 것이 보통의 여자 배우에게도 쉽지 않은데 아이유는 더욱 그럴 것이다. 연기력 좋은 스타가 직면하는 중요한 갈림길에 지금 아이유가 선 것 같다.
※ 참고할 글
https://brunch.co.kr/@comeandplay/396
https://brunch.co.kr/@comeandplay/13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