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지' 4월호, 12가지 마음에 건네는 영화 처방전
※ 법무사지 4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이 괴물."
어린 애들은 이 말을 곧잘 뱉는다. 누군가가 이해되지 않을 때. 낯설어서 두렵고 이상하게 느껴질 때. 나이 든 성인은 저 말이 폭력임을 알고 있다. 그래서 입 밖에 내지 않는다. 하지만 타자를 배척하는 우리의 본능은 몸 안에 숨어들 뿐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토록 날카로운 말은 때때로 방향을 바꾸어 우리 자신을 노린다.
'나는 괴물일까?'
'누군가 나를 괴물로 여기면 어떡하지?'
인간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그 지점에서, 사람들은 나직이 저 말을 되뇐다. 그렇기에 '괴물'은 상처가 많은 말이다.
그런데 이 단어를 제목으로 삼은 영화가 있다. 바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현재 일본 영화계 최고의 거장이다. 그는 전작 <어느 가족>으로 칸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전 세계적인 인정을 받았다. 고레에다의 영화에는 살짝 비틀린 관계가 자주 등장한다. 이를테면 각자의 사정으로 원가정에서 떨어져 나와 한집에 모여 사는 사람들이나(<어느 가족>) 병원의 실수로 서로의 아이를 키우게 된 두 가족(<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고레에다는 '비정상'이라 여겨지는 관계 안에 파고들어 그사이에 비친 인간의 본성을 탐구한다. 그런 그가 2023년 내놓은 영화가 바로 <괴물>이다. 칸영화제 각본상을 타며 관객과 평단의 사랑을 고루 받은 작품이다.
제목이 예고하듯, 고레에다는 괴물이라 불리는 사람들을 들여다본다. 여기에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한다. 어느 날부터 변해버린 아이 미나토(쿠로사와 소야), 슬픈 눈동자를 가졌지만 천진난만한 요리(히이라기 히나타), 안 좋은 소문에 휩싸인 담임선생님 호리(나가야마 에이타), 어딘가 의뭉스러운 교장 후시미까지(다나카 유코). 고레에다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이 중에 진짜 괴물이 누구인지 한번 찾아보라고. 그의 손을 덜컥 잡는 순간 당신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발을 들이게 될 것이다. 오늘은 여리고 아름다우며 격정적인 영화, <괴물>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이해받지 못하여 슬픈 이들을 위하여. 단 한순간이라도 스스로를 괴물이라 생각하며 마음 아파한 이들을 위하여. 아래부터 영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나오니 유의해 읽어주기를 바란다.
어느 날 사오리(안도 사쿠라)는 아들 미나토가 어딘가 달라졌음을 깨닫는다. 그의 몸에서 상처를 발견하고, 사오리는 학교를 방문한다. 이때부터 우리는 그녀와 함께 범인을 찾기 시작한다. 저 사랑스러운 아이를 괴롭힌 이는 누구일까. 하지만 학교 측은 뻔한 말을 늘어놓을 뿐이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꼬여간다.
가슴이 답답해질 때쯤, 이 영화의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누군가의 사정은 그리 간단히 일축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영화는 말한다. 그러면서 보여준다. 이들이 필사적으로 숨겨 온 자기만의 어둠을.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말할 수 없는 미나토. 누군가를 좋아하기 때문에 얻어맞는 요리. 가장 힘든 때에 애인에게 버려지는 호리 선생. 매일 슬픈 비밀을 꾸역꾸역 삼키는 후시미 교장. 이들은 허물어지는 내면을 숨기며 간신히 웃어 보이지만, 그런 모습은 남들에게 괴이하게 보일 뿐이다. 어딘가 다른 이들에게 세상은 '괴물'이라는 라벨을 붙인다. 하지만 이들은 해명하지 못한다. 이해받지 못할 것이므로. 이토록 외로운 괴물들의 세계에 희망은 없어 보인다.
영화의 후반, 결정적인 장면이 등장한다. 엄마 사오리와 담임 호리는 사라진 미나토와 요리를 찾아 나선다. 이날 온 세상을 휩쓰는 폭풍우는 아이들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서로를 특별하게 여기는 그 마음은 기쁘고도 힘겹다. 누군가를 좋아하기 때문에 폭력에 노출되는 현실은 감당하기 버겁다. 이들은 서로를 좋아하지만 그 마음 때문에 아프다. 그런 시간 끝에, 두 아이가 마법같이 둘만의 은신처에 도착하는 마지막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꿈일까, 현실일까, 혹은 영화의 염원일까. 어느 쪽이든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둘의 행복이 새겨진 저 순간은 스크린 위에서 영원히 이어질 테니까.
영화 <괴물>은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마지막에 이르러 아이들은 숨 가쁘게 낙원 속으로 달려간다. 이토록 생생하고 찬란한 행복. <괴물>은 아마도 이 순간을 위해 달려왔을 것이다. 좀 더 오래 머물고 싶은 장면. 따스하지만 어쩐지 눈물겹다. 저 멀리 멀리 사라지는 그들을 뒤로한 채, 남은 여운을 달래는 것은 우리의 몫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