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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Oct 08. 2018

너는 인간적인게 매력이야

예전에 티비를 보니 어떤 연예인이 "저는 블라블라 한답니다" 라고 하자 주변 엠씨들이 정말 털털하고 인간미 넘친다는 칭찬을 해주고 있었다. 이 모습이 재밌었던 이유는 그 털털 포인트라는 게 사실 별다른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연예인들은 인간미를 어필할 때 적당히 귀여운 에피소드를 얘기하지 진짜 야생의 모습은 오픈하지 않는다. 이것은 '인간미'라고 불리지만 사실상 관리한 모습인 셈이다. 이건 "4차원적인 매력"을 가졌다는 연예인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만약 누군가가 말 그대로 진짜 4차원이라면 그 사람은 대개 비호감이고 인기가 없다. 진정한 엉뚱함은 사회와 조화하지 못하므로 상대를 당혹시키고 불쾌하게 만든다. 엉뚱미로 인기를 끄는 스타들은 대개 자신의 여러 모습 중에 사람들이 좋아할 모습만을 오픈할 정도로 영리하고 눈치가 빠른 사람들이다.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연예인들의 태도를 비판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 반대다. 성공한 스타의 태도는 의외로 연애에 있어서의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대중을 대하는 연예인의 자세는 우리가 연인을 대하는 자세와 닮은 구석이 있다. 둘 다 상대를 유혹하기 위하여 판타지를 유지해야 하는 동시에 소통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완전한 판타지도, 완전한 소통도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진짜 매력은 판타지와 인간미 사이의 긴장에서 온다.


그런데 "인간미"가 있다는 건 일단 좋은말 아닌가요?하고 물으신다면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만약 꾸민 상태의 반대말을 야생으로 부른다면 인간미는 꾸밈 70 야생 30 정도의 상태를 가리킨다. 상대에게 원하는 인간미는 머리가 이쁘게 부시시한 정도지 머리가 기름에 떡진 정도는 아니다. 너는 뱃살도 귀여워! 라는 건 잘 관리된 몸에 살짝 붙은 뱃살이 귀엽다는 것이지 배가 계속 나와도 계속 귀엽다는 뜻은 아닌 것이다.


그러니까 적당히 긴장하고 적당히 소탈한 면도 보여주면 되겠네 싶지만 실전 연애에 돌입하면 이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그 이유는 사람마다 원하는 꾸밈 : 야생의 배합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누구나 인간미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지만 그 마지노선이 누구는 안씻은 것도 허용이 되고 누구는 생리현상도 재밌어 하는 반면 누구는 기껏해야 안늘어난 추리닝 정도다.


그렇다고 헷갈리니 늘 풀세팅하고 데이트에 나설 수도 없지 않은가. 인간미가 부족하면 연애가 팍팍해지고 넘치면 긴장감이 떨어지지만, 적당하면 관계가 깊어지고 끈끈해진다. 남들은 모르고 나만 아는 너의 꼬질한 모습을 늘려가는 것이 연애의 재미이기 때문이다.


나는 너의 인간미가 좋아. 이 말의 정확한 뜻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니 그 말을 불신해서 연애의 재미를 놓칠 필요도 없지만, 그 말을 과신해서 너무 편해지고서 "인간적인게 좋다며 왜 변한거니" 해서도 안 될 것이다. 상대는 애초에 그런 뜻으로 말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글미가 좋다는건 활발하고 귀여운 모습이 좋다는 것이지 진짜 비글이 되어도 좋다는 뜻이 아니다.

그러니 우리가 "인간미"로 퉁쳐서 말하는 단어의 의미는 사실 광활한 것이다. 연애인으로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대가 생각하는 인간미의 적정선을  찾는 예리한 감각과 그 선을 타고 노는 센스라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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