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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Jul 30. 2018

1131회 <그것이 알고싶다>에 관하여

몰래카메라 범죄에 관한 생각

지난주 토요일에 방영된 1131회 <그것이 알고싶다> '죽어도 사라지지 않는... 웹하드 불법동영상의 진실'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성행위 몰카 범죄에 관하여 다뤘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끝내 방송을 보지 못했다. 생명을 버릴 정도의 멍든 고통을 몇 백 원짜리 영상으로 팔고, 그걸 재미 삼아 소비하며 피해자를 탓하는 현실을 대면하는 것은 너무 아픈 일이다. 이미 알고 있다. 나는 감정을 다독이며 애쓰다가도 결국에는 분노할 것이고, 깊은 내상을 입고 괴로워 할 것이다. 이미 많은 여자들이 죽거나 죽은 상태가 되었다. 그들은 지금도 검색만 하면 모두가 볼 수 있는 공간에서 육체의 조각조각을 조롱 섞인 언어들로 품평당하고 있다.


아마도 몰카 범죄의 가장 큰 특징은 피해자들이 공감받지 못한다는 데 있을 것이다. 영상의 소비자들은 피해자를 조롱하고 비난하며, 나머지는 그저 흥미로운 가십으로 소비하거나, 혹은 인간들의 추한 본성에 재빨리 고개를 돌려버리거나, 이런 지옥이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한다. 유출물 속 여자의 죽음은 루머로 돌지만 거기서 전여친을 발견하고 울적해져버린 남자의 심정은 공감대를 얻고 노랫말로 퍼져나간다. 이것은 사회가 영상 속 여자들에 대한 공감을 철저하게 거부하였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나는 <글래디에이터>(2000)라는 영화가 나왔을 때, 검투사가 로마 시민의 유희를 목적으로 맹수와 싸우던 노예들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고서 야만적이라고 분노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한국에서 연예인의 피해 영상을 온 국민이 돌려보고, 그 유포 영상 속 주인공이 죄송하다고 눈물짓던 시절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이런 사회에서 로마 시절을 말하겠는가. 지금 당장 웹하드만 봐도 범죄 피해 영상을 자기들끼리 사고, 팔고, 댓글에서 더러운 말을 쏟아내며 누군가를 죽이는 과정을 그야말로 "놀이"로 삼는 광경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범죄에 중독된 인간일수록 더욱 더럽고 자극적인 프레임을 피해자에게 뒤집어 씌우기 마련이다. 그래서 피해자가 사람이 아닌 그 이하의 무언가로 추락하고, 그렇게 무방비하게 홀로 남아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해야 그들의 놀이가 계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놀이의 마지막에 "내가 이러는 건 본능일 뿐이고, 쟤들은 당해도 싸다"는 논리로 죄책감마저 가뿐하게 날려버리고서 노트북을 닫는다.

저게 좀 나쁜 경우라면, 일상에서 훨씬 많은 경우는 이런 것이다. "xx녀 영상이 유명하다길래 진짜 궁금해서 한 번 봤는데, 어우 그 여자애 이제 어떻게 하냐 너무 불쌍하더라." 이것이 피해자를 죽이는 행위라는 당연한 말을 새삼 멋있게 글로 쓸 능력이 내게는 없다.


사실은 이 글을 쓰는 것이 그리 내키지는 않았다. 일상에 만연한 악마성을 마주 보는 일이 힘겨웠고, 그것을 글로 옮기는 작업이 버거웠다. 그러나 내가 짧은 졸문이라도 반드시 써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하나다. 만일 피해를 입었거나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다. 부디 이 뻔뻔한 시대를 어떻게든 버텨주었으면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고통에 공감하고, 지금을 부끄럽게 기억하는 그 시간이 반드시 올 것이다. 늦지 않은 시일 내에 올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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