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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문화 비평

'그랑사가-연극의 왕' 광고의 탁월함

by 영화평론가 홍수정


※게임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으므로 지금부터 하려는 말은 게임으로서 '그랑사가'와는 무관하게 광고 영상 '연극의 왕'에 국한된 것임을 밝히고 시작한다.



아마도 이 광고는 진작부터 유아인, 조여정, 배성우, 이경영, 양동근, 소녀시대 태연 등 화려한 캐스팅으로 이미 화제가 되었던 듯 하다. 하지만 그에 관한 사전정보가 없던 나는 우연히 영상을 접하게 됐다.


그리고 굉장히 놀랐다. 내가 정말 놀랐던 것은 배우들의 면면이 아니라, 그 어마무시한 캐스팅에 눌리지 않고 모든 것을 뒤섞어 혼종의 컨텐츠를 만들어내는 대담함과 재기발랄한 창의성 때문이었다.


이 영상에는 모든 것이 경계없이 뒤섞인다. 어른의 머리에 아이의 몸이 (누가 봐도 어울리지 않게) 붙어있고, 어린이극 무대에 CG가 합성된다. 배우들은 제대로 된 정극연기를 펼치는데, 관객들은 또 흡사 제 아이가 출연하는 어린이극을 보러 온 부모들처럼 우쭈쭈하며 무대를 바라본다. 고전 속 대사와(오 줄리엣 맹세하리니)와 현대말(야 야 뭐야 너)가 혼용된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여기 등장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정체성은 스타의 고정적인 이미지(호흡을 많이 쓰는 유아인의 모습, '진행시켜'를 반복하는 이경영)와, 고전 속 캐릭터(햄릿, 로미오 등), 그리고 아동극에 등장하는 어린이 배우("강훈이 형 나 사인 좀"을 외치는 아역배우들)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단순히 외양 뿐 아니라 종잡을 수 없는 정체성 때문에, 그들은 우리에게 불상의 존재로 남겨지며 전혀 새로운 무언가로 다가온다.


그러니까 이 영상의 탁월함은 전통적인 연출 방식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대중문화에 난입해 기존의 기호들을 제멋대로 저글링해 여태 본 적 없는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방식으로 발현된다. 가히 2020년 한국 대중문화의 크로스오버, 잡탕의 미학을 보여준다고 할 만한 영상이다.


동시에 궁금해진다. 이다지도 재기발랄한 창의성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물론 연출자들의 재능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150억원대라고 알려진 어마어마한 자본력이 이 영상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연극의 왕'의 마지막을 볼 때 즈음에는 어쩔 도리 없이 인정하게 되고야 마는 것이다. 충분한 자본력이 창의성의 또 다른 지평을 연다는, 그 씁쓸하고도 달콤한 진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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