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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May 01. 2021

윤여정의 수상소감이 멋진 이유는

한국일보 유튜브 캡처

아카데미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의 수상소감이 연일 화제다. 노령의 여인이 우리가 늘 선망해오던 무대에서 인정받는 것을 넘어, 영어로 멋들어진 소감을 전달하는 광경은 보는 것만으로도 짜릿한 쾌감을 준다. 그런데 윤여정이 어떻게 저런 자연스러운 영어를 구사하는지, 그녀의 유머가 외국인에게 얼마나 먹히는지 만을 주목하는 것은 어딘가 부족한 구석이 있다. 우리가 정말 주목해야 할 것은 탁월한 영어와 유머감각만큼이나 멋진 윤여정의 자태인 것 같다.


그녀의 스피치에는 나이에 걸맞은 담대함과, 예상치 못했던 발칙함, 약간의 수줍음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당당하면서도 여유 있되 지나치게 도취되거나 격앙되어 있지 않은, '아 상을 받는구나' 정도의 적절한 태도가 호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런 태도야말로 매력적이다. 좌중을 천천히 둘러보는 그녀의 눈빛이 없었다면 그 스피치에 관중들이 그렇게 즐거워했을까. 말이란 그런 것이다. 사람들은 말의 내용에 감화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발화자의 아우라에 압도되고 매료된다.


예전부터 윤여정은 말을 참 맛있게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발칙하고 장난스럽지만, 또박또박 발음하고, 늘 정제된 어휘를 선정해서 말한다. 그런 점이 독특한 세련미를 자아낸다. 또 타인에게 실랄한 듯 하지만 멈춰야 할 선을 알고, 나이와 위치에 어울리지 않는 겸손함을 갖췄다.  


물론 윤여정은 국내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마다 화제 되는 했다. 하지만 이제와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이다. 어째서 우리는 저 멋진 여자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기 전에 먼저 더 큰 박수를 보내지 못했나. 선수를 빼앗겨 버렸다. 우리는 왜 다른 이들의 인정을 경유한 뒤에야 스스로의 멋짐을 발견하는 건지. 하긴, 나부터도 국내에서 가장 연기 잘하는 여배우로 자주 윤여정을 꼽았지만 그녀에 대한 연기론 한번 쓴 일이 없다. 이제 와서 뒤늦게 이런 말을 했다가는 구차해 보일 테니 여기에만 살짝 말해두고. 참고로 윤여정의 매력이 잘 드러난 영화로 <여배우들>(2009)을 꼽고 싶은데, 국내에서 과소평가된 작품이다. 이 영화에 대한 언급은 다른 글에서 다시 할 기회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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