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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Oct 09. 2021

영화를 야동으로 소비하는 유튜브 영상들

나는 기본적으로 유튜브에 우호적인 편이고, 영화 유튜브 채널도 곧잘 본다. 솔직히 모든 영화를 반드시 영화관에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유튜브에 떠도는 발랄하고 창의적인 영상들이 좋다.


그런데 영화를 어디까지 편집해서 사용할 수 있을지는 새로 논의되어야 할 어려운 문제다.

물론 법적으로는 영화의 장면을 하나만 허락 없이 이용해도 (공정이용에 대한 부분은 빼고 생각하자면) 저작권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

하지만 지금의 유튜브 생태계를 생각하자면 그렇게 원론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무리다. 특히 수많은 영화 팬층을 구독자로 거느린 유튜브 채널들에서 어떤 영화를 다루는 것은, 저작권 위반을 조금 감수하고서라도 인용해주고 싶을 정도로 홍보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요즘 같이 코로나로 영화판이 힘든 시국에는 더하다.


그러니까 영화의 유튜브 사용에 대한 주된 문제는 이것이다.

원론적으로는 조금만 갖다 써도 저작권법 위반의 소지가 있지만, 새로 형성된 유튜브 생태계와 홍보 효과를 고려했을 때에는, 영화 영상의 일부 편집해서 콘텐츠로 쓰는 것을 눈감아 줄 필요가 있다. 게다가 이제는 그런 영상이 너무 많아져서 손을 쓰기 어려운 상태이기도 하고.  

그렇다면 과연 어디까지 이것을 인용해 주어야 하지? 어디에서부터 불법의 선을 그어야 할까? 이것이 아마 요즘 영화 유튜브 채널을 바라보는 영화사들의 주된 고민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조금 다른 지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합법/불법을 떠나 그 작품에 대한 예의의 측면을 말이다.

물론 다른 영상을 가져와 재미있게 편집하는 행위의 가치는 따로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지금은 가히 편집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영화의 정체성을 헤칠 정도로 편집을 하는 것은 좀 다른 문제다. 이것을 저작권법의 용어로 치환하지 않아도, 사람에게 인격이 있듯 영화에게도 지키고 싶은 품격이 있는 법이다.

그중에서도 내가 분명히 선을 넘었다고 보는 지점은 이것이다. 영화를 야동으로 소비하는 유튜브 채널들. 조회수를 늘리기 위해 영화의 가장 자극적인 장면을 따와서 썸네일에 넣고, 그 썸네일에는 영화에 등장하지도 않는 천박한 말들을 마치 영화의 대사인 양 쓰고, 제목에는 "~~한 여자가 ~~를 만날 때, ~~를 당할 때" 같이 과장되고 자극적인 말들을 붉은 글씨로 커다랗게 쓰는 것 말이다. 치 유행처럼 무수한 채널들이 영화가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그것을 비틀어 야동으로 팔아대 있다.


물론 야동에 가까운 영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무수한 영화들이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여러 사람의 희생을 감수하고 성에 대한 묘사를 한다. 저런 콘텐츠들은 그런 시도와 희생을 욕되게 하는 가장 나쁜 사례이다. 사실 예전에도 배우의 연기를 야동으로 소비하는 천박한 농담, 사진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유튜브가 생기며 이런 경향이 더욱 외설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만약 내가 조회수 올리기용 영상으로 함부로 다뤄지는 영화의 감독이라면 이런 상황에 좌절감을 느꼈을 것이다.


나는 스낵 컬처의 힘이 생각 이상으로 세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것들은 무의식 중에, 우리들의 사고 회로 형성에 영향을 준다. 타인의 작품을 이리저리 비틀어 야동으로 소비하는 영상들. 그 영상의 편집 방식이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그런 시선으로 영화와 세상을 바라보는 이들이 늘어나는 사회는 괜찮은가. 다른 무엇보다도 이것은 영화에 출연하고 그것을 만들어 낸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영화가 이런 방식으로 소비되는 환경에서 누가 나서서 영화를 위한 희생을 하려고 들까. 더 안 좋은 일들이 벌어지기 전에 자정작용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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