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D저널에 기고한 글입니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이 영화는 모녀관계를 그렇게 부른다. 엄마와 딸이 아니라,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들이라고. 무슨 뜻일까. 그 궁금증에 화답하듯 첫 장면이 등장한다. 딸 이정(임지호)이 화장실에서 속옷들을 빨고 있다. 엄마 수경(양말복)은 그중 하나를 무심히 집어 입고 외출에 나선다.
이 단순하고 무뚝뚝한 장면은 하나의 선언이다. 모녀관계는 이런 것이라는 선언. 아니 모든 모녀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이 영화가 다루는 모녀는 그렇다는 단언. 너무 가깝고 때때로 당혹스럽고, 지긋지긋하다. 가장 내밀한 영역까지 쑥 밀고 들어오는데, 그게 가족애인지 무례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과연 당신은 구분할 수 있을까? 침범과 친밀함을. 무심과 무정함을. 적어도 이 영화 안에서는 힘들어 보인다. 우리가 ‘모녀’라는 단어와 함께 감히 떠올리지 못했던 감정들을 불러내고 뒤섞으며 영화는 시작된다.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나온다. 이정이 첫 생리를 했던 날에 대해 말하는 에피소드. 처음으로 제 몸에서 나온 피를 보고 놀라 패닉이 된 이정은 엄마를 부른다. 엄마는 다가와 뒤처리를 해준다. 감격한 그녀를 뒤에 두고 엄마 수경은 손에 묻은 피를 보며 이렇게 말했단다. 아 더러워.
이 순간 감정의 동요를 느꼈음을 고백한다. 그건 아마도 이 장면이 여자들에게 특별한 그날의 기억을 소환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기억도 더불어 떠올랐다. 이정에게는 미안하지만 소중한 추억이다.
그날 엄마는 다급히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고깃집을 예약하라고 했다. 저녁에 만난 아빠는 어색하게 웃으며 꽃다발을 내밀었다. 경상도 특유의 무뚝뚝함과 쑥스러움을 내재한 아빠와 엄마는 그저 일상적인 얘기를 하며 익은 고기를 한 점 두 점 건져 먹었다. 우리 가족은 서로를 축하하는데 서투르니까. 그리고 아직 어렸던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앉아있었지만, 이 자리가 내가 여자가 되었음을 축하하는 자리라는 사실이 못내 부끄러웠다. 하지만 그 사이로 조심스레 피어난 행복감을 기억한다. 그 밤 고깃집의 노르스름한 조명과 뜨듯한 장판 한 구석에 놓여 있었던 꽃다발도. 소중히 다뤄지는 것들은 소중해진다.
그래서 그런가. 이정의 일화를 들으며 속이 울렁거렸다. 첫 생리를 하던 날 그녀는 여자이자 아이가 됐다. 엄마의 케어를 받을 때 마치 아이가 된 느낌이었다고 그녀는 고백한다. 하지만 그 순간 수경은 아무렇지 않게 딸의 마음을 햘퀸다. “더럽대.” 이정은 되뇌인다. 그녀는 보호받는 동시에 내쳐지며 양 극단의 감정을 동시에 느꼈을 것이다. 가장 내밀하고도 취약한 순간에. 그러니 모녀의 관계를 어찌 감히 하나의 단어로 정의할 수 있을까. 혼란스럽고 차가워 마땅하다. 영화는 이리저리 부서진 감정의 편린들을 하나하나 고이 쥔다. 그것이 맨 살에 닿는 순간의 아릿한 고통을 외면하지도 과장하지도 않으며.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는 모든 순간 탁월하다고 보기 어려운 영화다. 그러나 몇몇 구석이 마치 손을 대면 그대로 부서져 버릴 듯 여리고 섬세하다. 그것이 이 영화의 특별함이다. 마치 세상에 서툴지만, 감수성만큼은 누구와도 비할 수 없을 만큼 투명하고 풍성한 미성년의 내면을 마주하는 듯하다.
종일(양흥주)이 수경의 뺨을 다정하게 어루만지다가 돌아서는 순간 엿보이는 수경의 뒷모습. 그 형상은 달리 무얼 설명하지 않아도 그녀의 은밀한 실망감, 좌절, 분노를 알게 한다. 아니나 다를까, 그다음 순간 긴장감이 폭발한다. 다른 인상 깊은 장면도 있다. 이정은 회사 동료 소희(정보람)의 집에 누워 “나도 여기서 살까?”라고 묻는다. 함께 살자는 제안. 다음 순간 카메라가 침대 위 소희의 손가락을 클로즈업한다. 잠시의 침묵이 이어지다가, 소희의 손가락이 이불속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미세하지만 칼날 같이 쓰라린 거절의 순간.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는 때때로 약간의 거리를 두고 인물들을 멀찍이서 지켜보며 잠시 멍하니 있다. 그런 정적, 침묵, 떨리는 몸짓과 눈동자가 이 영화 특유의 섬세한 결을 조각한다.
그러나 그런 섬세함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배우들이다.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는 한 배우의 열연이 아니었으면 지금 같은 형태로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수경 역을 열연한 양말복 배우 얘기다. 등장하는 모든 장면에서 그녀가 뿜어내는 에너지는 어마어마하다. 특히 남자 친구의 딸과 똑같은 코트를 선물 받은 것을 깨닫고 난 뒤, 코트를 바닥에 집어던지고 오로지 슬립만을 입은 채로 거리를 뚜벅뚜벅 걸어갈 때, 이 순간이 잊히지 않는다. 양말복 배우는 이 시퀀스를 자신의 에너지로 완전히 압도한다.
나는 영화를 보며 혐오할 요소가 도처에 널린 ‘수경’의 캐릭터가 어째서 혐오스럽지 않게 느껴지는지 궁금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수경이 영화에서 드러난 것 외에, 드러나지 않은 자신만의 서사가 있음을 추측하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추측, 상상, 혹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양말복 배우의 아우라다. 코트를 집어던지고 잠시 종일의 딸을 쳐다볼 때, 수경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양말복의 연기는 이런 의문의 씨앗들을 스크린에 새긴다. 그러면서 영화를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 결과 여태 한국 영화사에서 보지 못했던 엄마의 캐릭터가 탄생했다. 그러니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의 성취는 양말복의 땀 위에서 이뤄졌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영화가 막바지에 다다를 무렵 또 하나의 면에 놀라게 된다. 그것은 이 영화의 가장 탁월한 성취이자 윤리라고 할 수 있다.
소위 여성 영화들이 끝을 맺는 방식에는 몇 가지가 있다. 여성들만의 흔한 공감대를 자극한 뒤 우정에 기대어 훈훈하게 끝을 낸다거나, 여성 주인공의 활약을 지나치게 올려치며 감동을 짜낸다거나, 비현실적으로 과도한 고난을 한 여성에게 몰아주어 동정과 숙연함을 강요한다거나. 하지만 그 무엇도 여성 영화답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현실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동시대 여성과 호흡하기보다는 ‘여성 영화’라는 타이틀을 획득하는데 더 관심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는 같지 않은 연민이나 공감을 구걸하지 않는다. 만약 하려고만 했다면 이 영화는 매우 손쉽게 여자들끼리의 화해와 애정을 그려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끝내 그런 순간들을 거절한다. 영화 연출에 있어 감독이 ‘어떤 연출을 하는지’는 눈에 보이지만 ‘어떤 연출을 하지 않는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하지 않은 선택을 두고 영화를 상찬 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좀 달라야 한다.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에는 흔한 결론을 위한 공간이 없다. 그리고 자신의 방식대로 마무리를 짓는 것이다. 거기에는 끝내 손쉽고 속 편한 위로의 순간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단호함이 시종 엿보인다. 그러므로 (흔하고 편한 결말을) ‘선택하지 않음’ 이야말로 이 영화의 미덕이다. 그런 집요함이 있는 작품만이 여성 영화라고 불릴 자격이 있다.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는 익숙한 듯 낯설다. 거기 나오는 이들도. 영화가 건네는 이야기도, 거기서 느껴지는 감성 모두 그렇다. 하지만 거기에는 겨울철 서리 낀 창문 같이 차갑고 투명한 진실이 있다. 나는 이 영화가 ‘여자의 이야기’를 수용하는 우리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하나의 지표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당신은 수경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자식에게 모진 상처를 입히고 수영장의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아이처럼 평온한 한 때를 즐기는 저 여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좋아하라는 말이 아니다. 이런 인간의 존재를 온전히 수용할 수 있느냐는 뜻이다. 이정은 어떤가. 의아할 정도로 자기 얘기를 하지 못하고 답답할 정도로 엇나간 애정을 구걸하는 저 여자를 받아들일 수 있나. 혹은 남자 친구의 이른 귀가가 회사 동료의 침묵이 거대한 절망으로 느껴지는 세계가 있음을 받아들일 수 있나.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여성 영화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알게 할 것이다. 아직 올해 개봉한 영화들을 모두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예감한다. 아니 확신한다. 올해 개봉한 작품 중에서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만큼 여자와 여자의 관계를 아프게, 섬세하게, 그리고 세련되게 그려낸 작품은 없다. 이 표현을 좋아하지 않지만 꺼내보려 한다. 오랜만에 우리를 찾아온 진짜 여성 영화라고.
출처 : PD저널
'같은 속옷을 입은 두 여자', 우리를 찾아온 진짜 여성영화 - PD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