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평론가 홍수정 Nov 22. 2022

지키고 싶은 것들을 지키며 살 수 있기를

<성적표의 김민영>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성적표의 김민영> 스틸컷


좋은 영화는 평자를 난감하게 만든다. 기존의 언어로 규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성적표의 김민영>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가 그리는 순간들은 분명 익숙한데, 그렇다고 뭐라 꼬집어 정의하기가 어렵다. 입 안에서 맴돌다 사라지는 말들.


사실 영화의 줄거리는 복잡하지 않다.

고등학생 시절 함께 삼행시를 짓고 놀았던 정희(김주아), 민영(윤아정), 수산자(손다현). 그러나 수능이 끝나자 셋이 가는 길은 조금씩 달라진다. 정희는 대학에 가지 않고 테니스 코트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민영은 지방 대학에 입학하고, 수산자는 유학을 간다. 세 친구들이 노는 방식, 하루를 보내는 방식은 조금씩 달라진다.


정희는 하고 싶은 것들을 계속한다.

알바하는 테니스 코트의 전단물을 만들어본다. 그곳에서 파는 팥빙수도 직접 만들어본다(엉망진창이다). 우엉차 음료에, 양파 모양 과자를 곁들여 먹는다. 교수님께 성적을 올려달라고 조르는 메일을 쓰느라 바쁜 민영 옆에서 떡볶이도 먹는다. 친구들과 제주도를 단 5분 동안 구경하는 상상도 한다. 그저 꾸준히 자기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는 정희의 모습은 무덤덤하기도, 씩씩하기도, 평온하기도 하다.


영화는 이게 전부다. 이런 것들로 채워지는 시간.

그런데 여기서부터 나의 고민이 시작됐다. 이 순간들을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무용한 시간, 순수한 놀이와 유희, 어린 시절의 추억. 여기에는 적합한 표현이 없다. 적어도 내 머릿속에는 없다. 그러나 그걸 무엇이라 부르는, 한 때 내게 있었고 최근에는 조금씩 잃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내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다.

어릴 적 거실에 있는 요구르트 하나를 가져와 궁뎅이 부분을 이빨로 물어뜯었다. 그리고 틈새로 새는 요구르트를 쭙쭙 빨아먹으며 거실에 누워 있었다. 벽지의 문양이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생각은 다른 생각으로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잠깐 잠이 들었다가, 다시 깨서 요구르트를 먹고는 했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엄마가 돌아왔다. 잠시 동안 소유한 그 나른하고 평온하며 흥미진진한 시간.


하지만 이제 나는 성과 없는 시간을 두려워하는 인간이 됐다. 민영의 상상을 듣고 정희가 던진 말을 속으로나마 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 "그런데 그게 뭐? 4차원이라는 말이 듣고 싶어?"

그 말에 대한 정희의 대답.  "내 현실도 있는 거잖아. 나한테는 그래도 소중한데 그렇게 말하니까..."


정희의 말대로 이 시간은 그녀에게 그저 현실이며, 소중한 그 무엇일 따름이다. 그 말들은 그녀의 일상에 환상을 덧씌우고 이쁘게 포장하려는 나의 어리석은 시도를 부드럽게 무마시킨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의 말을 붙이지 않기로 다짐한다.

성장 영화니, 관계의 서사니, 진부한 언어를 내뱉지 않을 것이고, 나의 언어로 <성적표의 김민영>을 정리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정희의 말대로 영화에 존재했던 그 순간들이 무척 소중하게 느껴졌다는 것만을 얘기하고 싶다.


그녀가 계속 그랬으면 좋겠다. 계속 우엉차에 양파링을 먹었으면 좋겠다. 함께 카드 게임을 하지 않고 성적표를 신경 쓰는 친구를 향해 서운하다고 얼굴을 붉히는 사람이면 좋겠다. 마치 어린아이가 찰흙으로 소꿉놀이를 하듯이, 햇반의 밥알을 조물조물 주물러 노란 경단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것들은 접시 위에 정성스레 올질 것이다.


어쩌면 이런 나의 바람도 이기적인 게 아닐까? 내가 미처 챙기지 못하는 순수를 누군가가 간직한 채 세상 어디에선가 살고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아닐까. 그녀가 마주할 차가운 현실에는 눈 감은 채로. 그렇다면 나의 응원은 가식적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고 되새긴다. 왜냐하면 나 역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니까. 한심한 것인지, 아둔한 것인지, 지나치게 순수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순간들을 간직하며 살아야겠다 다짐한다. 어쩌면 그걸 방해하는 가장 큰 적은 나 자신일지도 모르겠다. 스스로에게 그런 것들은 가치 없다 말하는. 하지만 뭐라 정의할 수 없으나 대단히 소중하다는 것만큼은 또렷이 느껴지는 그 순간들을 이제는 더 이상 잃고 싶지 않으니 새로운 염원을 저녁 하늘에 띄워 보내며 이만 영화와 작별해야겠다. 지키고 싶은 것들을 지키며 살 수 있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신작 추천]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