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D저널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 http://www.p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75002
[PD저널=홍수정 영화평론가] 극장가에 '스포츠 영화' 바람이 불고 있다. 선선하다. 신년 벽두에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스타트를 끊더니, 기세를 이어받아 한국 영화 두 편이 극장가를 차지했다. 이달 개봉한 <드림>과 <리바운드> 얘기다.
그런데 나란히 걸린 두 편의 작품 앞에서, 웃음과 감동을 적당히 노린 듯한 영화들 앞에서, 나는 오히려 우리 시대의 어떤 아픔을 감지한다.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이어지는 내용에는 <드림>, <리바운드> 그리고 <록키>(1977)에 대한 스포일링이 있다.
비록 <드림>은 축구, <리바운드>는 농구에 대한 영화지만 두 작품은 꽤 닮았다. 뼈대가 비슷하다. 일단 실력만 보면 어딘가 모자란 이들이 모여 팀을 이룬다. 언더독. 이곳에 새 코치가 오는데, 사회에서 별로 인정받지 못한 인물이다. 그는 사명감이 아니라 단순한 우연으로 여기 합류한다. 이들은 처음에는 엉망진창이다. 하지만 싸우고 화해하고 맞춰가는 과정을 통해 팀워크의 의미를 알아간다.
경기에 나서지만 상대와의 실력 차를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다. 실력이 아니라 진심, 뜨거움, 땀, 피, '내일이 없음'을 무기 삼아 싸운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반드시 다친다. 훼손된 신체. 이것은 선수들의 치열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비극성을 고취하고, 그들이 예상보다 좋은 싸움을 벌일 수 있는 이유를 관객에게 설득하기 위한 제물이다. 그러나 끝내 패배한다. 하지만 의미 있는 패배다. 패배보다 큰 성장을 이뤘으므로. 스포츠 영화의 전설, <록키>(1977)에서부터 반복되어 온 유구한 실패의 역사. 그들은 경기에서 패배하지만 자신의 인생에서 승리한다.
사실 여기까지는 별다를 게 없다. 스포츠 영화에서 흔히 반복되는 공식 같은 스토리라인. 그런데 두 한국 영화는 결론 부분에 이르러 무언가 특이한 점을 슬금슬금 내비친다.
<드림>의 결론을 다시 떠올려 보자. 진한 추억을 남긴 채 홈리스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평안한 일상을 보낸다. 유독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홍대(박서준)다. 그가 보다 큰 무대에서 뛰는 것을 마지막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그런데 이 마지막이 좀 수상하다. 일단 영화는 처음으로 화려한 카메라 워크를 선보이며 홍대의 몸놀림을 찍고, 조명은 눈이 부시며, 그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은 함께 나란히 앉아 홍대를 응원한다. 스포츠 선수의 '꿈'이라 할 만한 순간에서 영화는 끝난다. 그리고 영화 제목, '드림'이라는 글자가 스크린을 가득 메운다.
앞선 장면들과 결이 다른, 지나치게 화려한 이 시퀀스는 차라리 홍대가 꾸는 꿈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게 만든다. 사실 이런 의심은 앞에서부터 조금씩 피어났다. 홈리스들이 돌아간 일상에서 만면에 가득한 웃음을 짓고 있을 때, 과연 저 행복이 꿈이 아닌 현실인가를 조심스레 묻게 되는 것이다. 살아갈 터전이 없는 이들이 다시 마주해야 하는 거친 삶의 결을 지운 채 웃음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홍대가 그리는 미래를 너무 쉽고 완벽하게 현실로 끌어온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마지막은 차라리 판타지다.
<리바운드>의 마지막도 인상 깊다. 좋은 의미에서 한 말은 아니다. 영화는 마지막에 이르러 주인공들이 패배하는 순간 특이한 연출을 보인다. 이 순간을 사진과 자막으로 간략히 처리하는 것이다. 이런 연출이 드물지는 않지만, 이런 타이밍을 이렇게 처리하는 것은 특이하다. 이 순간이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해서, 혹은 차마 볼 수 없어서 그랬을 수 있다.
하지만 경기의 마지막을 축약하고 급히 마무리 짓는 이 결말이 나는 회피적으로 느껴진다. 고군분투한 선수들의 패배를 차마 마주하고 싶지 않아 외면하는 것만 같다. 그러나 이기든 지든 이것은 선수들의 가장 필사적이고도 결정적인 순간이다. 생동하는 일상을 담아낸 이전과 달리, 납작한 형태의 정보만 전달하는 결말 부분에는 현실감이 메말랐다.
비슷한 시기에 우리를 찾아온 두 편의 한국 스포츠 영화, <드림>과 <리바운드>의 가장 큰 공통점은 이것이다. 이들은 마지막에 이르러 아릿한 현실에서 눈길을 거두고 비현실적인 어딘가를 본다. 앙상한 환상 속으로 도주한 채 영화는 마무리된다.
스포츠 영화는 운동을 통해 인생에 대해 이야기한다. 보다 단촐해진 삶의 축소판 위에서, 인생의 본질은 선명하게 떠오른다. 삶에서의 불합리와 불평등이 제거된 경기장 위에서 인물들은 잠시나마 자유를 느낀다. 그들은 스포츠를 하고 있지만 사실은 인생의 축소판을 거듭 경험하며 성장한다. 그리고 보다 단단해진 심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스포츠 영화의 진정한 결말이다. 그래서 스포츠 영화의 주인공은 경기에서 져도 괜찮다. 인생에서 이겼으므로.
그런데 진짜 승리를 맛보기 위해서는, 그것에 이르는 과정 전부를 있는 그대로 껴안을 줄 알아야 한다. 여기서의 과정은 아픈 패배와, 경기가 끝나고 난 뒤의 별 볼 일 없는 현실까지 그 전부를 말하는 것이다. 이 과정이 없다면 스포츠 영화의 승리는 성장이 아니라 같잖은 자기 위로일 따름이다.
<드림>과 <리바운드>는 선수들이 만나 팀을 이루고 좌충우돌하며 몸을 던져 멋있게 지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러 현실에서 고개를 돌린다. 이들은 현실 안에서 처참하게 깨지지도, 그것을 담대하게 껴안지도 않는다. 하나는 수상한 환상으로, 하나는 너무 메말라서 잡을 수 없는 저편으로 우리를 데려가고 끝을 맺는다. 이것은 외면이자 도피다.
나는 이런 힘없는 결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현실에 실망하든, 새로운 희망을 찾든 어쨌거나 그것을 직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얼렁뚱땅 끝내는 것은 영화 안을 살아가는 인물들과 그들을 지켜보는 우리에 대한 실례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나의 평가보다는 이런 영화들의 등장 자체에 보다 집중하고 싶다. 그것의 의미를 좀 더 곱씹고 싶어진다.
단 두 편이라 조심스럽지만, 가설 하나를 말해보겠다. 이 영화들이 결말에서 보여주는 태도는 사실 '지금, 우리들'에 대한 징후가 아닐까. 이 영화들은 그저 그런 현실, 사실은 별 볼 일 없는 결말을 도저히 견뎌낼 힘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불안한 환상에 의지한 채 끝을 맺는다.
상업 영화로 기획된 영화들에는 관객의 바람이 투영되고는 한다. 그래서 영화에서 반복되는 태도는 우리 시대의 징후로도 읽을 수 있다. 치열한 싸움이 끝나도 실패가 기다리고 있고 현실은 바뀐 것이 없다. 지금을 사는 우리는 그런 결말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인가. 무의식 중에 그것을 밀어내고 있지는 않나. <드림>과 <리바운드>에는 우리의 희망과 욕망이 얼핏 스쳐 지나간다. 그래서 이 영화들의 결말은 실망스럽기보다 차라리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