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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메 칸타빌레를 좋아하세요?

그 자체로 훌륭한 음악 수업이었던 드라마

by 유예거

학창 시절, 제게 음악 시간은 조금 고통스러웠어요.


중학교 때는 단소를 못 불어서 수업이 끝난 뒤에 남아서 강제로 연습을 해야 했어요. 단소로 손바닥도 많이 맞았죠. 그렇게 연습했지만 결국 단소 소리를 못 내서, 실기 평가 날에는 단소를 들고나갔다가 쇳소리만 조금 내고 그대로 들어오고 그랬습니다.


안산인터넷뉴스.jpg 교실에서 다 같이 단소를 부는 친근한 장면 @ 안산인터넷뉴스


어릴 때 피아노 학원을 다니긴 했지만, 학원 자체에 적응을 못해서 일찍 그만뒀어요. 덕분에 또래 친구들 대부분이 할 줄 아는 기본적인 피아노 실력도 없었죠.


그래서 음악 시간만 되면, 피아노 앞에 앉아 멋진 연주를 들려주는 친구들이 신기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어요. 유려한 실력으로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친구들. 제게 음악 시간은 그런 시간이었어요. 다른 친구가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를 듣고, 다른 친구가 연주하는 플루트, 바이올린 소리를 듣고. 또 부러워하고...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도 크게 다르진 않았어요. 인문계 고등학교의 특성상, 예체능 시간은 최대한 줄이고 그놈의 '국영수'만 강조하는 커리큘럼으로 짜여있었거든요. 일주일에 딱 한 두 번 있는 음악 시간에는 왜 배우는지 이유조차 알 수 없는 음악 이론을 배웠습니다.


남고여서 그런지 실기도 간단했어요. 어떤 악기든지 다룰 수 있는 악기가 있는 친구들은, 맘에 드는 곡을 연주하기. 물론 저처럼 다룰 수 있는 악기가 없는 친구들은 노래를 불러야만 했습니다. 음악 교과서에 나온 특정 가곡을 외워서 부르기! 참 간단하고 효율적이긴 하죠.


문제는 남는 게 없다는 점이었어요. 악기를 체계적으로 가르쳐준 것도 아니고, 작곡가들에 대해 심도 있게 공부한 것도 아니고, 그저 시험을 위한 반짝 암기에 불과했으니까요.




근데 그 후로 재밌는 일이 일어났어요. 음악 선생님이 실기를 채점하고 나서 여유 시간에 드라마를 틀어주시기 시작했습니다.


체육이나 미술 같은 다른 예체능 수업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자습해!" 라고 한 마디만 딱 하시고, 테니스 채 들고 오셔서 스윙 연습을 하셨겠지만(자매품 - 골프채 스윙 연습), 음악 선생님은 우리를 꼭 음악실로 불러 모으곤 프로젝터로 드라마를 틀어주셨어요.


노다메는 사랑 클래식 모든 것.jpg 치아키와 노다메 @ 노다메 칸타빌레 극장판


그 드라마가 바로 <노다메 칸타빌레> 였습니다. 학생들이 궁금해서 물었죠.


"이게 뭐예요? 무슨 드라마예요?"

"일본에서 만들어진 클래식 드라마란다."

"에엑? (선생님 오타쿠인가 봐..!!) "


처음엔 대충 이런 분위기였습니다만, 선생님은 말을 아끼시고 그저 묵묵히 영상을 틀어주셨어요.

그래도 뭐 지루한 수업이나 자습보다는 드라마가 재밌죠. 고등학생들은 공부 빼면 다 재밌어하니까요.


그렇게 음악 시간마다, 1화를 보고.. 2화를 보고.. 어느새 학생들 모두가 음악 시간을 제일 기다리게 됐어요. 늘 뒷자리에 엎드려서 잠만 자던 일명 노는 친구들까지 나중엔 눈을 똘망똘망 뜨고 드라마를 보더라구요.


즐거운 음악시간.jpg 말 그대로, 정말 '즐거웠던' 음악시간


그 당시(2007~2008년)에는 스마트폰도 없고 유튜브도 초창기였기에 아는 학생들이 없었어요. 아무리 궁금해도 '다음 화'를 미리 볼 수가 없으니, 다들 음악 시간 내내 재밌게 보다가 종이 치면 아쉬워하며 교실로 돌아가곤 했어요.


<노다메 칸타빌레>는 저엉말 재밌었어요. 고등학생들이 특히 좋아할 만했죠.


클래식, 사랑, 대학교에 대한 환상


이런 것들이 다 들어가 있었던 드라마였거든요. 코믹함이 가득한 드라마였지만, 캐릭터들이 악기를 연주할 때만큼은 진지했어요. 클래식의 진중함을 훌륭하게 담아낸 거죠.


또 노다메는 시종일관 치아키 선배에게 과하게(?) 들이대는 모습을 보이며 웃음을 선사하지만, 결국엔 굉장히 감동적으로 사랑을 이뤄요. 드라마의 배경인 모모카 음대에서 일어나는 다이나믹한 일상은, 마치 <논스톱>을 보는 듯 했구요


코믹 눈까뒤짚기.jpg
포옹2.png

(왼쪽)처럼 눈을 뒤집으면서 장난치다가 어느새 (오른쪽)처럼 달달한 상황을 연출..!! 완급조절이 기가 막혔던 드라마라고 생각합니다.


<노다메 칸타빌레>는 제 인생에 꽤 큰 영향을 미쳤어요. 악기 하고는 인연도 없었고, 클래식에 대해선 정말 '일도 모르던' 고등학생이 클래식에 푹 빠지게 됐어요.


드라마에서 나왔던 클래식 음악을 전부 찾아서 들어보고, 작곡가들의 이름을 하나둘씩 외우게 됐어요. 좋아하는 작곡가(예를 들면 쇼팽이나 라흐마니노프)의 다른 곡들도 찾아서 들어볼 정도로요.


그 당시에 쓰던 아이리버 목걸이형 엠피쓰리엔 <노다메 칸타빌레> OST 모음집을 꾹꾹 집어넣고 다녔어요. 너무 좋아서 길거리에서도 듣고, 공부하면서도 들었습니다.


집에서는 오케스트라 연주 영상을 틀어놓고 가만히 쳐다보고 있기도 했어요. 그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살짝 부끄럽지만 연필 들고 치아키 센빠이마냥 지휘를 흉내내기도 했어요. 말 그대로 정말 푹 빠진 거죠.


초중고 시절 내내 배웠던 음악 수업이 아니라


한 편의 '드라마'가 제게 평생의 취미를 만들어준 거예요.


덕분에 대학에 진학해서도 꾸준히 클래식을 즐겼어요. 연주회 프로그램에 좋아하는 곡이 있으면 혼자서라도 들으러 가곤 했어요. (예를 들면 서혜경 피아니스트의 라흐마니노프 피협..)


조금 늦었지만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서, 성인 피아노 학원에 다니기도 했어요. 어릴 때 제대로 배우질 않아서 손가락이 제대로 움직이질 않더라구요. 악보 보는 법도 다시 배웠어요. 집에서 연습하려고 알바비를 모아 전자피아노를 제 방에 들여놓기도 했습니다.


제가 얘기하고 싶은 건 이거예요.


고리타분하고 뻔한 음악 수업보다는 <노다메 칸타빌레> 처럼 클래식을 제대로 다룬 웰메이드 드라마를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게 그들의 가치관 형성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

드라마 자체로 훌륭한 음악 수업이 될 수 있다는 것.


우스갯소리지만, 전 솔직히 중학교나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노다메 칸타빌레 감상> 이렇게 공식적으로 넣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학생들이 클래식 장르에 대한 호감을 갖고 사회로 나올 수 있다면, 우리나라 클래식 음악계도 더욱 성장하지 않을까요.


자라나는 학생들이 더 좋은 '음악 수업'을 받기를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노다메는 사랑 에필.gif 노다메&치아키 커플을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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