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일리언 커버넌트와 같은 결말을 맞이할지도.
표백된 빛을 내리쬐는 사무실 형광등 아래. 블루라이트를 내뿜는 모니터 앞에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있는 나.
이미 동공은 풀린 상태이지만 엑셀을 요리조리 돌려보고 있어.
나도 알아. 나 엑셀 잘 못해. VLOOKUP 함수나 피벗도 회사에 들어와서야 더듬더듬 배우기 시작했거든.
엑셀 못해서 야근하는 건 신입사원의 필수 관문일지도 몰라.
참 답답해. 내가 상상하는 대로 데이터가 결괏값만 쫙-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열심히 엑셀의 네모 칸 들을 조물 거리지.
에일리언 커버넌트 봤어?
내가 정말 좋아하는 마이클 패스벤더가 '인공지능'으로 나오는 영화야.
참 웃긴 게.. 영화를 보면서 월터 혹은 데이비드가 우리 팀으로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했어.
저런 인공지능 동료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말하는 대로 데이터를 턱턱 뽑아내고. 회사의 모든 상황이 오차 없이(심지어 계속 업데이트되며) 머릿속에 들어있는 거잖아.
물론 월터가 들어오면 말단 사원인 나는 바로 잘릴 거야. 왜?
월터는 우선 음식을 먹지 않아. 커피도 마실 필요가 없지. 쉴 필요도 없어. 야근 많이 시켜도 불만을 갖지 않아. 야근 수당도 물론 안 줘도 돼. 월터는 퇴근도 안 해. 회사가 집이거든!
심지어.. 월터는 잠 도 안 자. 밤을 새우며 업무를 하고도 다음 날 아침에 멋진 얼굴로(마이클 패스벤더의 얼굴) 팀 멤버들에게 인사를 건네겠지.
이 정도 되면 단순히 말단 사원만 잘리는 게 아니겠지? 회사의 팀마다 월터를 한 명씩(한 대라고 하기엔 너무 사람 같으니 명이라고 표현할게) 배치시키면, 회사 직원의 절반을 해고시켜도 될 거야. 사무직은 물론이고, 생산직의 경우엔 더 심하겠지.
당연한 소리겠지만. 고위급 임원들은 잘리지 않을 거야. 인간만이 가질 수 있고 할 수 있는 직관, 상상력, 감정 등을 이유로 대면서 회사에 남아있으려고 하겠지. 회사 직원의 절반을 해고해서 남는 인건비만큼, 임원들의 연봉은 몇 배나 오를 거야.
에일리언 커버넌트 봤다고 했지? 데이비드가 나중에 인간들에게 무슨 짓을 하는지 봤을 거야. 인공지능은 비효율적인 것들(사람이든 시설이든), 또는 미래에 위협이 되는 존재들을 절대 가만히 두지 않아. 무능력한 임원들 집에 페이스 허거를 숨겨 놓든 납치(?)를 하든 그 방법은 무궁무진하지.
엑셀도 잘 못 다루는 신입사원이 참 별 생각을 다 하지? 터무니없는 상상이긴 해.
월터 같은 인공지능이 세상에 등장하려면 아직 10년은 더 걸릴 거야.
근데 월터가 탄생하는 순간은 필연적으로 올 거야.
그 증거로 오늘은 알파고가 커제를 울렸거든.
이쯤에서 우리는 생각해야 해.
알파고의 계산능력을 가진 월터가 직장 '동료'가 되면 좋겠지만, 우주 탐사를 떠나는 미션이 아니고 평범한 회사라면 우리는 100% 확률로 잘릴 거야.
그러면 어떻게 해야 월터와 동료로서 일할 수 있을까?
감히 동료로서 일할 수나 있을까?
데이비드는 만들어지자마자 자신의 창조자인 웨이랜드 회장한테 "당신은 죽을 테지만 나는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인데..
혹시 몰라, 우리 세대에선 저런 인공지능이 탄생하지 않을지도 모르지. 휴. 역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어야 했나..
우선 당장 다음 주 업무를 위해 잔업을 하러 가야겠다. 나중에 또 글 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