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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예거 Aug 28. 2017

애나벨은 애들 장난이었구나

매니아를 위한 공포 영화 <제인 도>

나는 공포 영화를 정말 좋아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 그렇게 되는 것 같다. SF나 로맨스 장르의 달콤한 느낌도 좋아하지만, 그래도 공포 영화만의 짜릿한 맛이 좋다.


얼마 전엔 심야로 <애나벨 2>를 봤다. 개인적으로 애나벨 1편이 정말 실망스러웠다. 제임스 완의 공포 영화들은 스토리가 다 비슷비슷해서 '공포 영화 공장장'으로 느껴질 지경이다.


초반엔 그럴싸하게 분위기를 잡고 시작한다. 그러나 그놈의 악마가 본체를 들어내면..

'서프라이즈' 스러운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악마가 갑자기 "니 영혼을 내놔!!"  소리 지르며 쳐다보는 순간, "아 제임스 완 한테 또 당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


제발 그 촌스러운 악마 분장 좀 그만..


게다가 제임스 완의 악마는 '물리적인 형태'가 존재하기 때문에 실제로 때릴 수 있다.

어린 소녀가 쫓기다가 무슨 미니 엘리베이터 같은 곳에 갇히는 장면이 있는데, 악마가 손을 뻗자 소녀가 손을 후려친다. 악마는 아파하며 손을 빼는(?) 장면이 있다. (게다가 제임스 완의 인시디어스 시리즈 중에는 마계로 붙잡혀간 딸을 구출하기 위해 아빠가 악마 죽빵을 때리는 둥 거의 격투기를 하는 장면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장면에서 거짓말 안 하고 영화 보던 관객들이 실소를 하더라.. 나도 웃었고..


오컬트 적인, 쉬운 말로 귀신이나 악마가 등장하는 공포 영화에서, 그들이 형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떠한 종류의 '공격'이 가능해지는 순간... 관객들의 집중력은 떨어지기 마련이고, 공포 영화는 C급으로 전락한다.


따라서, 초자연적인 대상이 나오는 공포 영화에선, 공포의 존재를 숨기고 실체화하지 않는 게 좋다. 초반부터 끝까지 미스터리함을 붙잡고 끌고 가야 한다.


솔직히 <애나벨 2>는 마케팅의 승리라고 생각한다. 영화 개봉하기 전부터 CGV에서 마케팅을 좀 과도하게 한다고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특히 팝콘이 날아다닌다거나, 해병대 출신인데 엄마랑 잔다거나.. 이런 댓글들이 관객들에게 잘 먹혔던 것 같다. 페이스북에서 20-30대에게 홍보도 잘 됐고 덕분에 흥행에도 성공했다. (CGV 마케팅팀 보너스 두둑이 줘도 될 만큼)


심지어 애나벨 인형까지 제작해서 데리고 다녔다지..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영화 <제인 도>에 대해 얘기해보자.


<제인 도>의 원제는 <The Autopsy of Jane Doe>, 신원 미상의 여성을 부검한다는 뜻이다.


<제인 도>는 얼마 전에 개봉했다. 간략하게 스토리를 얘기하자면, 의문의 살인사건 현장의 지하에서 한 여성의 시체가 발견된다. 근데 몸이 아주 깨끗하고 상처 하나 없다. 부패도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 묘하게 아름다운 시체인 셈. 경찰이 여자의 신원을 밝히려 하지만, 지문 감식도 되지 않는다. 누군지 전혀 알 수 없는 Jane Doe(신원 미상의 여성)인 것이다.


'부검소'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추리극이기도 하다.


여성의 시체는 아빠와 아들이 3대째 운영하고 있는 '부검소'로 옮겨진다. 이제 여자가 '죽은 원인'을 밝혀야 한다. 근데 좀 이상하다. 시체의 안으로, 안으로 들어갈수록 이해하기 어렵다. 여자의 시체는 무슨 비밀을 가지고 있는 걸까?




<애나벨 2>는 '오락용 공포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재미있는 롤러코스터랄까? 영화를 보고 나서 "아~ 재밌게 잘 봤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의 공포였다.


하지만 <제인 도>는 다르다. 오락용이라고 볼 수가 없다. 심오하면서도 실험적이다. 팝콘 쏟을 일 없다. 대신 영화관에서 나가고 싶게 만든다. 롤러코스터에 비유한다면, 눈에 안대를 하고 롤러코스터를 타는 느낌이다. 긴장감과 미스터리의 멱살을 잡고 계속 끌고 오는데, 언제 추락할지 감이 안 잡힌다.



공포의 묘사도 훌륭하다. 카메라는 부검실 정중앙에 누워있는 여자를 끊임없이 보여준다. 관객들에게 "저 여자 사실 시체 아닌 거 같아."하는 공포심을 계속 주입시킨다.


여자의 몸에 칼을 댈수록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한다. 라디오 채널이 바뀌고 소름 끼치는 소리가 나온다거나, 형광등이 깜빡이는 둥.. 모두 클리셰적인 표현이지만, 악마 손등을 후려치는 <애나벨 2>보단 무서웠다.


시체 발에 매달아둔 종. 대놓고 던진 떡밥이지만, 막상 종소리가 들릴 땐...


<제인 도>의 배급사가 CGV였다면 어땠을까? <애나벨 2>처럼 마케팅할 수 있었을지 궁금하다. 일단 <제인 도>는 잔인하다. 소재가 '부검'인 만큼 오죽 잔인하겠는가. 배를 가르고 장기를 적출하는 장면이 적나라하게 나온다. 너무 잔인하면서도 충격적으로 무섭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홍보하기엔 꺼림칙할 정도다.


그러나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공포 영화의 매니아라면 적극 추천한다. 애나벨은 애들 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을 몸소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연인이나 가족과는 절대 같이 가면 안 된다. 정신적 충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공포 영화를 잘 보는 친구들끼리 똘똘 뭉쳐가길 권한다. (예고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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