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행복을 좌우하는 욕망, 그것을 대하는 적극적 자세의 중요성
"태초에 세상은 캄캄한 혼돈 덩어리였다.
어느 날 하늘과 땅이 갈라지고 만물이 생겼다.
땅은 항상 두 발 아래 두었으나 하늘에는 도무지 닿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하늘을 욕망하기 시작했다.
하늘은 상서로운 기운이 가득한 천상계로, 지하는 어두운 지옥으로 묘사됐다. 피라미드를 쌓아올리고, 향을 피워 하늘로 올려 보냈다. 밑으로 가고자 하는 이는 없고 저 위, 더 높은 곳을 끊임없이 추구했다. 하늘은 인간이 영원히 욕망하는 대상이다."
행동의 원동력: 결핍된 것에 대한 추구
욕구 5단계로 유명한 매슬로의 동기이론은 인간행동의 근거를 욕구에서 찾습니다. 각자의 필요와 욕구에 바탕을 둔 동기에 의해 인간행동이 유발된다고 설명합니다.
인간은 자신에게 결핍돼 있다고 생각하는 대상, 즉 있어야 할 것이 있지 않다고 생각할 때 욕구를 느낍니다. 그리고 그 결핍을 극복하기 위해 행동을 전개합니다.
갓 태어난 아기는 생존에 필요한 요소가 결핍될 때-배고프거나 몸이 청결하지 않을 때-그것을 얻기 위해 울음을 터뜨립니다. 결핍의 대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됩니다. 우리는 생각하는 적정 수준보다 대우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나의 가치관이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불쾌함을 느낍니다. 그 추상적인 결핍의 대상은 인간에게 지배욕구, 우월욕구, 인정욕구를 불러일으킵니다. 욕구를 충족하려는 행동은 우리 스스로가 대상과의 관계를 맺게 하고, 그것은 나아가 타인과의 관계로 발전합니다. 그 관계 속에서 우리는 갈등, 좌절, 성취감을 겪으며 결핍의 대상을 위해 발버둥 칩니다. 한 사람의 삶은 그렇게 구성됩니다.
각자의 하늘
<스카이캐슬>은 욕구로 점철됐습니다. 인물들은 각자의 결핍을 충족하기 위해 자기의 삶에 타인을 마구잡이로 끌어넣습니다. 그 결과 서로의 삶이 거미줄같이 엮이고, 그 역동성이 드라마를 이끌어 갑니다.
#강준상: 1등은 나의 것
강준상이란 인물은 '최고'에 익숙한 사람입니다. 학력고사 전국1등, 서울의대 입학, 주남대 병원 정형외과 수술 1위. 게다가 병원 이사장 주치의였던 아버지, 그야말로 주남대 병원 진골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지방의대 출신 6두품 황치영이 등장합니다. 척추센터 센터장을 뺏기고, 섬세한 의술을 펼친다며 자신의 명성을 위협합니다. 강준상에게 있어야 할 것, '최고'가 결핍되고 있습니다.
그는 욕구하기 시작합니다. 병원에서 그를 밀어내려고 애쓰는 한편 딸 예서에게로 눈을 돌립니다. 굴러온 돌 황치영과는 다르게 자신은 핏줄부터 다른 로열임을 자식을 통해 증명하고 싶어합니다. 드라마 초반 아내 한서진의 유별난 교육관에 반기를 들던 그를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핏줄이라면 외적인 도움 없이도 알아서 최고가 돼야 하며,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위협당하는 자신을 보며 확신이 흔들린 그는 서진의 예서 서울의대 보내기 프로젝트의 적극 지지자가 됐습니다. 욕구가 그의 행동을 바꾼 것입니다.
#한서진:나는 한서진이다
그녀에게 결핍된 것은 한서진 그 자체입니다. 시드니 모기지 전문 뱅크 은행장인 아버지, 명문가 출신의 어머니, 시드니대학 교육학과 졸업, 중세 시대의 성 같은 집에서 완벽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 당연한 여자.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그는 곽미향입니다. 선지를 파는 술주정뱅이 아버지, 감추고 싶은 어머니,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곽미향은 자신에게 주어진 지위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어렵사리 준상과 결혼했지만 그녀의 욕구는 완벽하게 충족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괄시하는 시어머니와 남편, 언제 들통날 지 모르는 거짓말.
그녀의 아버지가 선지를 파는 사람이라는 설정이 그녀의 신분에 대한 결핍을 부각시킵니다. 갑오개혁 이후로 조선시대는 공식적으로 신분제가 철폐됐습니다. 하지만 계급에 대한 차별은 오히려 늘어났습니다. 특히, 백정은 재산이 많아도, 능력이 있어도 낙인효과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병원에서 진료를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호적부에 점을 찍어 그들의 자식은 교육을 받을 수조차 없었습니다. 최초의 외과 의사 박정양도 백정 출신이라는 이유로 조선에서 제대로 꿈을 펼칠 수 없었죠. <스카이캐슬>에서 한서진을 위기에 빠뜨리는 대사에 선지를 팔던 이라는 표현이 유독 많이 등장합니다. 한 단어로 서진을 철저히 찍어내립니다. 신분이라는 프레임은 그녀를 옥죄는 장애물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곽미향의 삶은 부당하며 자신은 충분히 한서진의 삶을 누릴 수 있는 능력과 자격이 있다고. 그 도구가 바로 예서입니다. 예서를 통해 유전자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것이 결핍을 충족할 수 있는 길입니다. 물론 그녀는 예서를 사랑합니다. 하지만 그녀가 보이는 서울의대에 대한 집착은 '딸을 사랑해서, 딸이 잘됐으면 좋겠어서'라고 표현하기에는 왜곡돼 있습니다. 예서는 그녀를 완벽한 한서진으로 만들어줄 유일한 방법입니다.
#이수임: 정의로운 세상
고아원을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수임. 그녀가 살고 있는 세상은 정의와 올바름으로 채워져야 한다고 믿습니니다. 수임은 사람이 차별받지 않는 사회, 아이들이 행복하게 성장하는 사회를 욕구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지닌 욕구가 정당하다는 것을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갈등이 발생합니다. <스카이캐슬> 학부모들에게 지나친 사교육에 대해 비판하고, 영재 가족에 대한 소설로써 그것을 중단시키려 합니다. 표면적으로 보기에 그녀가 지닌 욕구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정당합니다.
하지만 수임이라는 인물은 시청자들에게 사랑받지 못합니다. 이상적인 가치에 대한 욕구와 달리 그녀 자체는 매우 현실적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 괴리에서 그녀에 대한 불쾌함을 느낍니다. 한서진과 아이들의 교육문제로 맞설 때, 주민들과 소설에 대한 문제로 맞설 때 수임이 주장하는 것은 유토피아적 가치입니다. 마치 성인聖人의 책에서 볼 법한 도덕적 명제를 나열합니다. 하지만 그녀가 하는 행동은 우리와 다를 바 없습니다. 위기에 몰릴 때 서진의 정체를 일부러 자극적인 표현(선지를 파는)으로 폭로하고 자신이 무시당하는 데 대해 분해 합니다. 나중에 반성하긴 하지만 그 부분이 수임을 더욱 얄밉게 느끼게 하는 지점입니다.
수임이라는 인물에 대해 시청자가 느끼는 부정적 감정은 현실에서도 드러납니다. 정치인이나 공익제보자를 비난할 때 그들의 주장에 대한 객관적 요소에 대한 반박 대신, 인신공격, 과거의 일을 들추어 내 깎아내리려는 시도가 그것입니다. 우리는 누군가 도덕적 가치를 주장할 때 그 주장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그것을 주장한 자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수임은 드라마 속에서도, 밖에서도 환영받지 못합니다.
#김주영: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결핍
수수께끼에 둘러 쌓여 있는 인물. 추측은 난무하지만 그녀에 대해서는 섣불리 판단할 수 없습니다. 많은 것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중환자실에서 호흡기를 꽂고 있는 딸을 보고 "내 딸이 아니야"라고 말을 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어두운 방에 앉아 이상한 소리를 내며 수학공식을 쓰는 딸의 모습에서 주영 또한 자식 교육으로 문제를 겪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12회에서 새로운 단서가 나옵니다.
"남편 살해 용의자였어요."
그녀의 결핍은 단순하지 않아보입니다. 딸의 인생을 망쳤다는 죄책감이라기에는 그녀는 딸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주영의 결핍은 남편과 관련 있어 보입니다. 주영이 바라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남편에 대한 결핍이 그녀의 딸에 대한 행동-성적, 아름다움, 완벽함에 대한 요구-으로 이어지고, 그 행동은 지금과 같은 비극으로 이어졌을 것입니다. 주영은 영재 가족과 관련된 비밀을 감추기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의 행동을 자극하는 절대적 동기는 아닐 것입니다. 서진 혹은 수임이 주영의 미국에서의 생활, 남편이나 딸과 관련된 과거를 건들였을 때 비로소 인물들사이의 불꽃 튀는 대결이 펼쳐지리라 기대합니다.
우리의 삶을 구성할 욕망
"착하게 살면 바보가 된다."
"결국 바뀌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순진한 소리 하고 있다."
옳지 않지만 옳은 말입니다. <스카이캐슬> 속 인물들은 그래서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모두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드라마 속 영재 아빠가 수임에게 한 말처럼 결국 바뀌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스카이캐슬>은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없을 것입니다. 슬프게도 말입니다. 서진이 영재 가족의 비극을 보고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은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는 달라, 저 비극은 저 사람들이라서 그런거야." 사람들은 계속해서 원래 바라보던 하늘을 바라볼 것이고, 그 하늘에 닿고자 갖은 애를 쓸 것입니다.
욕구의 대상은 우리의 인생을 결정합니다. 우리가 욕구하는 것은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고, 주변인들과의 관계를 결정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 욕망은 나의 삶 뿐만 아니라 주변인의 삶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그리고 주변인의 욕망은 다시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거미줄처럼 얽혀 살아가는 사회에서 어느 한 곳의 진동은 빠르게 퍼져 나가 사회 전체의 진동을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중요합니다. 본능에만 맡겨 욕망에 휩쓸리지 않고, 욕망할 것을 결정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대하는 태도가. 천진한 소리지만, 그것이 우리의 행복을 좌우합니다.
<스카이캐슬> 속 인물들의 욕구는 수동적으로 형성됐습니다. 그것을 달성하려는 태도는 매우 적극적이지만 말입니다.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났는지, 어떤 성장 환경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욕구가 형성됐습니다. 아마 선천적인 요소에서 벗어나 우리 스스로가 욕구를 형성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입니다. 하지만 나의 행동의 근원에 욕구가 있고, 그 욕구는 어떤 결핍에서 발현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으면 확률을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힘들더라도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나만의 하늘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카이캐슬>을 자세히 봐야 합니다. 이 드라마가 주는 교훈을 찬찬히 음미해야 합니다. 안되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무언가 바뀌었으면 하는 간절함을 담은 드라마는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하늘을 자세히 바라보고, 지금이라도 깨달을 수 있는 기회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