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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전호 Apr 07. 2017

만추(Late Autumn)

탕웨이만 오롯이 빛났던

우선 한 가지 사실을 고백하면서 글을 시작하겠다.

필자는 탕웨이를 무척 좋아한다. 특히 탕웨이의 눈빛을 좋아한다. 

그녀는 눈빛에 많은 것을 담아내는 배우이다. 

물론 스크린에서 보이는 그녀의 눈빛이 그녀가 살아왔던 삶이라곤 생각하지 못하겠지만, 그녀의 눈빛은 매우 충실하게 작품의 캐릭터를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영화 "만추"에서 여주인공 애나를 관통하는 감성(그것은 깊은 슬픔이다)은 탕웨이의 깊은 눈에 담겨 그녀가 건네는 대사보다 더 충실하게 관객을 동화시킨다.

필자가 탕웨이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영화 "색, 계"였지만, 

더욱 견고하게 다질 수 있었던 영화는 바로 "만추"였다.


그래서, 

그리하여, 

그러므로, 

결국, <금요 시네마>의 첫 번째 소개 영화로 "만추"를 선택했다.



01. 영화의 색_모든 게 흐릿한 시애틀

영화 촬영 내내 정말로 날씨가 좋지 않았던지, 부러 이런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해 촬영 장소를 시애틀로 잡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영화에 담겨있는 모든 영상은 비와 안개의 도시 흐릿한 시애틀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각자의 호불호가 있겠지만 필자는 이런 무채색의 색감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비슷한 색감의 영화를 찾아보라면 눈 덮인 핀란드를 배경으로 촬영했던(영화의 처음과 마지막뿐이라 아쉽긴 했지만) "남과 여"가 있을 것이다. 

무채색의 색감 때문에 필자는 영화 "남과 여"도 무척 좋아한다. 이 영화의 리뷰는 다음 기회에 꼭!(왜냐면 필자는 이영화도 정말이지 무척 좋아하니까) 리뷰를 해보도록 하겠다.


본론으로 돌아가 필자의 감상과 추측을 더해 이 영화가 흐릿한 색감의 영상을 선택한 이유를 추측해 보자면,


1.
흐릿한 색감의 영상은 앞을 내다보기 힘들었던, 힘든 두 주인공 애나(탕웨이)와 훈(현빈)의 삶과 그들의 사랑을 상징하는 것 같다. 삶이란 것도, 사랑이란 것도 항상 행복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아프고 힘들다. 모든 것을 걸었지만 하나도 돌려받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더군다나 각자의 슬픔을 떠안고 있던 곳으로부터 튕겨져 나와버린 애나와 훈에겐 도무지 밝은 빛이 어울리지 않는다.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 마냥 어색한 것이다.
언제쯤 안개가 걷힐까?
그리고 언제쯤 애나와 훈도 밝은 세상 속에서 마음껏 사랑할 수 있을까?


2.
 철저하게 두 주인공이 이끌어나가는 인물 중심 영화인 "만추"의 흐릿한 배경은 관객으로 하여금 온전히 두 주인공인 애나와 훈에게 집중하게 한다. 사진의 아웃포커싱과 비슷할 것이다.
배경은 흐릿하고 그것으로 인물을 도드라지게 만들어 내는.
"만추"는 호흡이 빠르다거나 대사가 많이 나오는 영화가 아니다. 그 이유로 관객들이 다소 지루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감독은 훈과 애나의 대화 장면을 제외한 다른 컷들을 빠른 전환으로 편집함으로써 약간의 지루함을 상쇄시킨다. 결국 72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내의 사랑이야기라는 점. 그러므로 주인공만이 도 드러 져야 한다는 점에서 시애틀의 흐릿한 배경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인물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배우들의 우월한 외모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시애틀이라는 도시를 꼭 한 번 가보고 싶어 졌다.

미국이라는 나라에는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비와 안개의 도시, 그 흐릿함 속에 놓여 애나와 훈의 슬픈 발자취를 들춰보고 싶어 졌다.



02. 등장인물_우리는 모두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1. 슬프고도 슬픈 사람_애나

애나는 슬프다. 슬프단 말로 부족할 정도로 슬프다.

사랑했던 남자에게 배신을 당했고, 배신당했음에도 자신을 희생해서 그를 구했다. 다른 남자와 결혼은 했지만 남편은 의처증으로 그녀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영화에서는 정말로 애나가 남편을 살해했는지, 아니면 다툼 과정에서 일어난 사고였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을 보여주진 않지만, 남편으로부터 도망치려던 애나는 남편이 죽은 집으로 다시 돌아가 그녀가 사랑했던 그와의 흔적을 없앤다. 행여 이 문제로 인해 사랑하는 그가 곤란한 상황에 빠지진 않을까 염려한 것이다.

사랑한 그와의 흔적을 모조리 끌어모아 하나씩 잘게 찢어 입에 넣어버리는 애나. 

지킬 것이 있는 여자는 그만큼 처절하고 간절하고 강하다.

하지만 결국 사랑했던 남자를 지키고 싶었던 애나는 남편을 살해했다는 죄로 감옥에 가게 되고, 그녀가 사랑했던 그는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한다.

그래서 두 주인공은 서로 사랑하며 행복했습니다, 따위의 해피엔딩은 애나의 삶에 등장하지 않는다.

사랑이라는 것은 두 사람의 행위이고,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받은 것에 대한 반응이다. 그러므로 그것의 열매도, 상처도 두 사람에게 나뉘는 것이 맞겠지만 애나는 모든 상처를 끌어안고 혼자만 가라앉는다. 

애나의 시간은 그 순간 멈춰 버렸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잠시 감옥에서 특별 휴가를 나온 애나는 잠시나마 예전의 행복했던 자신의 모습을 다시 그려본다. 화려한 옷을 사고 커다란 귀걸이에 빨간 립스틱까지 발라본다.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흐르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희망을 품었을지도. 하지만 교도소로부터 걸려온 전화. 그리고 거울에 비친 지금의 자신과 은 어울리지 않는 모습까지. 결국 애나는 스스로의 행복의 가능성을 포기한다. 애나의 시간은 이미 멈춰서 굳어버린 옛날의 추억일 뿐이었다.


과연 애나의 시간은 다시 흐를 수 있을까? 

그녀는 다시 행복할 수 있을까?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2. 그는 과연 행복할까요...?_훈

영화에서 훈은 상당히 밝은 남자(애나에 비교되어 더더욱)로 등장한다. 쉽게 설명하면 사모님들에게 애인대행을 해주는 호스트로 그것 때문에 사모님의 남편에게 쫓기는 상황에서도 특유의 밝음을 잃지 않는다.

돈 한 푼 없이 버스에 올라타 애나에게 티켓값을 빌리는 넋살과, 


“나랑 만나서 즐겁지 않은 손님은 처음이니까, 할인해 줄게요. 오늘 하루.” 


라는 대사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랑(그것이 진짜 사랑은 아니겠지만)에 있어서도 자신 만만이다.

하지만 훈은 정말로 행복한 사람이었을까?

훈이 어떤 이유로 미국에 오게 되었는지는 설명되지 않지만 그는 결국 한국을 떠나온 미국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 이렇다 할 직업도 없고 애나를 만나기 전까진 '사랑'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훈에게 '사랑'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 결국 훈에게 안식처가 되어주진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훈은 사랑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은 아니었다.

돈을 빌린 이유도 있었겠지만 왠지 모를 슬픔을 안고 있는 애나에게 따듯하게 다가간다. 훈은 본능적으로 느꼈을지도 모른다. 밝아 보이는 자신이지만 그래도 감출 수 없는 내면의 깊은 곳의 슬픔을 애나도 가지고 있다고. 그래서 그녀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라고. 

애나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건네고, 함께 걸어주고, 이야기하고, 공감해주며 훈은 점점 애나에게 빠져든다.

또 자신 때문에 남편으로부터 도망쳐온, 자신의 사랑을 원하는 위태로운 한 여자에게도 매몰차지 않다. 걱정하고 위로해 준다. 

이런 장면 속에서 훈의 인간적인 모습들이 나타난다. 돈만을 노리가 여자와 데이트를 하는 그런 가벼운 남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쉽게 사랑을 하지만 깊은 사랑을 하지 못했던 훈. 


그녀는 애나를 깊이 사랑할 수 있을까...?



03. 영화 같은 사랑_영화 같은 장면


1.

이 영화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건 애나의 감성이다. 

애나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그녀의 감성이기도 하고, 또 훈을 향한 감성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애나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함께 도망치자 했던 사랑했던 그가 나타나지 않았을 때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유산에 대해 형제들이 다툴 때도, 그리고 사랑했던 그가 다른 여자와 결혼해 다시 나타났을 때조차 그녀는 입을 열지 않는다.

그런 애나는 훈을 만나면서 조금씩 변해간다.

훈을 대하는 애나의 태도는 매우 수동적이었다.

시애틀을 훈보다 더 잘 알고 있지만 그가 이끄는 대로 움직이다. 훈에게 마음을 열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 애나에게 훈은 적극적인 호기심을 보인다. 그녀와 데이트를 하고 번뜩이는 재치로 이름을 알아낸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을,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을 애나에게 알려준다.


2.

놀이공원에서 데이트를 하던 훈과 애나는 한 남자와 여자를 관찰하게 된다. 그들의 이야기가 들리진 않지만 그들에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입혀 대화를 나눈다. 그제야 애나는 입을 열어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훈에게 자신 안에 묻어두고 감춰두었던 깊은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마음이 담기지 않은 대화는 피상적이고 얕다. 하지만 마음을 열어 나눈 대화는 깊으며 두껍다.

훈과 애나는 점점 가까워진다.

훈에게 마음을 연 애나는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한다. 처음에 영어로 시작한 애나의 독백은 중국어로 변해가고 훈은 이해해지 못한다. 하지만 "하오(좋다)"와 "화이(나쁘다)"로 눈치껏 대꾸하며 대화를 이어나간다. 물론 훈은 애나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대답의 순서에는 큰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비록 말이 통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진심은 전달된다는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훈 앞에서야 털어놓는 애나. 그리고 비록 애나가 건넨 이야기를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느낄 수 있었던 훈. 

그들은 서로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간다.


3.

연락도 없이 애나 어머니의 장례식에 찾아온 훈.

그리고 애나가 사랑했고, 애나를 배신했던 남자와 훈은 본능적인 적개심을 느끼고 다투게 된다.

이 장면이 중요한 이유는 모든 것을 숨기고 억누르기만 했던 애나의 감정이 폭발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저지르지 않았던 많은 것들에 혼자만 책임을 졌던 애나. 사랑했지만 믿었던 사랑에 배신을 당한 애나는 훈의 말도 안 되는 변명이었지만 훈의 편을 들고 결국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에게 억눌렀던 감정을 쏟아 낸다.

애나의 지난 사랑이 애나의 깊은 마음속에서 드디어 정리되는 순간일 것이다. 

한껏 감정을 쏟아내고 눈물을 쏟아낸 애나는 이제 감옥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변해 있었다. 지난 사랑의 깊은 수렁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었고, 그 옆엔 훈이 있었다.



04. 그들은 사랑할 수 있을까?


쉽게 이루어지는 사랑도 없겠지만은 이들처럼 관객의 마음을 애달프게 하는 사랑도 없을 것이다.

시작부터 삐걱거리던 사랑이었다.

남편을 살해한 죄로 감옥에 7년을 머물다가 어머니의 죽음으로 3일간의 휴가를 얻었던 애나. 

그리고 호스트로 일하다가 손님의 남편에게 쫓기는 훈.

둘의 위태로운 만남이 흐릿한 시애틀을 배경으로 펼쳐지고, 안개가 걷히면서 둘의 사랑도 서서히 완성이 돼가는 듯도 싶다.

하지만 안개가 걷히고 결국 훈도 사라진다.

훈은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경찰에 쫓기게 되고(경찰에 연행되었는지 아니면 도망갔는지는 영화에서 나오지 않지만), 그 뒤로 애나와 훈은 만나지 못한다.


건조하게 팩트만 보자면 훈과 애나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그들의 사랑은 완성되었다.

지난 사랑에 묶여 새로운 사랑을 할 수 없었던 애나는 훈을 만나 다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찾게 되었고, 사랑을 일종의 비즈니스로 생각했던 훈도 애나를 통해서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되었으니.



05. BEST CUT


1.

첫 번째 장면은 데이트를 마치고 시애틀에서 헤어지던 날 밤 훈이 애나에게 곧 다시 돌아올 테니 30분만 기다려달라고 말을 한다. 하지만 애나는 기다리지 않을 거라고 말하니 훈이, 

"I know you won't be here."
(알아요. 당신이 여기 없을 거라는 거)

이라고 말하며 웃는다.

대사도 슬펐지만 대사 후에 훈이 웃는 장면이 더 슬펐다.


끝이 보이는 사랑. 하지만 멈출 수 없는 사랑. 

끝을 향해 달려갈수록 끝은 더욱더 가까워지는 사랑. 그 사랑 앞에 웃을 수 있다는 것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사랑했다는 것이다.


2.

두 번째 장면은 2년의 시간이 지난 후 감옥에서 출소한 애나가 훈을 기다리는 장면이다.

그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 아니 올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애나는 그녀의 시선의 반대편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에도 반응하며 혹시나 하는 마음을 관객에게 전한다.

하지만 결국 훈은 오지 않았고,

"Hi. it's been a long time"
(안녕. 오랜만이네요.)


애나의 독백과 함께 영화는 끝이 난다.

이제는 얼굴에 표정이 생긴 애나. 하지만 그녀에게 표정을 되찾아준 훈은 더 이상 그녀 옆에 없다는 사실.

새드 엔딩이라고 하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필자는 이 마지막 장면에서 보이지 않는 위로를 받았다.



06. 필자의 감상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눈에 담긴 모든 것은 아름답다. 

사랑하는 대상뿐 아니라 그 주변의 모든 것 까지 덩달아 아름답게 보인다. 그것이 사랑이 가진 힘인 것이다. 

처음에 "만추"를 봤을 때 가장 크게 와 닿았던 것은 탕웨이라는 배우가 너무 예쁘다는 것이다. 

앵글에 잡힌 그녀는, 그리고 영화 속의 애나는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현빈에겐 다소 미안하지만 이 영화는 철저하게 탕웨이 중심으로 흘러가는 영화다. 

시크릿 가든에서 큰 성공을 거둔 뒤 개봉한 영화라서 많은 여성팬들은 현빈을 기대하며 극장에 들어갔겠지만 아마 극장을 나왈 때는 탕웨이에게 감정 이입을 하고 그녀의 팬이 되어서 나왔을 것이다.


후의 일이지만 결국 탕웨이는 이 영화의 감독인 김태용 감독과 결혼을 하게 된다. 그리고 필자는 생각했다. 


'아, 영화를 찍을 때 적어도 감독은 이미 탕웨이를 사랑하고 있었구나. 그래서 그토록 아름답게 그녀를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구나.'


시애틀의 자욱한 안갯속에서 깊은 표정으로 연기했던 그녀를 다시 한번 떠올리며 마지막으로 이 말을 하며 마무리하겠다.

늦게 찾아온 사랑이 모든 걸 채워 주었네.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을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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