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전호 Apr 28. 2017

500일의 썸머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는 거야. 당연하게.

영화 <500일의 썸머>는 필자가 본 영화 중 굉장히(?) 독특한 영화 중 하나이다.

영화라는 것이 분명히 현실을 반영해야 하며(물론 히어로물을 다룬 판타지 영화를 제외하고), 그 안에서 필자와 같은 일반적인 사람들의 공감대를 충분히 이끌어낼 수 있는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들이 우리가 겪어봤을 법한 그리고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사건들을 풀어내야 한다는 점에 있어서 <500일의 썸머>는 그것들에 충실한 영화이다. 그러니까 그런 면에 있어서는 이 영화가 독특한 영화는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필자는 왜 <500일의 썸머>가 독특한 영화라고 말했을까?


1. 이 영화는 멜로 영화도, 로맨스 영화도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내가 감독은 아니니까).

아니, 영화 포스터에 대놓고 저렇게 사랑스럽고 로맨틱해 보이는 주인공들을 떡하니 담고 있는데 멜로 영화도 로맨스 영화도 아니라고? 물으실 수도 있겠지만 그 이유는 차차 설명해보도록 하겠다.

몇 가지 힌트가 있다면 영화의 시작 부분에 나와있는 작가의 말과 내레이션을 들 수 있다.


작가의 말 : 본 영화는 허구이므로, 생존 혹은 사망한 사람과 어떤 유사점이 있어도 완전히 우연입니다. 특별히 너 제니 벡맨. 나쁜 년.
톰은 썸머를 1월 8일에 만난다. 그는 그녀를 보자마자 그녀가 그가 찾던 사람임을 알아차린다. 이것은 남자가 여자를 만나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여러분이 먼저 알아둘 것은 이것은 사랑이야기는 아니라는 점이다.


작가는 분명 누군가를 염두에 두고 이 영화의 극본을 썼을 것이다. 특히 제네 벡맨. 정말로 나쁜 년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또 내레이션을 통해 분명하게도 이 영화가 사랑 영화는 아니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영화일까?


2. 영화는 철저하게 남자 주인공인 톰의 시점에서 진행되지만, 영화의 숨겨진 이야기를 찾기 위해서 우리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 여자 주인공인 썸머의 시점을 찾아내야만 한다.

단순한 멜로 영화나 로맨스 영화라면 감독은 굳이 이런 복선을 깔아놓지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의 감독 마크 웹은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이다. 그런 그가 이렇게 심오한 복선을 깔아놨을 줄이야. 약간의 즐거운 배신감(?)마저 느껴지는 영화다. 감독의 의도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가 이 영화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숨겨진 썸머의 시점, 즉 썸머의 사랑을 찾아봐야 한다.


자, 지금부터 필자가 영화 <500일의 썸머>를 지극히 주관적이고 극도로 개인적으로 느꼈던 리뷰를 적어보겠다. 지극히 주관적이란 말을 첨언하며 글을 시작하는 조심스러움을 이해해 주시길.



01. 본질적으로 달랐던 두 사람의 만남


남자 주인공 톰은 운명을 믿는다. 

그는 운명적인 사랑을 절대적으로 믿으며 언젠간 그 운명적인 사랑이 자신에게도 폭풍처럼 불어닥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것만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믿음 까지도.

영화의 첫 부분에 설명된 것처럼 톰의 운명적인 사랑에 대한 믿음은 슬픈 영국 팝 음악을 일찍 접한 것과(영국 팝 음악이 슬픈가?), 영화 <졸업>을 완전히 오해한데서 시작된다. 

필자는 영국 팝은 잘 모르니 영화 <졸업>에 대해서 짧게 이야기해보겠다. 거두절미하고 <졸업>이라는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이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려 하자 그 결혼식에 가서 여자를 데리고 도망친다. 그리고 둘은 매우 행복해한다, 라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톰은 이 영화의 무엇을 오해한 것일까? 필자가 짐작하기엔 톰은 <졸업>에서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의 사랑의 과정은 생략해 버리고 사랑의 결과, 즉 운명적인 사랑이라면 결국엔 어떻게 해서든 이루어지는 것이다,라고 오해한다. 그것이 사랑인 것이고, 그것이 아니라면 사랑이 아니라는 믿음을 톰은 가져버린 것이다.


반면 여자 주인공 썸머는 사랑의 어두운 면을 어린 나이에 부모님의 이혼을 지켜보며 본능적으로 느끼게 된다. 사랑이라는 것의 결말이 그 말처럼 달콤하지도 아름답지도 않다는 것을 알아버린다.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벽을 쌓아 버리고는 더 이상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것.

그녀는 오직 두 가지 만을 사랑했다.

첫째는 그녀의 검고 긴 머리카락이었고, 

둘째는 그걸 너무 손쉽게 잘라낼 수 있으며 그것에 아무 고통도 없다는 것이다.

결국 그녀는 톰과 다르게 운명적인 사랑을 믿지 않는다. 사랑의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아니 사랑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녀는 사랑을 하지만 그것을 아무 고통 없이 잘라낼 수 있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습득한 것이다.


사랑에 대한 접근 방법과, 그것을 해석해 내고 그것으로부터 행복함을 느끼는 방법까지도 완벽하게 다른 톰과 썸머의 만남. 과연 그들은 사랑할 수 있을까?



02. 교차 편집이 주는 공백


영화 <500일의 썸머>는 약간은 독특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일단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영화는 톰이 썸머를 만나는 500일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감독은 이 500일의 시간을 순차적으로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앞 뒤 시간을 왔다 갔다 보여준다. 시간만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니라 톰과 썸머의 좋았던 시절, 나빴던 시절을 교차로 보여준다.

혹자는 이런 교차 편집이 주인공의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을 방해한다고도 말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반대다. 오히려 교차 편집이 주는 공백에서 두 주인공의 감정적인 흐름에 집중하게 된다. 


'도대체 좋았던 그들이 왜 저렇게 된 것이지?'

'그 사이에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지금은 이렇게 행복해 보이는데 말이야.'

'톰이 혹은 썸머의 어떤 말이나 행동이 저런 문제를 만들어 버린 걸까?'


라는 의문을 갖으며 그들은 관찰하게 되고, 그런 의문들이 관객을 영화에 집중하게 만든다.

이런 교차 편집이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를 추적(?) 해 나가는 동기를 부여해주고, 공백이 공백이 아니라 관객의 의문과 그것에 대한 대답으로 채워지고 있는 것이다.



03. 찌질한 사랑, 톰


1. 운명적인 그녀가 나타났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톰은 운명적인 사랑을 믿는 남자다. 언젠간 자신에게도 지금의 이 무기력하고 심심한 생활을 끝내줄 운명적인 그녀가 나타날 것이라고. 하지만 그런 믿음과는 반대로 정작 톰 자신은 그 운명을 기다리기만 할 뿐 그것을 얻으려 노력을 하지는 않는다. 다가가지 않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려도 사랑은 운명이므로 만나게 된다는 참 어처구니없는 믿음이다.

그런데 그런 그 앞에 그가 생각하는 운명의 여인 썸머가 나타난다. 톰은 다가가지 못했지만, 아니 다가가지 않았지만 썸머가 그에게 다가온 것이다. 거기다 톰이 듣고 있는 음악을 자신도 좋아한다며, 톰이 기대하고 바랐던 운명적인 방법으로.

그에게 드디어 운명적인 사랑이 시작된다.


2. 그녀가 다가왔지만 잡지 못하는 톰

"저기... 나 좋아해요?"
"네. 그럼요. 물론 좋아하죠."
"... 친구로서?"
"맞아요. 친구로서."


하지만 자신에게 다가온 썸머를 톰은 잡지 못한다. 자신을 좋아하느냐고 묻는 썸머에게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운명이라는 벽 뒤에 숨어버린 톰의 한없는 찌질함인 것이다.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운명이라면 이루어질 것이라는 못난 믿음이 그에게 다가가려던 썸머도, 보는 관객들도 답답하게 만든다.

과연 이런 톰은 운명적인 사랑을 얻을 자격이 있는 것일까? 

그가 두려워하는 건 무엇인 걸까?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을 주도한 사람은 톰이 아니라 썸머다. 톰이 한 발자국 물러나자 썸머는 더욱더 적극적으로 다가간다.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는 톰에게 키스를 하고 그들의 연애는 시작된다.

하지만 여전히 톰의 사랑은 불안하다. 그건 본질적으로 사랑을 대하는 둘의 태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3. 그녀를 좋아하는 톰은 그녀가 좋아하는 걸 좋아하지 못한다

"얘기할 게 있는데... 저기 사실 난 진지하게 생각해서 이러는 건 아니야. 그래도 괜찮아?"
"그래."
"어떤 사람들은 이 얘기를 들으면 질색하더라고."
"아냐. 난 아냐."
"진심이야?"
"그래, 가볍게. 그런 거지? 천천히 생각하자."
"맞아. 부담 주지 말고."


이케아에서 데이트를 할 때 썸머는 톰에서 자신이 원하는 둘 사이의 관계를 말한다. 진지한 만남보다는 가볍고 부담 없는 친구 같은 만남을 원한다고. 이 말에 톰은 분명히 알겠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문제는 시작된다. 말은 알겠다고 했지만 톰은 서머의 사랑의 방식을 이해하지도 인정하지도 못한다.

영화 <500일의 썸머>에서 상징적으로 가장 중요한 소재는 바로 "링고 스타"이다. 

썸머는 "링고 스타"를 최고의 가수로가 생각하고 좋아한다고 말했지만 톰은 그건 말도 안 된다며 썸머의 취향을 무시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주고 인정해 주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고 썸머는 외치고 있지만 톰은 도무지 귀를 열고 마음을 열어 썸머 자체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톰은 자신이 사랑하는 썸머가 사랑하고 있는 어떤 것도 사랑하지 못했다.


둘 사이의 갈등이 발생했을 때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톰은 썸머를 배려하지 못한다.

오늘은 피곤하다며 내일 이야기하자고 말하는 썸머의 부탁을 듣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바로 자신의 감정을 터트려 버린다.


또, 함께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썸머의 감성을 톰은 이해하지 못한다.

왜 우느냐는 질문에 그냥 자신이 바보 같아서라고 대답해 버린 썸머의 깊은 곳에 숨겨진 감정에 대해선 관심이 없는 것이다.


이쯤 되면 우리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톰의 사랑이 얼마나 찌질한지 말이다.

물론 필자도 남자이기 때문에 톰의 행동이나 사랑의 방식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그의 사랑의 방식이 썸머에겐 상처가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상처 때문에 결국 썸머는 톰을 떠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것이 톰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500일의 썸머>의 사랑 이야기이다.



04. 진짜 사랑은 썸머가 했다


1. 자신을 바꿔줄 남자를 만났다

"사랑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요. 환상일 뿐이에요.
"글쎄. 난 아니라고 보는데."
"좋아요 그럼. 내가 잃어버린 건 뭘까요?"
"사랑이 느껴지면 알 수 있을 거예요."


톰과 썸머는 회사 회식자리에서 약간은 술에 취한 상태로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리고 사랑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썸머에게 사랑의 존재 자체를 확신하고 있는 탐은 신기하고 놀라운 대상으로 다가온다.

필자는 이 부분에서 썸머가 톰에게 마음을 빼앗겼다고 강력하게 추측한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사랑이 느껴지면 알 수 있을 거예요, 라는 톰의 말에 빛나던 썸머의 눈빛은 사랑에 빠진 여인의 그것일 테니까.

그리고 어쩌면 썸머는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 남자라면 사랑이라는 것에 벽을 쌓아버린 내 마음에 따듯한 온기를 전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2. 그를 좋아하는 썸머는 그가 좋아하는 걸 좋아했다

첫 만남부터 썸머는 톰이 좋아하는 것에 많은 관심을 갖는다. 썸머로 하여금 톰에게 처음 말을 걸게 한 것도 바로 톰이 듣고 있는 음악이었다. 썸머는 톰과 톰이 좋아하는 것, 즉 톰의 취향을 따로 놓고 생각하지 않고 그 모든 것들이 자신이 좋아하고 있는 톰 자체라고 여기는 것이다.

또한 썸머는 톰의 꿈을 응원하기도 한다.

사실 톰은 지금은 카드 문구를 제작하는 회사에서 근무를 하고 있지만 그의 원래 꿈은 건축가가 되는 것이다. 여러 빌딩들을 바라보면의 그것들의 역사와 미적 요소들을 썸머에게 설명해주는 톰은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자신의 팔을 내주어 톰의 꿈을 말하고 표현하게 도와즌다. 이 모든 것들 바라보는 썸머도 행복한 웃음을 짓는다. 

사실 썸머는 건물과 건축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녀가 그것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딱 하나이다. 그것이 바로 톰의 꿈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아직 이루지 못했지만 가슴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 꿈 말이다.

영화 속에서 두 사람의 취향이 묘하게 대립되는 부분이 있다.

톰과 썸머는 전시회에 함께 가는데 여기서 여러 작품에 대해 썸머는 풍부한 감상과 자신의 해석을 톰에서 설명한다. 하지만 썸머의 설명에 톰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결정적으로 썸머가 작품을(비록 작품이 똥... 이긴 하지만) 진지하게 바라볼 때 톰은 그녀의 감상을 기다려 주지 않고 영화를 보러 가자고 말한다. 이 부분이 바로 서로의 취향이 대립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때 썸머는 바로 "응"이라고 대답을 한다. 

썸머는 톰을 위해서 자신의 취향을 포기한 것이다.

결국 톰은 썸머가 취향을 이해하러 노력하지 않았지만 썸머는 톰의 취향을 이해하려 무던히 노력한다.

이유도 간단하다. 썸머는 톰을 사랑하니까.



3. 명명하지만 않았을 뿐 사랑을 말했던 썸머

영화에서 썸머는 계속해서 둘의 관계를 묻는 톰에게 부담스러운 관계는 싫다며, 지금 우리가 행복하니까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친구처럼 편한 사이를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러니까 사랑이나 연인이라는 관계를 명명하지 않길 원했다고 해서 썸머가 톰을 사랑한 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싸우고 난 뒤 톰에게 전화가 걸려올까 기대하며 잠을 못 이룬 건 썸머였다.

결국 톰은 전화를 하지 않고 잠이 들었다.

오지 않는 톰의 전화를 기다리다가 비 오는 늦은 밤 톰의 집을 찾아온 것도 썸머였다.

톰은 잠을 자고 있었다. 

그리고 헤어지고 난 뒤에도 혹시라도 마주칠 수 있을까 톰이 좋아하던 장소에 찾아왔던 것도 역시 썸머였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썸머는 톰과 진지한 관계를 원하지 않았다. 그런 사랑의 결말에 대한 상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는 썸머가 말만 그렇게 했을 뿐 톰을 정말 깊이 사랑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관계보다 더 사랑이란 감정으로 엮인 관계였다. 

어쩌면 톰에 대한 사랑이 깊어질수록 썸머는 본능적으로 서로의 관계를 사랑이라 명명하는 걸 거부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사랑을 하게 되면 그녀의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끝이라는 결말을 맞게 될 것 같았으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썸머는 톰을 사랑했다.



05.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온다


1년 중 대부분의 날들은 평범하다. 하루가 시작되고, 하루가 끝나고. 그 사이 남겨지는 추억도 없이 대부분의 날들은 인생에 있어 별다른 충격을 주지 않는다. 5월 23일은 수요일이었다. 톰이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다면 그건 전 우주적 의미를 단순히 지구적 이벤트로 치부해 버릴 수 있는 것이었다.
우연. 항상 일어나는 그것이다. 
우연. 그 이상 아무 의미도 없는.
톰은 마침내 기적이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운명 같은 건 없다. 필연적으로 이루 어지는 건 없다.
그는 알았다. 그는 지금 그것을 확신했다. 그는 거의 확신했다.


톰은 썸머와의 사랑의 과정을 통해 분명 뭔가를 배운다. 한 뼘 더 성장했다.

자신의 꿈을 찾을 용기를 얻었고, 이제는 우연에 기대어 운명을 기다리는 바보짓은 하지 않게 된다.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듯 뜨거웠던 썸머를 통과한 톰은 이제는 더 이상 찌질해지지 않을 수 있는 성장을 하게 된 것이다.



06. 필자의 감상


사랑에 빠지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다.

왜냐면 그건 저절로 되기 때문이다. 노력하지 않아도 아니 혹 하지 않으려 해도 우리는 사랑에 빠지게 된다. 저절로 말이다.

사랑이란 그렇게 되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을 유지하는 건 결코 쉽지가 않다. 노력이 필요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이해하고 인정해야 한다. 내 것을 어느 정도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참을 줄도 알아야 하고 양보도 해야 한다. 내 것만을 주장하는 건 사랑이 아니라 욕심이다.

영화 <500일의 썸머>는 500일간의 사랑 이야기이지만, 영화가 말해주고 있는 건 잘 사랑하는 방법이다.

썸머의 사랑도 톰의 사랑도 완벽하지는 않았다. 서로의 부족함을 드러냈고, 그것들을 결국엔 극복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500일이라는 시간도,

누구에게나 있었던 계절, 썸머라는 시간도,

그리고 그 뒤에 오는 어텀이라는 시간도,

결국 중요한 건 우리가 우리의 사랑에 얼마만큼을 던질 수 있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얼마만큼을 줄 수 있으며, 얼마만큼을 잃을 자신이 있는지를.


사랑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뜨거운 여름의 계절 동안 그 얼마만큼의 사람이었는지를 영화는 묻는다.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을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