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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전호 May 13. 2017

남과 여

서로 달랐기에 더욱 슬펐던 사랑의 온도

그렇다.

일단 영화 <남과 여>의 주연이 전도연과 공유이다. 사실 그것만으로 이 영화를 선택했던 이유는 충분하다.

필자가 영화를 선택할 때 주연 배우를 주로 본다. 그것은 책을 선택할 때 작가를 살펴보는 것과도 비슷하다.

배우는 그들의 연기의 결이 만들어내는 색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색은 어느 정도 일관된 방향으로 흘러가 비슷한 그림을 그려내므로, 쉽게 말해서 어느 정도 영화의 분위기가 예측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망설임 없이 영화 <남과 여>를 선택했다. 그리고 미리 말하지만 그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물론 주연배우 말고도 필자가 이 영화에 끌렸던 이유는 몇 가지가 더 있다.


1. 핀란드를 배경으로 펼쳐진 하얀색 무채색의 배경

전에 매거진 "금요 시네마"에서 영화 <만추>의 리뷰를 소개했을 때도 한 번 말했었지만 필자는 화려하지 않은 무채색 색감의 영화를 좋아한다. 뭐 단순한 취향이긴 하지만 여전히 끌리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영화 <남과 여>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은 하얀 눈으로 가득 뒤덮인 핀란드에서 촬영되었다. 그 하얀 무채색의 색감이 필자의 취향을 건드린 것이다.

하늘을 가득 뒤덮으며 내리던 하얀 눈이 무엇을 의미할까? 우리가 무엇을 하든, 그것이 얼마만큼이었든 결국 눈이 덮어준다는 이야기 일까? 다시 내리는 눈에 모든 것이 덮어지는 것처럼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이 사랑이라고 충고하는 것일까?

핀란드의 하얀 무채색 배경으로 떨어지던 하얀 눈이 궁금해진다.


2. 감독 이윤기

영화 <남과 여>를 보기 전에 필자가 봤던 이윤기 감독의 작품은 현빈, 임수정 주연의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와 하정우, 전도연 주연의 <멋진 하루>였다. 이윤기 감독의 연출의 특징은 영화를 흐름을 이끌어가는 것이 배우들의 대사보다는 그들이 풀어내는 감정의 흐름이라는 것. 그리고 대사와 대사 사이의 배우들의 표정과 눈빛가 작은 몸짓 하나하나가 대사보다 더 많은 걸 전달하는 방법으로 연출을 한다는 것이다.

극 중 인물의 깊은 내면의 감정을 잘 이끌어내는, 그리고 그것이 자극적이거나 빠른 호흡이 아니라 잔잔하게 이어진다는 것이 감독 이윤기가 가지고 있는 큰 매력이다.


3. 통속적인 불륜이라는 소재를 과연 어떻게 풀어낼까?

쉽게 말하면 영화 <남과 여>의 소재는 불륜이다. 여타 다른 말로 포장할 수도 있겠지만 각자의 가정과 자녀까지 있는 남자와 여자의 사랑은 아직까지는 한국 정서에서는 불륜이라는 옷을 입을 수밖에 없다. 그것에 순수한 사랑을 들이대기엔 가족이라는, 자식이라는 것은 여전히 지켜야 할 커다란 존재이니까.

불륜은 자극적인 드라마였던 <사랑과 전쟁>의 단골 소재이기도 했으며 대한민국의 아침을 사로잡고 있는 막장 아침드라마의 핵심 요소 이기도하다.

과연 이윤기 감독은 그리고 배우 전도연과 공유는 자칫 한 없이 뻔하고, 선정적일 수 있는 소재를 어떻게 풀어냈을까 궁금해졌다.



01. 시작, 우연에 우연이 겹친 사랑


영화 속 상민(전도연)과 기홍(공유)의 사랑의 시작은 우연에 우연이 겹쳐 만들어진다.

둘 모두 정신적 문제를 가지고 있는 자녀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자녀들이 핀란드의 같은 학교에 다닌다는 것. 아이들의 캠프를 따라갔던 상민과 기홍의 갑작스레 내린 폭설에 갇혀 함께 하룻밤을 보내게 된 것. 그리고 산책을 하다 우연히 사우나를 발견하게 된 것 까지.

이런 우연의 순간들이 겹쳐 그들의 사랑은 시작된다.

사랑이 우연에 우연이 겹친 기적이라고 하지만, 반대로 사랑 자체가 기적이 아닌 적이 있었던가?


1. 일상의 삶에서 잠시 비켜난 곳, 핀란드

상민과 기홍이 처음 만나게 된 곳은 핀란드다.

핀란드는 그들이 일상의 삶에서 잠시 비켜 나와 어쩌면 타인으로 존재할 수 있었던 곳이다. 일종의 여행이라면 여행. 비록 각자 자녀의 부모로서의 책임감을 껴안고 왔지만 말이다.

둘은 그렇게 일상으로부터 멀리 튕겨져 나온다. 한 남자의 아내도 아니고, 한 여자의 남편도 아닌 그저 남자와 여자로.

그곳에서도 각자만의 결핍과, 각자만의 책임과, 각자만의 상처가 있었지만 그곳이 먼 곳이었기 때문에 둘은 만날 수 있었다. 아마 그들이 서울의 하늘 아래에서 마주쳤다면 사랑을 할 수 있었을까? 모든 것이 익숙하고 무겁고 삶을 짓눌르는 것 투성인 한국이었다면 서로의 마음속에 깊은 각인을 새기지 못하고 그냥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첫 만남에서 상민은 기홍에게 핀란드가 뭐 가 좋으냐고 묻는다. 기홍은 이렇게 대답한다.

"여기 좋아요. 조용하고 깨끗하고. 눈도 많이 오고."

그리고 기홍보다 먼저 한국에 돌아온 상민은 핀란드가 뭐가 좋았냐는 친구의 말에,

"그런데 좋아. 조용하고 깨끗하고. 눈도 많이 오고."

라며 기홍이 했던 말과 똑같은 대답을 한다. 서로의 이름조차 모르고 헤어졌지만 둘은 깊은 무언가를 나누었고 그리고 그것을 가슴에 간직한 것이다. 어느새 닮아버린 상민과 기홍. 그리고 그들의 첫 만남이 녹아있는 핀란드. 둘의 사랑은 서로에게 있어 무겁기만 했던 일상의 삶에 탈추구가 되어준 것이다.

조용하고 깨끗하고 눈도 많이 오는 핀란드에서 둘의 사랑은 시작되었다.


2. 서로가 가지고 있는 같은 책임감

상민과 기홍이 쉽게 그리고 빠르게 가까워질 수 있었던 이유는 각자의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책임감이 같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식에 대한 부모로서의 책임감이었다.

정신적 아픔을 겪고 있는 상민의 아들 종하와 기홍의 딸 유림. 그리고 그들을 향한 부모의 아프고 애틋한 책임감. 자녀에 대한 책임감은 부모로서 지녀야 할 당연한 감정이겠지만 둘은 어쩌면 조금씩 조금씩 지쳐간다. 대답을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전부라고 해도 좋을 만큼의 모든 것을 자녀에게 쏟아붓고 있었지만 정작 어떤 대답도 들을 수 없었던 상황들. 상민과 기홍은 그것에 둘러싸여 정작 스스로를 잃어가고, 잊어가고 있었는지도. 게다가 상민과 기홍은 그 책임감을 온전히 혼자서 짊어지고 있었다. 상민의 남편도, 기홍의 아내도 자식을 챙길 시간적 여유와 정신적 여유가 없었으니까.

둘은 무척이나 외로웠을 것이며 그때 자신과 닮은 서로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비슷한 사람에게 끌리는 법이다. 비슷한 정서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공감을 느끼게 되고 위로받기도 한다. 그리고 그곳이 먼 곳이었다면 더더욱이 말이다.


3. 추운 겨울의 한가운데, 둘 만큼이나 뜨거웠던 사우나

눈으로 덮인 산책길을 걷다 발견한 사우나. 그리고 그곳에서 상민과 기홍은 사랑을 나눈다.

어찌 보면 이 장면은 다소 뜬금없을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고작 하루 전에 처음 만난 남자와 여자가 산책을 하다가 갑자기 사랑을 나눈다니. 급작스러운 전개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다른 관점에서 생각을 해보자.

눈 덮인 숲 속을 거닐던 남자와 여자. 그곳은 삶이 지친 그들이 함께했던 공간이었다. 책임감이라는 무거운 짊을 지니고 살아가는 남자와 여자는 일탈을 꿈꿀 여유조차 없다. 춥기만 하고 때론 두껍께 쌓인 눈에 발이 빠지기도 하는 그곳은 그들의 지친 삶 자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추운 곳에서 찾아낸 따듯했던 사우나. 그곳은 그들이 부모가 아니라 한 명의 남자와 여자로 존재할 수 있었던 곳이다.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무거운 책임감을 잠시 내려놓고 온전히 스스로에게 집중하고, 내면의 깊은 감정에 반응할 수 있었던 곳.

추위에 얼었던 몸이 따듯하게 녹아내리듯 상민과 기홍은 둘 사이의 벽을 허물어뜨린다.



02. 서로가 달랐기에 더욱 슬펐던 사랑의 온도


사랑을 구성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서로가 서로에게 품고 있는 감정의 방향이, 그 색깔이 같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한 것이 사랑이겠지만 그것들이 같다 하더라도 어느새 쉽게 어긋나 버리는 게 사랑이다.

어쩌면 품고 있는 감정의 총량의 문제라기보다는 그 감정이 지니고 있는 온도의 변화가 사랑의 종말을 가져오는지도 모르겠다.

서로가 달랐던 사랑의 온도가 상대에게 가졌던 기대를 아쉬움으로 바꿔버리고, 상대보다 뜨거웠기에 초라해지고, 상대보다 식어버렸기에 미안하게 만든다. 사랑의 온도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기에 서로 맞춰나갈 수도 없을뿐더러, 온전히 내 것만이 아니기에 탓할 수도 없는 것이다.

영화 <남과 여>에서 상민과 기홍의 사랑의 온도는 다르다. 기홍은 너무 뜨거웠고, 상민은 조금 미지근했다.

기홍이 먼저 도착해버린 사랑의 감정을 상민은 따라가지 못했고, 이미 내려와 버린 기홍을 한참 뒤에 도착한 상민은 잡지 못한다.


불륜이라는 죄책감 때문에 처음부터 불가능한 사랑이었다, 라는 통상적인 결론에 필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상민과 기홍의 사랑의 순간엔 분명히 그들 자신만이 존재했었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남편으로서 아빠로서가 아니라 여자로서 상민과 남자로서 기홍으로. 그들의 사랑이 어려웠던 건 결국 품고 있던 사랑의 온도의 문제였고 선택의 문제였다.

외부적인 요소에 의해 방해되는 사랑은 애초에 사랑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사랑은 매 순간 자신만의 선택이고, 자신의 선택에는 분명 책임이 따르는 것이다. 사랑을 얻고 싶다면 내 것을 포기해야 하기도 하면, 내 것을 놓지 못해서 사랑을 포기해야 하기도 한다. 결국 그건 선택의 문제다. 달랐던 사랑의 속도가 강요한 선택의 문제.


1. 빠르게 직진했던 기홍, 자주 멈췄던 상민

기홍과 상민이 서로에게, 그리고 사랑 자체에 대해 가졌던 태도는 영화 중 둘의 대화에서 암시된다.(이건 전적으로 필자의 주관적인 해석이다.)

아들을 캠핑장으로 보내고 불안해하던 상민의 부탁으로 함께 아이들이 있는 캠핑장을 찾아가는 차 안.

상민 : "우리 지금 맞게 가고 있는 거예요?"
기홍 : "네."

멀리 캠핑장을 발견하고는 얼어있는 호수 위에서.

상민 : "위험한데."
기홍 : "괜찮아요. 와보세요. 갑시다. 저기 캠프"
상민 : "여길 건너가자고요?"
기홍 : "차로 가도 되는데 이렇게 한 번 가로질러 가보죠 뭐."

상민과 기홍의 만남에 있어서 상민은 자꾸만 불안해했고, 기홍은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혹자는 이것을 남자와 여자의 차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사랑에 빠진 남자가 무모해지고, 사랑에 빠진 여자는 확신이 생길 때까지 망설이는 것이라고. 그것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못하겠지만 어느 정도 맞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상민과 기홍의 사랑이 그런 방향으로 흘러갔으니까.


2. 기홍의 사랑

분명 처음부터 뜨거웠던 사람은 기홍이었다.

핀란드에서의 강렬했던 첫 만남을 뒤로하고 상민과 기홍은 서로의 이름도 모른 채 헤어지게 된다. 상민은 아들과 함께 먼저 한국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로부터 8개월의 시간이 흐른 뒤. 남산의 언덕즘에서 일을 한다고 지나가면서 이야기한 상민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던 기홍은 무작정 남산을 돌아다니며 결국 상민을 찾아낸다.

그만큼 상민을 향한 기홍의 마음은 뜨거웠다. 어떻게 보면 스토커가 아닐지 의심될 정도로 말이다.

문자에 답장이 없는 상민을 무작정 찾아온 사람도 기홍이다.

그리고는 함께 점심을 먹자고 한다. 바빠도 밥은 먹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늦은 저녁 이미 닫혀있는 상민의 가게를 찾아온 것도 역시 기홍이었다.

상민을 바라보는 기홍의 눈빛이 충분히 그녀가 그에게 얼마만큼의 사람인지를 전해준다.

사랑에 빠진 남자는 항상 그녀가 궁금하다. 맹목적이고 때론 집요하다. 매번 먼저 연락을 하는 건 역시 기홍이었다. 하지만 상민과 기홍을 가로막는 것들은 여전히 존재했다. 사랑하지만 여전히 상민에겐 어렵기만 한 아들 종화. 그리고 항상 불안한 엄마를 보며 입을 닫아버린 기홍의 딸 유림.

기홍은 자신의 상황이 힘들 때 항상 상민을 찾았다.

항상 불안하기만 한 아내, 입을 닫아버린 딸. 기홍은 가족으로부터 힘을 얻지 못한다. 무거운 책임감이 있을 뿐.

그에게 온전히 한 명의 남자로서 다가갈 수 있었던 상민은 힘들었던 삶에 유일한 탈출구이다.

차 안에서 날을 새며 연락이 없는 상민을 기다리고, 부산으로 출장을 가는 상민을 따라 함께 부산행 기차에도 오른다.

어쩌면 기홍은 상민을 사랑하는 행위 자체가 스스로를 강하게 찾아가는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내에게도 남자가 아니라 어느새 보호자가 되어버린 자신이 아니라 한 여자를 사랑하고 품에 안을 수 있는 남자로서의 자신을.

하지만 이런 기홍의 온도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식어간다.

"난 말이야. 사는 게 왜 이렇게 애매한지 모르겠다."
"그런데 너 이런 모습 처음이다. 문주 씨(기홍의 아내)때문만은 아니지?"

상민에게 향했던 모든 감정들이 확실했던 기홍은 자신을 둘러싼 힘든 환경 때문에 점점 힘이 빠진다. 친구와 술을 마시면서 기홍에 뱉었던 말. 그리고 친구의 질문에 결국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던 기홍. 기홍의 감정에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상민에게 향하던 기홍의 뜨거운 사랑음 멈춰 세운 건 가족이었다.

어디로 튈지 몰라 불안 불안하고 정서적으로 불안정했던 아내 문주는 조금씩 변화의 노력을 보인다. 기홍을 이해해보려 애쓴다. 또 말을 하지 않고 마음을 열지 않았던 딸 유림이 조금씩 기홍에게 마음을 열어보려 한다.

자신의 보호가 절실히 필요했던 가족이, 이제 기홍에게도 무언가를 건네려고 한다.

아내 문주의 말을 들었을 때, 그리고 딸 유림이 자신에게 안겼을 때 기홍의 얼굴엔 혼란스러움이 가득하다. 상민에게 다가갈 때 한치의 주저함도 없었던 기홍이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려 하는 가족들 앞에서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3. 상민의 사랑

처음엔 망설이고 더디고 때론 스스로를 자책하며 자신의 감정을 멈춰 세우려 노력했던 상민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넘치고 차올라서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기홍에 대한 사랑을 서툴지만 조금씩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기홍의 목소리. "그냥 목소리가 듣고 싶었어요."라는 한 마디에 상민은 모든 걸 다 제쳐두고 부산에서 서울로 기홍에게 달려간다.

사랑 앞에 망설이지 않겠다고, 주저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상민은 기홍이 없는 기홍의 사무실로 찾아가 보기도 한다. 항상 먼저 만나자고 한 것도, 무작정 찾아오는 것도 모두 다 기홍이 상민에게 보여줬던 것들인데 이제 상민이 기홍에게 그것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기홍보다 늦게 뜨거워진 사랑이었다 할지라도 일단 뜨거워지식 시작한 상민의 사랑은 멈추지 않는다.

기홍에게 문자로 헤어지잔 말을 건네는 상민.

사실 이 부분에서 필자는 기홍에 대한 상민의 사랑이 더 이상 불안이 아니라 확신으로 바뀌었다는 생각을 했다. 점점 커지고 있는 자신의 사랑을 스스로도 더 이상 붙잡아 둘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사랑의 감정이 계속 커져 엄마로서, 아내로서 자신을 잃어버리기 전에 끝내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정말로 자신의 모든 걸 버리고 기홍에게 달려갈 것임을 알기 때문에.

"아... 남자라도 있나 보지?"
"응. 나 그 사람 없으면 안 되거든. 나 용서하지 않아도 돼. 나도 나를 용서할 수 없거든."

하지만 한번 시작돼버린 사랑은 무슨 방법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 상민은 기홍을 만나러 가기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버릴 각오를 한다. 사랑하는 아들, 안정적인 가정, 그리고 자신이 이루어냈던 많은 업적들.

그것들이 주는 위안과 안정보다는 오로지 한 가지. 바로 기홍의 사랑을 원했던 것이다.

사랑은 어떤 합리적인 이유를 들이대며 설명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상민도 자신의 사랑이 잘못된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자신을 용서하지 말라고 말하고, 스스로도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사랑은 잡아야 하겠다고. 자신이 한 여자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꼭 그 사람이 필요하다고. 상민은 그렇게 자신의 사랑을 향해 뜨겁게 나아간다.


4. 조금씩 역전되는 사랑의 온도

뜨겁게 시작했다가 점점 식어가는 기홍의 사랑.

자주 멈추고 불안했지만 점점 뜨거워지는 상민의 사랑.

상민 : "고마워요. 정말 같이 있어서 다행이야."
기홍 : "우리는 만날 때마다 어디 여행하는 것 같아요."
상민 : "정말 그렇네."
기홍 : "돌아가지 말까요?"
상민 : "그래요."
기홍 : "농담 아닌데."
상민 : "우리 정말 큰일이다."

비 오는 날 잃어버렸던 상민의 아들 종화를 찾고 기홍과 상민은 함께 바닷가로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바닷가를 바라보며 나누는 대화에서 조금씩 둘의 사랑의 온도는 조금씩 엇갈리기 시작한다. 뜨거웠던 기홍은 조금씩 자신의 사랑음 멈춰 세우려 하고 멀어지려는 기홍에게 상민은 적극적으로 다가간다.

필자는 그것을 누구의 잘못이라 말하지 않겠다.

둘의 사랑은 시작부터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한 사람이 다가가면 그만큼 한 사람은 물러나야만 했던 사랑. 그것은 서로가 짊어지고 살아가야 할 책임감 때문이었다.

다만 그럼에도 선택의 문제는 여전히 우리를 괴롭힌다.

기홍은 상민을 선택하지 못했고, 상민은 기홍을 선택했다. 그렇다면 누가 사랑의 승자일까? 아니다. 과연 사랑에 승자와 패자를 나눌 수 있는 만큼 사랑에 자신 있는 사람이 있을까?



03. 사랑은 조금씩 끝을 향해 나아간다


상민 : "보고 싶어요."
기홍 : "끝나고 만나죠."
상민 : "오늘 끝나면 시간이 좀 늦을 텐데. 괜찮아요?"
기홍 : "기다릴게요."

먼저 전화를 한 사람은 상민이었다. 이제 더 이상 기홍은 상민에게 뜨겁게 다가오려 하지 않는다. 보고 싶다는 상민의 말에도 기홍은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한다.

둘은 상민의 일이 끝나고 만나기로 하지만 상민을 데리러 온 상민의 남편과 아들 때문에 만나지 못한다.

영화에서 나오지는 않지만 필자는 이 만남에서 기홍이 상민에게 이별을 말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기홍이 상민을 만나러 온 이유는 둘의 사랑을 끝내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결국, 남편과 아들을 버리기 기홍을 선택했던 상민은 둘이 사랑을 나눴던 호텔방에서 기홍을 기다린다. 하지만 문 앞까지 온 기홍은 결국 문을 열지 못한다.

상민은 모든 걸 버리고 기홍에 가 달려갔지만 기홍은 자신에게 주어진 남편으로, 아빠로서의 책임감에 상민을 포기한 것이다.

상민의 사랑이 옳았으며 기홍의 사랑이 비겁하다 생각하지 않는다.

마지막 그 순간, 건너편의 상민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문만 열면 되는 그 순간. 그 문을 열지 못하고 기홍은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상민은 다 이해한다는 듯 멀리 창 밖을 바라본다.


분명 사랑이었다.

그 무엇보다 뜨거웠던 사랑이었다. 불륜이라는 소재를 벗어나 순수한 한 명의 남자와 여자로서의 사랑이었다. 그래서 제목이 <남과 여> 인지도 모르겠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결국 사랑은 순간의 감정에 진실된 반응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것 까지가 사랑이다.

그 사랑의 모습엔 아무도 옳고 그르다를 판단할 순 없는 것이다.

결국 상민과 기홍의 사랑은 끝이 났다. 순간순간 아름답고 행복했던 많은 기억들을 보여주었다.

끝이 나버렸다고 사랑이 아니었다 말하기엔 둘의 마음이 마지막까지 진심이었기에 필자는 사랑이라고 말하겠다.



04. It's better not to know


영화 <남과 여>를 관통하는 하나의 대사를 꼽으라면 필자는 주저 없이 상민의 대사인

"아니야. 모르는 게 나아요."
"It's better not to know."

를 꼽겠다.


상민 : "몇 시쯤 됐을까?"
기홍 : "시계가..."
상민 : "아니야. 모르는 게 나아요."

상민은 부산에서 서울까지 기홍을 보기 위해 달려오고 둘은 함께 밤을 보낸다. 그리고 시간에 대해서 상민은 모르는 게 낫다고 말을 한다. 이건 둘만의 시간을 끝내기 싫다는 말이다. 지금의 이 순간, 기홍과 함께 있는 이 시간이 영원이었으면 좋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상민 : "What time is it?"
택시 : "I don't have a watch. one moment."
상민 : "Oh, no. It's ok. I don't need to know. It's better not to know."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택시기사에게 했던 "It's better not to know."는 기홍과 함께했던 모든 시간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그와 함께했던 모든 시간이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겠다는 바람. 이렇게 슬플고 아플 것이면 차라리 없었던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슬픈 바람.

그리고 비가 오는 날 잃어버렸던 종화를 찾아 함께 돌아가는 차 안에서 상민이 했던 말도 생각해봐야 한다.

"잊을수록 좋은 그런 기억들도 있으니까요."


사랑이 모두 끝난 뒤 결국 상민에게 기홍은 어쩌면 잊고 싶은 기억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대로 마지막까지 그런 것을 바랐다는 마음을 보면 결국 상민에게 기홍은 영원히 잊히지 않는 사람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모르는 게 낫겠지만 모를 수 없는.



05. 필자의 감상


시간이 지나도 문득 영화 속 몇 장면들이 떠올라 잠시 걸음을 멈춰 세우게 되는 영화가 있다.

영화 <남과 여>는 그런 영화다.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천천히 그리고 다소 지루하게 진행되는 영화이기도 하지만 그 순간순간이 굉장히 진하고 무겁다.

사랑이라는 것이 온전히 드러나지 못하는 상황들. 결혼, 자녀, 가족.

그런 것들 속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숨기기도해보고, 조심스레 드러내기도 하고, 하지만 결국 숨기지 못하고 터트리기도 하는 세밀하고 정교한 감정의 흐름들이 녹아있는 영화였다.

필자가 생각하는 영화의 주된 감정은 사랑이기도 하겠지만 그 감정은 오히려 그리움에 더 가깝다.

그 그리움은 사랑하지만 이미 멀어져 버린 상대를 향하기도 하고, 부모라는 책임감에 묻혀 잊혀저버린 한 명의 남자와 여자로서 자신에 대한 그리움일 수도 있다.

불륜이라고 묻어버리엔 두 주인공의 사랑이 안타깝고 아쉬웠던 건 사랑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가 예의 바르고 진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배경이 핀란드이므로 그 모든 게 용서되기도.


영화 <남과 여>는 요즘 한국에서 흥행하고 있는 다소 자극적인 조폭이나 살인, 추리, 한 명의 영웅이 등장하는 권선징악의 소재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충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대사보다는 눈빛으로 스크린을 채웠던 농밀했던 영화였다.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을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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