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작년 여름이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간 나는 어느덧 그곳에서 부러 만날 사람도 없고 해야 할 일도 없다.
결국 ‘아, 내가 고향을 떠나온 게 정말 꽤 오래되어버렸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소파에 앉아 아버지와 함께 TV를 보고 있었다.
TV에서는 별다른 내용이 없는 시시콜콜한 오락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다.
나는 TV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으므로(어느새 나는 영상보다는 활자가 더 좋아지기 시작했다. 역시 나도 나이를 먹긴 먹나 보다. 다만 희망사항이라고 한다면 눈이 더 이상 나빠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TV에서 시선을 돌려 아버지를 바라봤다. 소파 위에 누워 지구에서 제일 편한 자세로 널브러져 있는 나와는 다르게 아버지는 나처럼 마냥 편해 보이지는 않으셨다. 그날은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이었고,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어깨에서 긴장과 걱정을 잠시 내려놓고 충분히 나태해질 수 있는데도 말이다.
어째서 저러시지?라는 생각으로 나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했다.
일주일이라는 칠일 간의 규칙적인 시간의 시스템 안에서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까지 우리는 조금의 여유를 즐겨도 된다. 그것은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후까지 적어도(그 강도를 떠나서 말이다) 조금은 팍팍한 울타리 안에서 스스로의 자유를 포기하고 순응하며 지내왔기 때문에 응당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권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한 번 아버지의 불편한 등을 바라보던 차에 불현듯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쳤다.
아버지와 내가 살아온 삶에서 주말이 가지는 의미가 서로에겐 달랐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어릴 적엔 그러니까 아버지가 한창 “일”이라는 행위에 몰두하고 계셨던 옛 시절의 토요일은 나에겐 학교를 가야 하는 날이었고, 아버지에겐 출근을 해야만 하는 날이었다.
아버지는 친구들과의 즐거운 술 약속을 금요일 저녁이 아니라 토요일 저녁에 잡아야만 하셨을 것이고, 발걸음이 가벼운 퇴근길도 금요일이 아니라 토요일이었다.
삶의 대부분을 일주일에 육일을 일을 해야만 하던 시절을 사셨던 아버지에겐 금요일은 결코 편하게 몸과 마음을 놓을 수 있는 날이 아니었다. 그러니 여전히 금요일은 아버지에겐 주말의 시작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몸은 그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건대, 한 번 사람의 몸에 들어와 익숙하게 자리를 잡아버린 무언가는 아무리 그 시스템이 변화를 선언할지라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여전히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가 불쑥 고개를 내밀고는 변화를 거부한다. 강경하게 말이다.
‘정말? 설마. 그럴 리가 없다고.’ 라는 가느다란 의심의 실마리가 꿈틀거리며 결국 몸을 지배해버리고 마는 것.
주변에서 아무리 “이제는 괜찮아. 세상이 달라졌다고. 어깨에 힘 좀 빼도 괜찮아.” 라며 아버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준다고 해도, 금요일 저녁 내일은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듯 TV에서 웃음 가득한 프로그램이 방영된다 하더라도 아버지의 어깨는 여전히 긴장을 품고 계신 것이다.
아버지는 금요일보다는 토요일이 더 좋다고 하셨다.
그래서 여전히 금요일 저녁엔 뭔가 모르게 불안하신 듯도 보였고, 행동도 마음도 어색해하셨다.
노래만 들어봐도 그렇다.
금요일 저녁이 되면 아버지는 “토요일은 밤이 좋아”라는 노래가 선명하실 테지만 나는 지오디의 “Friday night”가 여전히 귓가에 울려 퍼지니 말이다.
세상은 어찌 되었건 좋은 쪽으로 흘러간다고 믿고 싶다.
하지만 예전의 힘들었던 것들이 종종 그리워지기도 한다. 이상한 일이지만 말이다. 뭐랄까 날 힘들게 했던 것들은 내 몸속에 오래도록 남는 것 같다. 토요일에도 출근을 해야 했던 아버지의 금요일 저녁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내가 그리워하는, 또 아버지가 그리워하는 그것들에는 분명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무언가 들로부터 분명 위로를 받고 다시 한 번의 힘을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그리움들이 나에게 좀 더 쌓여가는 날이 오면, 그날엔 내 다음 세대의 사람들이 목요일 저녁을 외칠지도 모르겠다.
주 4일 근무라는 어마어마한(지금은 도저히 믿기지 않지만) 제도가 대한민국의 땅에 실현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 언젠가의 날에 난 목요일 저녁을 어색해하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지금의 아버지처럼 어깨에 긴장을 한가득 껴안고 TV를 보고 있을지도.
뭐 그래도 그런 날이 온다면야 그다지 나쁘진 않군요.
사실 저는 목요일 저녁부터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합니다.
하루만 더 버티면 주말이라는 생각에 콧노래가 절로 흘러나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