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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전호 Nov 22. 2020

당신의 등 뒤에 붙인 쪽지 한 장

언젠가 공항에서였습니다.


어떤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공항이 처음도 아니었습니다. 긴 여행을 마치고 조금은 지친 마음으로 입국 게이트를 빠져나왔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다시 뒤돌아 보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빠져나왔던 그 길을 멍하니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저마다의 가득한 감정을 다양한 모양으로 한가득 담고 오던 그 많은 사람들 사이로 나는 혼자 조용히 고독해졌습니다.

아니 조금씩 마음이 야위어 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에 없는 것을 좇아 무언가 담아오려 떠났던 여행에서 빈 손으로 돌아오는 일이 많아졌으니 당연한 거겠지요.


파리에 살고 있으면서 파리를 여행 중이라며 자신을 여행자로 소개했던 점원이 일하던 소박한 카페를 떠올려봅니다. 그곳에서 종종 마주쳤던 핀란드 여행자는 찾고 있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을 아직 찾지 못해서 여전히 여행 중이라 했습니다. 그게 무엇인지는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스스로도 그게 뭔지 모르진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다만 행복하게 웃으며 말하는 그이의 얼굴을 보니 그가 무척이나 부러웠습니다.

그가 찾는 것이 물건이었을까요. 사람이었을까요. 아니면 감정이었을까요. 그것이 무엇이건 지도엔 나와있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내가 찾고 있던 건 무엇이었을까요?

내 것도 그의 것처럼 지도에는 나와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여전히 저의 긴 여행엔 마침표를 찍기가 어려운 거겠지요.

낯선 길 위에서 많은 시간을 쏟아부었던 여행도 정답을 알려주진 않았습니다.


이제 멈춰야 하는 걸까요.

언젠가 당신이 그랬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다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 거라고. 살려고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니 사는 것이라고. 그러니 없는 것을 찾지 말고 있는 걸 지키며 살아가라고.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나보다 더 나를 잘 알고 있는 당신의 말이니 그게 맞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살아지니 사는 것.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것.

그것이 싫어 여행을 떠난 것이었는데. 그것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에 배낭을 메고 돌아섰는데.

나는 여전히 모르는 것이 많고 두려운 것 투성입니다. 여기서 멈춰버리면 정말로 내 모든 것은 끝이 아니라 애초에 없었던 것으로 여겨질까 두렵습니다.

그렇다면 난 무어라 말해야 할까요. 모질게 돌아섰던 그 모든 것들에 무슨 변명을 할 수 있을까요.


살고 싶은 삶의 모양이 여전히 가슴을 뜨겁게 하는 나는 결국 평생 끝나지 않는 여행을 시작해버린 건 아닐까요. 그럼 이제는 정말로 당신에게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이런 나를 스스로 용서하지 못할지도요. 하지만 살아지니 살아가는 삶은 내가 원하던 삶이 아닙니다. 그런 방법으론 난 안녕히 살지 못합니다. 그럴 자신이 없습니다.


돌아섰던 당신의 등 뒤에 나는 작은 쪽지 한 장을 붙입니다.

돌아오겠습니다. 나의 봄은 이제 끝이 났지만 길 위에서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기억하고, 겨울을 견뎌내어 더욱 단단해져 돌아오겠습니다.

당신의 봄에 나는 꼭 돌아오겠습니다.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은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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