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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서 Jan 25. 2023

복수는 나의 것

간발의 차

 지난 12월까지 방송국, 제작사 공채 전형을 깡그리 말아먹고 나는 꽤나 침울함에 빠져있었다. 호기롭게 준비를 시작했으나, 스터디를 하든 학원 강의를 수강하든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수두룩 빽빽했기 때문이다. 


 제일 높게 가본 채용 전형이 1차 면접(보통 3차까지 있음)이었다 보니 2, 3차는 맛도 못 보고 내년 이맘때 채용 시기까지 어떻게 준비하나 막막하기만 했다. 그런 와중에 12월 중순쯤, 내가 처음으로 지원했던 M사 자회사의 2023년 공채 정보가 다시 떴다


 사실 7~8월에 이 기업 1차 면접에서 떨어지고 나서 느낀 점은 많았지만, 다른 기업들 채용 전형에 굉장히 바빴다 보니 전혀 달라진 게 없었다. 하지만 딱히 할 것도 없고, 준비가 안 됐다고 해서 지원하지 않는 것은 취준생의 '직무유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탈락 당시의 상태 그대로, 다시 M사 자회사에 도전했다.

돌아온 탕아 느낌이랄까요?

 자기소개서를 포함한 서류 전형은 다행히도 통과했다. 한국어능력시험 등급이 1단계 올라갔다거나, 자소서 내용을 조금씩 업그레이드했다는 점을 제외하면, 딱히 달라진 건 없었는데 다행이었다. 그리고 필기(작문) 시험. 시험 문항을 밝힐 순 없지만, 여타 PD작문시험의 전형적인 형태였고 나름대로 열심히 작성했다. 정말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도 합격했다.


 그렇게 다시 돌아온 1차 면접 준비. 이번에도 스터디를 구해서 질문들을 마련하고, 모의 면접도 했다. 지난 글을 보면 알겠지만, 자소서 관련 질문은 전혀 없었어서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지만 면접 분위기의 1/10이라도 느껴보는 게 꽤나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스터디원은 나까지 총 4명으로, 다들 나보다 나이가 많으셨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방송 관련 경력들이 출중해서 자소서까지 화려하게 빛이 나는 듯했다. 조금 놀란 점은, 이렇게 대단한 분들이 내 자소서를 보며 나름의 매력이 있으니 자신감을 가지라고 말해주셨다는 점이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시간 남아서 도전해 보는 거고, 크게 의미를 두지 말자고 되뇌고 있었다. 그래서 면접 스터디를 할 때에도 진심을 다하지는 않았다. 죽지도 않고 돌아온 1차 면접. 면접관은 총 3명으로, 왼쪽 편의 2분은 저번과 동일했고, 맨 오른쪽 분만 처음 보는 분이셨다. 지난번에도 그랬듯, 맨 왼쪽 분은 반쯤 누운 자세로 이력서 관련 질문 2개 정도를 하고 전혀 집중하지 않으셨다.


감명 깊게 본 작품은 네이버블로그에서 따로 리뷰하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맨 오른쪽 분은 나의 드라마 리뷰 블로그 내용을 읽으시고는 드라마에 대한 인사이트를 묻는 질문들을 많이 하셨다. 딱히 준비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평소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느꼈던 생각들을 최선을 다해 대답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받아 적으시길래 괜스레 무섭기도 했다.


 짧은 10분 간의 면접이 끝나고, 약 2시간이 걸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합격이었다. 정말 신기한 점은 같이 스터디한 다른 분들도 모두 합격했다는 점이었다. 이들 중 동의를 받아서 2분과는 계속해서 2차 면접까지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 역시 자세한 사항을 밝힐 수는 없지만, 자기소개 및 드라마 기획미션이었고 최선을 다했다. 2차까지 온 것만 해도 감지덕지, 좋은 경험이었기에 마지막 최종은 기대를 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사람 욕심이란 게 그럴 수 있을까. 그 기대를 누가 알아주기라도 한 듯, 2차 면접도 합격을 받았다. 당장 2일 후가 최종 면접이었고, 다시 2일이 지나면 결과발표였다. 22년 7월 1차 면접에서 문전박대당하듯이 쫓겨났던 내가 조금의 발전과 운을 가지고 최종까지 이르렀다는 생각이 들어서 벅차기도 했다.

면접인데 간식도 주는 좋은 회사입니다

 최종은 워낙 사람이 없기 때문에 스터디를 진행할 수는 없었다. 서로에게 조금이라도 피드백과 도움을 주는 순간, 자기가 올라갈 확률은 크게 떨어지기 마련이니까. 나름대로 자소서 관련 및 예상 질문들을 연습해 갔고 사장과 부사장 등 회사 임원들 총 4명이 앉아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면접에 임했다. 안타깝게도 결과는 탈락이었다.


 PD라는 꿈을 이루기 직전, 간발의 차로 탈락을 맛보니 아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허탈하기도 했다. '상암동에 있는 본사가 아니었으니 오히려 잘 됐다', '이 경험을 잘 살려서 더 좋은 곳으로 가보자' 이런 식으로 자기 위로를 해봤지만 대미지가 없진 않았다.


 그렇지만 얻은 건 분명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1차에서 개같이 탈락했던, 우물 안 개구리는 벗어난 것 같았다. 스펙과 경력이 화려한 최종 면접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봤다는 사실만으로도 동기부여는 충분했다. 기나긴 채용 전형 후, 나의 위치는 달라진 게 없었지만 마음가짐만은 변화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계속해서 드라마를 더 사랑하고, 분석하고, 더 성장하는 것뿐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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